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동인 작가들이 일단 프로가 되면 동인 행사에 참가하는 빈도 수가 눈에 띄게 적어진다. 아무래도 프로로서 떠맡아야 하는 작업량 자체가 많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이 블로그에도 홈페이지 'Butterfly Dream' 을 링크해놓을 정도로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인 나르닥 화백도 예외는 아니다.
트위터에서 극우 쓰레기 인증을 한 작가의 책을 몽땅 처분한 뒤로는 이제 라이트노벨과도 별로 접점이 없고 온라인 게임도 하는 게 없는 내게는 직접 체감이 안되지만, 이런저런 라이트노벨의 삽화가나 게임 디자이너로도 저 작가의 이름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이후 동인계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봤자 몇 년에 한 번 정도로 매우 적어지고 있다.
그래도 그 적은 기회를 잡는 순간은 놓치고 싶지 않은데, 통산 네 번째 개인 일러스트북을 들고 오랜만에 서코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해서 윗 동네의 두 번째 황제 뽀그리우스가 귀빠진 날이기도 했던 16일에 수면 부족으로 피곤한 몸을 끌고 SETEC으로 갔다.
Butterfly Dream (1관 G16): 컬러 일러스트북 'Mariposa' (10000\)
위에 주절댄 바로 그 나르닥 화백의 작품. 가격이 꽤 비싸게 보이기도 하지만, 동인 일러스트북 치고는 50여 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에 올컬러인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가 그 사이 치솟고 있는 종이값과 인쇄 비용까지 고려해 보면 더더욱 그렇고.
2010년에 세 번째 개인 일러북 'Butterfly Garden' 을 내놓은 지 3년 만의 동인 '컴백' 작품이었는데, 기존의 여러 앤솔로지 일러북과 픽시브 등 개인 사이트에 업로드한 그림, 여러 게임 등에 사용된 상업 일러스트 등을 망라한 귀한 책이었다.
그리고 열광적으로 기다린 이 일러스트북 외에 내가 노리던 또 하나의 책이 있었는데, 이건 따로 독립 부스를 만들어 놓을 정도로 관람객이 많아서 서코에서는 원체 안하던 '줄 서서 기다리는 짓' 까지 감수해야 했다.
POTE (1관 H31/32): 컬러 일러스트북 '문자남매 Ver.ILLUST' (3000\)
(↑ 독립_부스의_위엄.jpg)
지난 연말 서코에서도 목격하기는 했지만 막상 본격적인 첫 대면과 구입은 동네 페스타에서 했던 NiTe 화백의 웹툰 '문자남매' 의 일러북이었다. 두 권의 동인지 외에 따로 컬러 일러스트북까지 만들 정도인 것을 보면 작가든 독자든 간에 작품에 쏟는 관심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 웹툰이 부정기 연재된다는 루리웹은 별로 가보지를 않아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 지는 잘 모르지만, 지난 번 서코 때도 그렇고 몰려든 인파를 보면 네이뷁이나 당므에 공식 연재되는 웹툰 만큼은 아니라도 나름대로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러북은 각 남매 별로 세 페이지씩 할애된 단촐한 구성이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무리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번 서코의 구매 행위는 이걸로 끝. 물론 다른 부스에서도 마음에 드는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예전보다 더 얇아진 지갑은 그 이상의 구매욕을 내고 싶어도 못내게 만들었다. 그냥 3월을 기약하는 수밖에.
Dessert Candy(1관 D14)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공물' 을 바치고, 1월에 구입한 보컬로이드 엽서달력 세트에 누락되었던 스티커를 받아온 뒤 행사장을 나왔다. 다만 바로 집에 간 것은 아니었고, 3호선을 타고 가다가 국립예술자료원에 구스타보 두다멜의 도이체 그라모폰 영상물이 새로 들어왔다고 해서 빌려올까 하고 들렀다.
하지만 해당 영상물은 특정 이용자가 신청해 들여온 것이라고 해서 그 이용자가 대출하기 전까지는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 검색 시스템에 이런 사실이 표기되지 않아 '낚인' 셈이었고, 그 대신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을 지휘해 EMI에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CD를 빌린 뒤 집으로 왔다.
노리던 물품들이 빨리 동날까봐 예전보다 일찍 갔다온 것이 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밀리는 고생을 자초했는데, 물론 나르닥 화백의 일러북은 명성 덕에 당일 판매분이 꽤 빨리 매진되었기 때문에 일찍 간 것이 멍청한 짓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에 집에 돌아온 뒤로 어질어질할 정도로 녹초가 되었고, 요즘 거의 안자던 낮잠까지 두 시간 정도 자면서 회복을 기다려야 했다.
두 작가 모두 이후 언제 또 동인 행사에 참가할 지는 모르지만, 또 언제 지갑 사정이 회복될 지도 모르지만, 일단 3월 서코에서는 누가 어떤 것을 들고 나올 지를 기대하고 싶다. 사실 기대치는 후자가 월등히 높지만. 진짜 복권이라도 긁어 봐야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