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라면 먼저 울산에서 처묵처묵한 것을 나불대고 이걸 주절대려고 했지만, 울산이든 부산이든 먼저 할 이야기가 음악 관련이라서 주기 좀 맞추려고(??) 여기 썰부터 풀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프랜차이즈 체인점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부정적이지도, 그렇다고 긍정적이지도 않게 보고 있다. 다만 그 맛이 좋건 나쁘건 좋게 말하면 평준화, 나쁘게 말하면 획일화가 되는 게 프랜차이즈라는 선입견도 거의 그대로인게 사실이고. 이 때문에 내가 주로 외식할 때 처묵하는 곳은 그냥 그 자리에서 묵묵히 영업하는 점포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 글에 달린 댓글로 소개받은 곳도 그런 점에서 처음에는 좀처럼 가보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노량진은 요 근래 가성비가 장난이 아니라 꽤 자주 들락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는 그 가성비에서 좀 일탈한 듯한 느낌이었고 거기다가 프랜차이즈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김치맨으로서 순대국밥이나 순대를 마다할 근거는 없었고, 그 때문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가보기로 하고 우선 10월 24일에 사전 답사(?)를 가봤다. 사실 다른 일 때문에 갔고 이미 다른 데서 끼니를 해결한 탓에 예정에는 없었지만, 대충 설명을 듣고 어딘 지 감은 잡았으니 가게 위치라도 확실히 알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요즘은 네이뷁이나 당므의 로드뷰가 있어서 직접 가지 않고도 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다지만, 차나 오토바이 한 대가 겨우 들락거릴 만한 골목까지 커버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럴 때는 그냥 발품을 파는게 낫다.
네이뷁 로드뷰에 따르면 삼익아파트 상가 가기 전 신천지약국과 귀금속 점포(지금은 부동산으로 바뀜) 사이의 골목길인 만양로14길로 들어가는 거라고 되어 있는데, 거기서 옷가게와 철판남매라는 두루치기 음식점(마찬가지로 지금은 덮밥집으로 바뀜) 사이의 골목이라고 했다.
로드뷰로는 절대 볼 수 없는 골목이지만, 저렇게 직접 갔을 때는 심봉사가 아닌 이상 당연히 볼 수 있는 위치다. 모텔 간판과 빨간 바탕의 '병천아우내장터순대' 간판이 보인다.
겉보기에는 매우 작은 골목 구석의 식당이었는데, 2층에 30석이 더 있다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심하게 작지는 않은 것 같았다. 창가로 메뉴판을 힐끔거려 보니 순대국밥이 5000원, 정식이 8000원 정도라서 일단 가성비는 내가 생각하는 그 '노량진' 의 기준에서는 다소 비싼 편이었다.
다만 5000원이라면 외대 쪽 머리국밥집도 같은 가격이고, 좀만 정신줄이 풀리면 정식을 처묵하는 깡(???)도 부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 3일 뒤에는 진짜 먹으러 가보기로 했다. 마침 갔을 때는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었고, 그 때문에라도 국물이 땡기는 날이었다.
1층은 자리가 열여섯 명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좁기는 했지만, 그래도 테이블 하나 정도는 비어 있어서 그냥 올라가지 않고 문에서 가까운 쪽에 앉았다. 참고로 모두 온돌식이라 신발은 벗고 들어가야 한다.
메뉴판. 정식이 뭔가 했는데, 잘 보니 순대국밥과 순대 1인분(3000\)을 합친 것이었다. 생각보다 소박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정식을 한 번 먹기로 했다.
수저통과 물통, 양념통. 국밥 파는 곳 답게 다대기가 든 스뎅 종지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매운맛은 풋고추로도 족하기 때문에 다대기는 일부러 넣어 내오는게 아니면 잘 넣지 않아서 패스.
주문한 뒤 기본적으로 깔리는 밑반찬들. 맑은 새우젓이 눈에 띄었는데, 그러고 보니 충청도 쪽에서는 순대를 새우젓에 찍어먹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선 순대 한 접시가 나왔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렇게 푸짐한 건 결코 아니었는데, 다만 가격이 3000원 정도였으니 이 이상을 기대하는 것도 과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병천이라는 지명을 단 프랜차이즈기는 했지만, 서울식으로 고춧가루 섞인 깨소금 종지도 같이 나왔다.
망한 접사샷. 일단 새우젓은 순대국 먹을 때 간봐야 하니 새우젓과 소금을 번갈아 가며 찍어먹었다. 이렇게 보기에는 그냥 분식집 당면 순대와 다를 바 없었지만, 먹어보니 된장 내음과 우거지 씹히는 맛이 예상 외로 꽤 괜찮았다. 물론 당면 순대의 쌈마이함을 결코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좀 더 '공을 들인' 순대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순대를 두 점 째 먹고 있을 때 나온 순대국밥. 따로국밥 스타일이었고, 김이 무럭무럭 날 정도로 펄펄 끓여서 내왔다.
김 좀 나가라고 몇 번 저어준 뒤. 순대국밥 치고는 모양새가 꽤 깔끔해 보였는데, 순대와 돼지 부속을 포함한 고깃점 외에 특이하게 당면이 같이 들어 있었다.
늘 그러듯이 먼저 고깃점과 순대부터 건져먹지 않고 곧바로 새우젓으로 간을 본 뒤 밥을 때려넣고 먹기 시작했다. 맛도 모양새처럼 깔끔했는데, 어떻게 보면 설렁탕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돼지국밥이나 순대국밥이나 좀 더 기름지고 진한 맛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가끔 이런 깔끔함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다만 뜨거워서 빨리 먹을 수는 없었고, 몇 점 집어먹은 풋고추로 얼얼해진 입을 다스려가며 다소 천천히 한 그릇을 비웠다. 물론 순대도. 일단 순대 자체를 원한다면 1인분이 아닌 2인분을 시키던가 모듬순대를 시키던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옆자리에서 먹고 있던 감자탕도 좀 궁금했는데, 뼈를 꽤 수북하게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뼈뜯는 데에 나름대로 '장잉정신' 이 있는 나로서는 이것도 흥미로운 메뉴였다.
이제 다음에는 드디어 울산과 부산의 처묵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당일치기로 갔다온 울산에서 먹은 것은 한 번 뿐이었고, 처묵 만으로는 부산에서 훨씬 다채롭고 리드미컬하며(??) 드라마틱하게(???) 즐겼기 때문에 부산만 갖고도 며칠은 울궈먹을 수 있을 듯 하다. 차례로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