이 포스팅 말미에 지난 4월 19일 갔다왔다고 한 집이다. 다만 이러저러해서 순차적인 포스팅 시간이 꽤 꼬인 관계로 지금 와서야 적게 되었다.
서울의 양대 공연장이라는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 중에 공연 보기 전에 밥먹기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전자로 답한다. 물론 예당 주위에도 찾아보면 밥먹을 곳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가격이 강남 스타일이라 강북 촌놈인 나는 도무지 발을 들여놓기 힘든 곳들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빌딩 숲에 둘러싸인 세종은 그 빌딩의 지하 식당가 덕에 선택의 폭이 훨씬 넓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려 거기서 밥 먹고 골목 하나만 건너서 바로 공연장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접근성까지 갖고 있다. 물론 그렇게 배채우고 들어간 뒤에는 공연장의 병맛같은 음향 상태 때문에 결국 소화불량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아무튼 그런 점 때문에 지난 4.19 때 우연히 들어간 곳이었는데, 마침 그 날 옛 스승님의 합창곡 연주회가 M시어터에서 있었기 때문에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래는 같은 빌딩(로얄빌딩) 지하 식당가의 깡장집에 가려고 했지만, 너무 오래간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좀처럼 찾지를 못해서 우왕좌왕하다가 뭔가 일식 덮밥을 판다고 써붙인 곳이 눈에 띄었다.
이름이 '세이슌'. 확실한 지는 모르지만 일본어로 '청춘' 이라는 뜻 같았다. 하지만 가게가 청춘스럽던 노회하던 간에 그건 아무래도 좋았고, 가산디지털단지의 돈부리이야기가 그 사이 폐점했다는 아쉬운 소식을 들은 뒤 오랜만에 보는 일본식 덮밥집이라 그냥 들어갔다.
아, 물론 그냥 들어간 건 아니고 영업 시간은 확인하고 들어갔다. 다른 일식집과 마찬가지로 중간에 직원들의 점심 시간 겸 휴식 시간을 두고 있었고, 일요일은 쉰다고 되어 있었다. 아마 고객 대부분이 빌딩에서 일하는 회사원이라 그런 것 같았다.
기본적 테이블 세팅. 휴지 뒷편에 있는게 메뉴판이다. 조명이 어두운 편이라 찍지는 못했지만, 덮밥을 기본으로 그 외에 오무라이스, 카레라이스 등의 식사 메뉴와 타코야키, 고로케, 카라아게 등 안주가 될 만한 요리들을 같이 파는 곳이었다. 가게 주인은 한국인이었지만, 일본의 도쿄조리전문학교를 나왔는지 졸업 증서가 주방 위에 걸려 있었다.
이 날은 덮밥 중에 카츠동(돈까스덮밥. 6000\)을 시켰다. 모양새는 예상한 대로였고, 유부가 든 일본식 된장국이 따라나왔다. 깍두기와 단무지는 알아서 먹을 만큼 담도록 되어 있는데, 일단 돈부리 자체가 그렇게 간간한 음식은 아니라서 조금만 덜었다.
돈까스 한 조각을 뒤집어서. 물론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덮밥에 들어가는 돈까스 치고는 어느 정도 두툼한 고기를 썼는지 씹는 맛이 괜찮았다. 양파도 씹는 식감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녹진하게 익어 있었고, 덮밥 소스는 생각보다 그렇게 심하게 짜거나 달지 않아서 첫 인상은 꽤 괜찮았다.
하지만 이 첫 방문 이후 두 번째로 찾아가기까지 거의 두 달이나 걸렸는데, 4월 19일 이후로 세종문화회관에 공연 보러간 적이 한 번도 없었고-지금도 그렇다-그렇다고 근처 교보문고에도 갈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좀처럼 궁둥짝을 떼기 힘들었다. 아무튼 그런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6월 중순에 두 번째로 찾아갔다.
이 때 시킨 것은 새우가츠동(새우튀김덮밥. 6000\). 여기도 돈부리이야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츠동과 새우가츠동을 조합한 메뉴가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각각의 재료맛을 느끼기 위해 따로 주문했다. 여기도 비슷하게 새우튀김 네 조각이 얹혀서 나왔는데, 다만 두 마리를 잘라서 내놓았던 돈부리이야기와 달리 여기서는 그보다는 좀 작은 새우 네 마리를 튀겨서 내왔다.
물론 그렇다고 껍데기만 버석거리며 씹히는 류의 새우튀김은 아니었고, 이것도 살이 어느 정도 차 있는 중하급 새우를 튀겨낸 것 같았다. 물론 느끼한 정도는 비슷했던 탓에 깍두기와 단무지가 좀 더 필요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세 번째로 6.25 다음날 가봤다. 이번에는 주방을 마주한 다이 쪽에 앉았는데, 마침 코앞에 생갈치 1호의 행방불명(가칭???)의 유바바가 노려보고 있는 주사위 달력이 눈에 띄었다. 26일로 맞춰보려고 했지만, 주사위에 아쉽게도 6이 없어서 그냥 저렇게 놔뒀다.
이 날은 오야코동(닭고기달걀덮밥. 7000\)을 시켜 먹었다. 다만 좀 이상한게, 돈부리이야기에서는 오야코동이 가츠동이나 새우가츠동보다 더 저렴했지만 여기서는 거꾸로 1000원 더 비싼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국내산 닭을 쓰는 것도 아니어서, 가격 면에서 좀 이해가 안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거 먹자고 작정하고 왔으니 그냥 주문했다.
고기는 깍뚝썰기되어 있었고, 오그라들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익혀서 괜찮았다. 그리고 튀겨서 나오는 가츠동이나 새우가츠동보다는 좀 더 깔끔한 맛이었고. 이렇게 해서 개인적으로 3대 돈부리로 치는 메뉴들을 모두 맛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해산물 덮밥으로 사케돈부리(연어덮밥)나 우나동도 있었고 카레라이스나 오무라이스도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모두 포기했다. 전자는 해산물 메뉴 답게 가격의 압뷁이 있었고 후자는 미국산으로 표시한 쇠고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국산 쇠고기를 쓴다고 해서 욕할 수는 없겠고, 오히려 원산지 표기를 속이고 영업하는 일부 악덕 업주들보다는 더 진실한 모습이라 마음에 들었다.
아직까지 4~6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새로 이전한 정광수의 돈까스가게라던가 회기역 인근의 어느 중국집, 경의선 소요산 이북 구간 재개통 이후 가서 먹은 약수식당의 순두부보리밥, 영등포 쪽의 모 중식뷔페, 홍대 푸르지오의 카레집, 노량진의 어느 볶음밥 식당 등등 포스팅 거리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 다만 이 블로그가 소위 '식도락 블로그' 로 편향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주제들과 번갈아 포스팅한다는 원칙은 지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