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졸업생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학교 주변에서 뭔가 쳐묵한다고 하면 모교 보다는 외대 쪽으로 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왜 그랬는 지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없지만, 아무래도 어릴 적 자주 갔던 외갓집이 있던 지역이 그 쪽이라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찾아간 두 군데도 경희대보다는 외대에서 더 가까워서 그 쪽 상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에 반 년 가량 있다가 귀국한 뒤 첫 외식을 한 곳이 버드나무집이라는 국밥집이었다. 이미 여기서는 몇 차례 포스팅 거리가 된 곳이었는데, 물론 독일에서도 돼지고기는 부어스트(소시지)로든 고기로든 뻔질나게 먹었지만 그걸로 국을 끓여먹는 문화는 거기도 없어서 소위 '가장 한국적인 음식' 이라는 김치보다도 더 땡겼던게 이 곳 국밥이었다.
다만 처음 갔을 때는 아직 시차 피로에 시달리던 귀국 초기 시점이라서, 배고픔과 졸음이 범벅된 상황이라 폰카를 꺼내들 생각도 잊어먹고 말았다. 그 젠장맞을 시차 피로를 극복하고 나서 다시 찾아간 것이 3월 초였고, 이 때는 사진을 박아올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가게 풍경 자체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짤방에는 안보이지만 왼편에는 이 가게의 어원인,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버드나무 한 그루가 여전히 뻗어 있다.
하지만 여기도 결국 물가와 식재료 인상을 피할 수 없었다. 4000원에 머리국밥과 순대국밥을 쳐묵한게 엊그제 같았는데 말이다. 아무튼 현실은 현실이었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우선 머리국밥을 시켜먹었다.
머리국밥 한 상. 마찬가지로 겉모양새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는데, 생으로 나오던 풋고추가 고추절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절임이라고 해도 약오른 풋고추에 데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결국 양파와 깍두기에만 손을 댔다.
물론 가격은 올랐지만 푸짐한 고기 인심은 여전했다. 돼지고기를 고기 중의 으뜸으로 치는 나로서는, 다양한 부위의 머릿고기가 잔뜩 들어 있는 이 국밥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안주 메뉴와 막걸리가 몇 개 추가된 것 같았는데, 특히 주전자막걸리가 꽤 끌리기는 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미뤄뒀다.
며칠 뒤에 갔을 때는 순대국밥을 주문했다. 수북하게 올라간 깻가루 때문에 겉보기에는 머리국밥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풀어헤쳐 보면 물론 확실히 차이가 나는 모습이다. 물론 고추절임과 보통 국밥에 넣어먹지 않는 다대기는 이번에도 패스.
순대가 다소 뿔어 있던게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머리국밥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고깃점이 잔뜩 들어 있어서 마찬가지로 즐겁게 싹 비울 수 있었다. 반 년 넘게 못갔지만 아직까지 나를 알아보시는 주인 아주머니도 여전히 계시고, 맛도 양도 여전한 만큼 단골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가서 이 맛을 계속 즐기고 있다.
돼지고기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고기는 닭고기인데, 다만 닭의 경우 혼자 먹을 수 있는 요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 치킨이든 삼계탕이든 대개 한 마리를 갖고 만들기 때문에, 이걸 혼자서 뜯고 있자면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국물 요리 중에는 반계탕이라던가 닭곰탕 같은 예외도 있지만, 굽거나 튀겨 만드는 요리를 주로 하는 곳에서 1인분을 내놓는 경우는 이상하게도 드물다.
하지만 외대 쪽에서는 그것도 가능하다. 예전에 자주 갔던 하늘푸름이라는 돈까스집 건물의 1층에 자리잡은 음식점인데, 예전부터 소문은 들어봤지만 정작 가서 먹어본 건 졸업하고도 몇 년 더 지나서였다.
그냥 그린치킨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의사양반'닥터' 를 크게 써놓은 간판이 특이한 집이다.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치킨집 혹은 호프집 같은데, 들어가 보면 호프집 분위기 절반 식당 분위기 절반인 곳이다.
메뉴는 이렇다. 치킨집이라고 달아놓았지만 프라이드 치킨이나 양념 치킨은 없고, 식사 메뉴인 양념스테이크와 치킨스테이크, 안주 메뉴인 바베큐가 주가 되는 곳이다. 물론 작정하면 바베큐 한 마리를 시켜서 혼자 쳐묵할 수도 있지만, 뭔가 서글플 것 같아서(...) 그냥 스테이크 메뉴 두 가지만 차례로 먹기로 했다.
스테이크 메뉴를 시키면 먼저 나오는 배추김치와 양배추 샐러드, 밥, 콜라. 메뉴판에도 나와 있지만 여기서는 밥이나 빵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콜라는 1회에 한해 리필이 가능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빵보다는 밥이어서 두 번 다 밥으로 주문했다.
접시에서 아직도 자글자글하게 김을 내뿜고 있는 치킨스테이크. 뜨거운 것을 잘 못먹는 나로서는 꽤 위압적인 모양새라, 일단 잘라놓고 천천히 입에 넣었다.
소스는 달콤짭짤한 맛이라 데리야키 소스인 것 같았고, 양념스테이크도 마찬가지지만 닭다리살을 발라서 만든 것이라 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소스에도 익숙한 탓에 딱히 느끼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물론 이건 사람의 미각에 따라 케바케지만.
두 번째 가서 주문한 양념스테이크. 치킨스테이크와 마찬가지로 지글지글한 모양새로 나왔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일단 다 썰어놓고 쳐묵쳐묵했다.
소스 때깔만 봐도 붉은색이라 꽤 매워 보이는데, 그렇다고 불닭 같은 하드코어한 메뉴처럼 심하게 맵지는 않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다운그레이드 되기 전의 신라면 정도? 하지만 내가 한창 쳐묵할 때 들어온 외국인 손님들은 겉보기에도 좀 두려웠는지 전부 그냥 치킨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있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닭가슴살이 아닌 닭다리살로 만들었다고 실망할 지도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퍽퍽한 닭가슴살 보다는 쫄깃한 식감의 닭다리살을 더 선호해서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부위가 어떻든 간에 혼자서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닭요리고, 그것도 써는 재미가 있는 스테이크로 응용한 것이 독특한 집이라 인상적이었다.
이미 5월인데 3월 초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아직도 밀린 포스팅 거리는 여전히 많다. 경원선 동두천 이북 구간이 재개통했을 때 오랜만에 타본 통근열차라던가, 그리고 대판옥 포스팅 말미에 언급한 라멘집도 써야 하고. 하지만 4일 주기로 올리는 페이스는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언제 또 소재가 떨어질 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