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돈까스를 상당히 좋아하는 먹성 때문에 한양대 근처의 행운돈까스라는 가게를 꽤 자주 찾아갔는데, 사실 그 바로 맞은 편에도 뭔가 솔깃해 보이는 곳이 있었다. '호코리' 라는 이름의 음식점이었는데, 그릴구이 전문점이라고 되어 있었다.
다만 굽는 고기라면 식사 보다는 안주 혹은 술을 곁들인 회식 정도가 연상되는데, 여기는 그게 아니라 식사 위주의 밥집같은 분위기라는 점이 달랐다. 어차피 여럿이서 몰려가 뭘 먹는 일도 별로 없고, 또 술도 그냥 집에서 조용히 마시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고기를 단촐한 식사 개념으로 먹을 수 있는 곳 역시 반가웠다.
처음 간 날이 노동절 저녁이었는데, 가게 앞은 이렇게 생겼다. 왼쪽 귀퉁이에 바로 행운돈까스 입간판이 보일 정도로 좁다란 골목길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실제로 행운돈까스에서 단체 손님들이 와서 이것저것 시켜먹을 때 여기서도 몇 가지를 같이 시켜서 가져와 먹는 모습도 봤으니 두 집이 서로 사이가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주력으로 하는 음식이 다르니 당연한가?
메뉴를 보니 데리야키 계열 숯불구이를 중심으로 거기에 오징어볶음이나 카레를 더하거나 육쌈냉면 비슷하게 냉면에 숯불구이 고기를 곁들여 먹는 식으로 짜여져 있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노린 건 오로지 숯불구이 두 종류와 스파이시치킨이었는데, 이것저것 차려먹는 걸 번거롭게 여기는 탓에 단순한 고기+밥의 조합이 내 취향에 맞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간단한 테이블 세팅. 수저통에 숟가락만 덜렁 꽂혀 있지만, 저녁 때도 지나고 해서 설거지 중이라 그랬고 다른 테이블에는 포크도 같이 꽂혀 있었다. 앙념통에 든 건 데리야키 소스였는데, 어차피 고기 위에 뿌려져 나오기 때문에 또 쓸 일은 없었다.
식탁에 비치된 코팅 메뉴판도 음료수 가격이 표기된 것을 빼면 들어가기 전 본 입간판과 동일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중 어떤 걸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전자를 택한다. 그래서 여기서 한 첫 주문도 포크데리야키였는데, 마치 학식 같은 모양새였다. 오이피클과 배추김치, 된장국 세 종류는 기본적으로 냉면을 제외하면 다 따라나오는 것 같았는데, 피클은 결국 입에도 못댔다.
밥과 양배추채, 고기가 가지런히 담겨져 나왔는데, 대학가 식당 답게 양이 꽤 되는 편이었다. 고기는 물론 가격대를 생각하면 저렴한 전지 부위였는데, 그리 질기거나 퍽퍽하지는 않았고 데리야키 소스 자체가 달달해서 싼 값에 고기 먹는 느낌을 내기에는 괜찮았다. 그리고 그 달달함 때문에 굳이 소스를 더 뿌려먹지 않았는데, 고기요리를 그리 달게 먹지 않는 탓에 김치의 도움을 좀 받아야 했다.
물론 밑반찬을 제외하면 싹 비웠는데, 이 고기 먹는 재미에 이끌려 나머지 두 메뉴도 먹어보고 싶어서 이틀 뒤에 또 찾아갔다.
첫 방문 때 돼지고기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닭고기 차례였다. 닭고기는 내 취향에서 영원한 콩라인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체질에 안맞는다는 주변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아하는 고기의 상위권을 다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 번 피클이 나오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예 피클을 빼달라고 했다.
나온 모양새는 포크데리야키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물론 치킨데리야키였으니 당연히 닭고기가 주역이었다. 이것 역시 단가 때문에 수입 닭다리살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그 달달함이 익숙해지면 먹을 만한 메뉴였다. 사진은 못찍었지만, 이것 역시 무난하게 비워냈다.
그리고 또 이틀 뒤인 어린이날에는 정해둔 마지막 메뉴인 스파이시치킨을 시켜 먹었다.
다른 고기 메뉴와 달리 꽤 매워 보이는 소스 색깔과 동그랗게 썬 양파가 눈에 띄었는데, 매운 걸 먹기는 하지만 늘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맵긴 했지만, 매운 강도는 양념치킨을 좀 더 맵게 한 정도로 그리 심하지는 않았고 달달하게만 먹다가 매콤하게 양념한 고기를 먹으니 기분 전환도 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것도 싹 비웠다. 세 메뉴 모두 고기성애자+밥돌이인 내게는 매력적이었는데, 물론 고기의 질 같은 걸 많이 따지는 사람이라면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대학가 식당 특유의 박리다매를 노리고 갔기 때문에 가격 대 성능비가 꽤 괜찮은 집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후에는 비록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왕십리역 이마트에서 장보고 올 때 행운돈까스와 함께 번갈아 가며 들러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꽤 자주 먹은 순대국도 있는데, 원래 순대국은 체인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 편이었지만 요 근래에 꽤 공격적으로 지점 확장에 열을 올리는 한 프랜차이즈가 있다. 이름은 웬만하면 다 알 것 같지만 여긴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