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방송국 측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스스로, 혹은 시청자들의 제보로 인지했는지 2011년 중반 무렵에 이르러 녹음 쪽에도 어느 정도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요즘 내가 이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클래식이 아닌 재즈다.
토마토TV의 사옥에는 여느 방송국 건물들처럼 여러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지하1층에 마련된 반원형 소극장인 아르떼홀도 있다. 아르떼TV에서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 중 소규모 공연이나 대담 등을 여기서 바로 녹화하는 경우도 많은데, 대개 편성이 클래식 보다는 작은 편인 재즈 기준으로 빅 밴드 까지도 수용 가능한 무대를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공연 녹화는 이 홀에서 수요일 혹은 목요일에 개최되는 수목콘서트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아르떼TV에서 내놓고 있는 재즈 프로그램의 절대 다수도 이 곳에서 방송을 전제로 한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하고 녹화한 것들인데, 여기서 처음 접한 프로그램이 작년 10월 24일에 수목콘서트의 일환으로 열린 필윤그룹의 2집 발매 기념 콘서트였다. Bull's Eyes 한 곡을 제외하면 모든 음반 수록곡을 라이브로 연주한 것이었는데, 이 콘서트 덕에 2집을 사기 전에 미리 예습 식으로 음악을 들어볼 수 있었다.
수록곡은 비슷하다고 해도 연주진이 다르고, 또 스튜디오와 라이브의 차이점이 상당히 극명한 편인 재즈의 특성 상 이 공연도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 외에도 2011년 9월 30일에 '재즈홀릭' 이라는 콘서트 시리즈의 두 번째 공연으로 개최된 스트레이트 어헤드-역시 필윤이 드럼을 맡고 있다-의 콘서트를 또 볼 수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해당 그룹의 음반 수록곡 위주가 아닌 '재즈 리듬' 을 주제로 한 스탠더드 넘버 위주의 공연이라 이것 역시 구미가 당겼다.
실제로 아르떼TV 측에서도 수익 모델을 재즈 쪽에서 많이 찾고 있는지, 현재 스트리밍 서비스든 DVD든 유료로 제공하고 있는 게 거의 재즈 프로그램들이다. 스트리밍의 경우 올해 이전의 프로그램은 1회(결제 시점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3000원이라는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DVD의 경우 프로그램의 러닝 타임에 상관 없이 33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두 프로그램 모두 유료 스트리밍으로 한 차례씩 봤지만, 이용 시간 제한이 있다는 점이 늘 걸렸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DVD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받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착오 없이 모두 도착했다.
지상파 방송에서 제작하는 DVD들과 마찬가지로, 공식 시판품은 아니기 때문에 디자인의 천편일률적인 모습은 감수해야 한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겉보기가 어떻든 프로그램만 제대로 수록되어 있다면 별 상관은 없지만.
쭉 본 뒤 개인적으로 평가해 본다면, 아르떼TV의 프로그램 제작 완성도는 아직 클래식보다 재즈 쪽이 더 높아 보인다. 물론 홈그라운드에서 바로 공연을 개최하고 녹화/편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다는 이점도 무시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해도 같은 혹은 비슷한 장비를 동원해 제작하는 것으로 보이는 클래식 쪽의 음질은 아직까지 히스 노이즈가 좀 거슬리게 깔리는 등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실제로 청중들을 모아놓고 진행한 라이브 연주를 담고 있지만, 객석의 소음은 상당 부분 차단되어 감상하기에 상당히 편안하다. 물론 솔로 사이사이의 박수도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도 연주 청취에 방해가 될 정도로 크게 잡히지는 않고 있어서 사운드 엔지니어가 이 방면에서 상당한 연륜과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 워킹도 마찬가지인데, 현장에서 들어본 바로는 텔레비전 공연 프로그램으로는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EBS 스페이스 공감의 예전 스탭진들이 기용되어 연출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솔로와 코러스의 구분도 아구가 딱딱 맞게 나뉘고, 솔로가 길어질 경우 다양한 위치의 카메라 워킹을 통해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다.
이 DVD들을 주문해 받기 전이었던 올해 2월부터 11월까지는 아르떼홀에 매달 한 번씩 방문해 공연을 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미 이 포스팅에서 쓴 바 있는, 필윤이 호스트를 맡아 진행한 '필윤의 재즈 스토리' 시리즈였다. 현장에서 청중으로 빠짐없이 관람하면서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도 직접 볼 수 있었던 기회였는데, 물론 시행 착오도 있었기는 하지만 NG의 편집이라던가 실제로 카메라가 돌아가는 모습, 스탭들의 움직임 등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공연 실황 녹화의 진행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여러 모로 매력적인 순간이었는데, 다만 올해 제작되는 프로그램 부터는 편당 DVD 제작 비용이 무려 50000원(!!)이나 되기 때문에 부담이 상당히 커져 버렸다. 일단 저 '필윤의 재즈 스토리' 전편을 소장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50만원을 말 그대로 '때려박아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할 지 상당히 망설여지고 있다. 가격의 합리화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좋을 텐데.
그리고 지난 9월의 재즈 음반 포스팅 중 원로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의 'with strings' 음반에서 지나가듯 언급한, 한국 최초의 'with strings' 앨범이라는 트럼페터 최선배의 음반도 알라딘에서 구입했다.
최선배 역시 한국의 재즈 연주자들 중 1세대에 해당하는 원로 인사인데, 원래는 여느 재즈 연주자들처럼 미 8군 클럽에서 연주 생활을 시작했다가 1970년대 무렵 미국에서 유행한 프리 재즈를 한국에 들여와 이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프리 재즈 시기의 연주를 음반으로 듣기는 상당히 힘들 것으로 생각되는데, 첫 앨범이 한참 뒤인 1998년에, 그것도 일본에서 나왔고 한국에 수입이 되었는 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내가 저 원로 트럼페터의 음악으로 접하게 된 것은 프리 재즈가 아닌, 상술한 'with strings' 라는 '지극히 상업적인' 컨셉의 음악이었다. 하지만 내가 재즈를 처음 접할 때도 클래식 전공이다 보니 저 컨셉은 노골적인 상업성을 띄고 있든 아니든 간에 꽤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아직 재즈의 변방에 있는 한국에서 처음 시도한 것이라고 하니 이것 역시 소유욕을 자극했다.
이 한국 재즈 음악인의 첫 'with strings' 음반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녹음되었는데, 2010년 3월과 6월, 8월(오버덥) 세 차례 동안 헐리우드의 노스 힐 스튜디오에서 제작되었다고 나와 있다. 이런 편성의 음반에서 독주자 다음으로 (혹은 독주자 만큼이나) 중요한 편곡은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이 대부분 전담했다. (다만 보사노바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Corcovado에서는 보컬과 기타로 참가한 마르셀 카마르구의 편곡을 사용했다.)
음반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최선배의 트럼펫/플뤼겔호른 솔로지만, Corcovado(카마르구)와 'Round Midnight, My One & Only Love(이상 캐슬린 그레이스) 같이 보컬을 더한 곡도 있다. 또 바이올린 6-비올라-첼로로 구성된 현악 합주가 모든 곡에서 기용된 것은 아니고, 전 열세 곡 중 일곱 곡에서 연주하고 있다. 합주 단원들의 성은 한국 것이지만 이름이 모두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모두 재미교포 음악인으로 채운 모양이다.
리듬 섹션도 미국에서 녹음한 만큼, 편곡과 함께 피아노도 담당한 조윤성 외에는 해밀턴 프라이스(베이스)와 제이미 테이트(드럼) 두 현지 음악인이 기용되었다. 그리고 현악 합주에서 비올라를 맡은 미겔 앳우드는 재즈 쪽에서 주로 활동하는 지, 드물게 솔로를 연주하며 최선배의 연주를 수식해 주기도 한다.
사실 연주진은 제쳐두더라도, 지난 번 박성연 앨범처럼 70대 원로 연주자의 음반이라는 것 때문에 뭔가 세월의 버거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게다가 60대만 돼도 정말 최고령 취급받는 금관악기 주자인데. 하지만 현악 합주를 동원한 앨범이라는 관념에 충실했는지, 힘을 뺀 편안함과 함께 충분한 안정감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You Don't Know What Love is 같은 곡에서는 예전의 프리 재즈 때 보여줬을 법한 상당히 빠르고 전위적인 느낌의 솔로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트랙에서는 'Round Midnight이 무반주 트럼펫 연주로 한 차례 더 수록되어 있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다만 이 음반은 나온 지 불과 3년 정도 지났음에도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빨리 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한국 재즈 음반 시장의 수요가 참 적다는 게 여기서도 느껴진다. 물론 장르를 불문하고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원체 수요와 공급 모두가 적었던 한국 재즈라서 더더욱 그렇다.
이제 음반 쪽에서 내가 구입한 것은 웬만한 건 다 쓴 셈인데, 일단 다음에 쓸 것도 각각 미스티레코드와 북오프 신촌점에서 구입한 것이다. 다만 구입은 멈춰 있어도 다른 기회에 받은 것도 있어서, 이것도 조만간 써볼 생각이다. 특히 그 받은 기회 자체도 내게 있어서 상당히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이것도 나중에 아예 따로 독립시켜 끄적여도 될 것 같다. 뭐가 어찌 되든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