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향의 공연은 곡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번스타인의 현악 소품과 '행성' 의 목성 후반부 두 곡의 앵콜로 마무리되었고, 공연장인 부산문화회관을 나와 보니 이미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은 이미 문을 닫았을 때였고, 실제로 호프집 같은 술집 외에는 영업하고 있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어쨌든 2009년 처음 갔을 때와 똑같이 대연역 근처의 어느 찜질방을 숙박 장소로 잡았기 때문에, 역 쪽으로 다시 가기는 가야 했다. 그래서 늦은 시장끼를 느끼며 걷다가 마찬가지로 첫 방문 때 먹었던 적이 있던 쌍둥이 돼지국밥 쪽을 봤다. 다행히 그 시간대에도 계속 영업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손님도 여전히 바글바글했다.
아마 금요일이었으니 여기서 수육과 소주, 혹은 국밥과 소주로 첫 주말 밤을 보내고 싶은 이들도 많았을 거고, 나도 소주는 빼고 그 밤을 잠시나마 보내고 싶었다. 당연히 바로 들어갔고, 혼자였기 때문에 기둥 쪽의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가격표. 2009년 때와 거의 똑같다는 점이 놀라웠는데, 다만 국밥 두 종류는 모두 500원씩 인상되어 있었다. 첫 방문 때 국밥을 먹었다고 하자 '여기는 국밥 보다는 수육백반이 유명한데' 라는 부산 사람들의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그걸 먹자고 다짐하고 왔으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밑반찬들. 국밥을 시켰을 때와 달리 상추 한 바구니가 추가로 나왔다.
그리고 이어 수육이 담긴 접시와 국물 그릇, 공기밥 하나가 같이 나와 세팅 마무리.
수육 접시. 밑에 작은 고체 연료를 담은 선반이 받쳐져 있어서 비교적 뜨끈하게 먹을 수 있었다. 왼쪽은 아마 목전지인 것 같았고, 오른쪽은 항정살이었다.
공기밥과 국물. 공기밥이야 평범했고, 국물도 수육 따로 나오는 것으로 시켰으니 그냥 맹탕으로 보였다.
하지만 부추무침을 싹 덜어넣고,
공기밥을 말아서 저어 보니 여기도 고깃점이 두세 개 정도는 걸려 나왔다. 물론 돼지국밥으로 먹을 때보다는 적은 양이겠지만, 수육에 이것까지 합하면 뭔가 땡잡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 날 주역은 수육이었으니 우선 이것부터 처묵했다. 이렇게 양파절임과 생마늘, 쌈장을 올려 먹었는데, 생마늘은 너무 매워서 고깃집에서는 반드시 구워먹었지만 이번에는 한 번 그냥 먹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대부분은 생각보다 심하게 맵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몇 조각이 끝내주게 찌릿하고 매워서 결국 한 조각은 남겼다.
상추가 다 떨어지면 이렇게 새우젓에 찍어먹기도 했고,
와사비 푼 초간장에 찍어먹기도 했다. 어떻게 먹으나 맛있었고, 덕분에 날아갈 뻔한 한 끼를 되찾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수육을 다 먹은 뒤 접시에 남은 국물까지도 아까워 국밥 그릇에 부어넣고 허겁지겁 먹어댔다.
물론 마늘 한 조각과 양념장, 새우젓국 약간 빼면 모두 처묵 성공. 이렇게 해서 첫 날 부산의 대표 먹거리라고 하는 것들 중 두 종류를 모두 처묵처묵할 수 있었다.
늦은 저녁을 해결한 뒤, 근처 PC방에 잠깐 들러 핸드폰에 잔뜩 저장되어 있던 사진을 편집해 외장하드로 옮겨놓는 작업을 하고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하지만 알람을 맞춰놓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늦게 일어났는데, 그 때문에 다음 날 일정도 다소 바쁘게 시작해야 했다. 그 때 먹은 아점에 대해서는 역시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