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명훈이 예술 감독 겸 상임 지휘자를 맡아 잘나가고 있다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이지만, 창단된 지 50년이 훌쩍 넘어가는 이 악단도 그 이전에 리즈시절을 맞은 적이 물론 몇 차례 있었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볼 때 약간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순간마저 없었다면 이 악단이 지금까지 굴러가고 있을 지도 의문이다.
역대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 중 최장기 재임 기록을 갖고 있는 지휘자가 정재동인데, 3대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던 원경수가 불과 부임 1년 만인 1971년에 사임하자 전임 지휘자라는 직책으로 들어와 악단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어 1974년에 상임 지휘자로 공식 취임한 이래 1990년까지 악단을 이끌었는데, 전임 지휘자 시기까지 합하면 거의 20년을 이 악단과 함께 한 셈이다.
정재동 재임기에 서울시향은 꽤 여러 면에서 변화를 겪었는데, 일반적인 정기 연주회 외에도 팝스 콘서트나 한국 작곡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연주하는 '범세대 음악회', 청소년 음악회 등의 기획 공연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악단 규모도 커져 대규모 편성 작품의 연주가 한결 용이해졌고,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창단 이래 처음으로 유럽 순회 공연을 진행하는 등 해외 연주 경력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이렇게 굵직한 사례만 뜯어봐도 정명훈 이전에 이 악단이 리즈시절을 누렸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정명훈 이전에 악단의 상업 녹음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것도 정재동의 공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두 포스팅들에서 소개한 서울음반과 SKC의 음반들도 각각 1987년과 1989년에 출반되었고, 서울음반 음반 출반 이전에는 성음에서 서울시립합창단과 안익태의 만주환상곡한국환상곡 축약판과 김희조 편곡의 합창과 관현악 '아리랑', 관현악 '천안 삼거리', '밀양 아리랑', 그리고 김성태의 한국 기상곡을 담은 LP를 발매하기도 했다.
정재동은 1990년에 퇴임한 후 중앙대 음대 학장을 역임했다가 1994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퇴임 후에도 연간 1~2회 가량은 객원 지휘자로 서울시향을 비롯한 한국 관현악단들과 연주회를 가졌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무렵부터 건강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는지 2001년 이후로는 공연 소식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심장 수술을 받고 의사의 충고에 따라 지휘 활동을 중단한 것이었다. 사실 서울시향 퇴임 직후인 1991년에도 우측 신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었으니, 이미 1990년대부터 건강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정재동이 한국 무대에 선 기록이 딱 한 번 있었는데, 2005년 5월 31일에 열린 교향악축제의 개막 공연에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코심)를 지휘한 것이었다. 보통 교향악축제는 매년 3월 혹은 4월에 규칙적으로 열리기 마련이지만, 2005년에는 몇 달 미뤄 5~6월 동안 개최되었다. 예술의 전당 음악당의 개보수 공사 때문이었는데, 이 교향악축제도 그 때문인지 음악당 재개관 기념 공연을 겸해 열렸다.
정재동의 귀국 공연 소식은 음악계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는지, 몇몇 언론에서 공연 전에 특별히 기사를 쓸 정도였다. (동아일보의 관련 기사) 프로그램도 꽤 흥미로웠는데, 1부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축전 서곡과 베토벤의 합창 환상곡이, 2부에서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이 연주되었다. 고령의 나이로 무대에 선 지휘자로서는 꽤 부담스러웠을 지도 모르는 선곡이었지만, 공연은 별 탈 없이 제대로 진행되었다.
당시 교향악축제의 공연 실황은 KBS 위성 채널을 통해 중계되었는데, 이걸 KBS 미디어에서 DVD로 제작한 것을 지인이 입수했다고 해서 빌려볼 수 있었다. 물론 당시 KBS의 공연 녹음/녹화 스킬이 좀 후달렸던 관계로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일단 나름대로 역사적인 기록물이었던 만큼 꾹 참고(???) 보기로 했다.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르는 정재동의 모습에서는 확실히 연륜이 느껴졌는데, 그래도 의자를 갖다놓고 지휘할 만큼 건강이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지휘 동작은 훨씬 간결하고 단순해졌는데, 뽑아 내는 음악은 그렇지 않았고.
음질이 좋지는 않아 유감이었지만, 첫 곡인 쇼스타코비치에서부터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연주를 뽑아내 좋은 인상을 받았다. 템포는 약간 느린 편이었지만, 금관과 타악기가 강조되는 축제 분위기의 곡이라는 개성을 잘 살려냈다.
마지막 부분의 추가 금관 주자들(호른 4+트럼펫 3+트롬본 3)은 합창석에서 연주했다. 다만 지휘자의 해석 때문인지 녹음 문제인지 크게 질러내는 듯한 음량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두 번째 곡인 합창 환상곡은 한참 뒤에 등장하는 9번 교향곡 4악장의 프로토타입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데, 다만 실제 공연 사례는 피아니스트와 합창단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인지 그다지 많지는 않은 편이다. 이 공연에서 피아니스트는 신수정이, 합창은 국립합창단과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러스(당시 명칭은 부천시립합창단)가 협연했다. 아쉽게도 이 곡은 이 연주회 전체에서 어느 정도 아킬레스 건이었는데, 신수정의 컨디션이 좀 좋지 않았는지 미스터치나 거친 프레이징 처리가 자주 보이는 편이라 안타까웠다.
물론 흥미로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피아노 보면대에 일반적인 종이 악보가 아니라 무슨 스크린을 놓은 것이 눈에 띄는데, 연주 중 연주자 자신 혹은 넘돌이/넘순이가 넘길 필요가 없는 전자 악보를 시험삼아 쓴 것 같다. 물론 넘돌이 혹은 넘순이는 키보드 혹은 조이스틱 같은 것을 가지고 무대 뒤나 관객석에서 '자신의 임무' 를 수행했을 것 같지만.
객원 악장으로 초빙된 듯한 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민간 관현악단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는 코심이지만, 항상 재정이 좋지 않아 지금도 단원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당시에도 악장이 없어서 매 공연 때마다 객원 악장을 불러와야 했다고 하는데, 물론 이런 경우가 한국에서는 드문 것이 아니라지만 그런 관행 자체가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곡 후반부에 등장하는 중창과 합창. 합창단 두 군데를 섭외한 만큼 꿀리지 않는 음량을 보여주었는데, 다만 녹음할 때 마이크를 너무 바짝 들이대고 녹음했는지 디스토션이 심하게 걸려서 듣기에 꽤 피곤했다. 물론 이러한 난점은 이 곡 말고도 쇼스타코비치와 브루크너 모두 해당되는데, NHK나 독일 방송들이 보여주는 외계인 고문급 고퀄까지는 기대할 수 없다고 해도 방송국이 공연 중계 때 음향에 너무 신경을 안쓴다는게 티가 날 정도다.
2부에서 연주된 브루크너 교향곡은 안톤 브루크너 디스코그래피의 정보에 따르면 하스판을 사용했는데, 다만 이 판본을 택한 대부분의 지휘자들과 마찬가지로 2악장 클라이맥스에서 타악기를 추가해 연주하는 초판본 혹은 노바크판의 아이디어를 첨삭했다.
금관이 상당히 부각되는 브루크너 교향곡의 특성 때문인지 이 부분에서 꽤 신경을 쓴 기색이 보였는데, 튜바와 바그너 튜바를 제외한 금관악기들이 한 대씩 증편되었다. 다만 목관의 경우는 그냥 기존 2관 편성을 그대로 유지했고. 그리고 트럼페터들은 1부에서 사용한 피스톤식 트럼펫 대신 로터리식 트럼펫으로 연주했다.
템포는 다른 브루크너 연주들과 비교하면 좀 느린 편이었는데, 특히 2악장의 경우 평균 20~22분 정도 걸리는 것을 여기서는 25분 가까이 늘렸다. 물론 만년의 첼리비다케처럼 정신과 시간의 방 수준의 느림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템포를 늦췄다고 연주의 텐션까지 같이 떨어지지는 않았고.
비교 짤방. 윗쪽이 피스톤식, 아랫쪽이 로터리식 트럼펫 연주 장면이다. 두 악기의 차이점이 정확히 뭔지는 전공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정재동 뿐 아니라 브루크너 연주에 일가견이 있는 박은성이나 금노상 같은 지휘자들이 브루크너 교향곡 연주 때 유독 로터리 트럼펫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이유가 있어 보인다.
2악장과 4악장에 등장하는 바그너 튜바도 그대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레귤러 악기가 아니다 보니 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데, 이 때문에 몇몇 악단에서는 테너 바그너 튜바의 경우 알토호른을, 베이스 바그너 튜바의 경우 유포니움을 대체 악기로 쓰기도 한다. 그래도 악기가 어느 정도 확보가 되어 있는지, 2007년 교향악축제 때 제주도립교향악단의 공연에서도 대체 악기 없이 바그너 튜바를 그대로 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악장 클라이맥스에서만 연주하는 심벌즈와 트라이앵글. 다만 이 장면에서 타악기 연주가 끝났는데도 카메라를 또 비추는 등 좀 어설픈 카메라 워킹이 눈에 띄었다. 요즘에야 아르떼TV 같은 데서 음악 전문 영상 프로듀서들이 있어서 나름대로 뮤비스러운 카메라 워킹을 보여주지만, 이 당시만 해도 그런 역량이 충분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연주 종료 후 미소를 지으며 단원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정재동의 모습.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연주라고 느꼈던 것일까? 다만 이 공연 이후 지금까지도 정재동이 한국 무대에서 지휘했다는 기사를 보지 못해서, 이것이 지금까지는 마지막 한국 공연이 아닌가 싶다. 이 연주가 끝나고도 6년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아마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쉽게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이고.
이런저런 녹음/녹화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가곡이나 찬송가를 제외한 클래식 음반이나 영상물이 전무하다시피한 코심의 기록물이자 노지휘자가 간만에 가진 귀국 무대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가치를 갖고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