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까지는 밖에서 돈이 궁하다 하면 낙원상가 쪽으로 자주 가곤 했는데, 이제는 노량진 쪽이 빈도수가 더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얖게 튀겨 소스를 듬뿍 쳐서 주는 한국식이 아니라 나름대로 두꺼운 고기에 소스를 찍어먹는 일식 돈까스를 저렴하게 판다는 것도 그 빈도수 상승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노량진 일대에서 이런 돈까스를 파는 곳 중 가게가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던가 맛이라던가 하는 요소를 오로지 개인적 취향으로 취합해서 꼽자면, 허수아비라는 곳이 가장 괜찮았다.
지난 번 병천아우내장터순대에 갔을 때 거닐었던 만양로14길에 있는데, 좁은 골목으로 꺾어들어가지 않고 몇 발짝 더 걷다 보면 왼편에 보이는 집이었다. 가게 내부에 있는 홍보 전단지를 보니 근처의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포보', 국밥 전문점 '국밥현' 과 함께 일종의 체인점 식으로 연합해 운영되는 곳으로 여겨졌다.
사실 이 가게의 존재는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게 '허수아비' 라는 돈까스집은 예전에 작년 쳐묵짤 결산하면서 잠깐 언급했던 예술의 전당 근처의 꽤 비싼 곳이 자동적으로 연상됐기 때문에 좀처럼 발을 들이지 못했다. 물론 메뉴 가격은 바깥에 붙어 있었고 분명히 거기 보다는 쌌지만, 거기랑 여기랑 무슨 관계인지 괜히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는 꺼림직함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걸 훌훌 털어버리고 들어가본 게 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식사 시간 때면 사람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 시간대를 피해 오후 다섯 시 가까이 됐을 때 찾아갔다.
많은 노량진 일대의 식당들 처럼 여기도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 또 바쁜 시간대에 계산 착오를 막기 위해 선불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주문하면 이렇게 번호표와 영수증을 겸한 종이를 뽑아주는데, 번호를 부르면 주방 쪽으로 가서 음식을 받아오는 식이다. 주문한 시점이 연월일시분초 단위로 정확하게 찍히기 때문에 재탕이 불가능하므로, 영수증을 모아야 한다면 번호만 보여주고 계속 갖고 있어도 무방하다.
메뉴는 로스까스와 치킨까스 두 가지인데, 번호표에 찍혀있는 대로 내가 처음 고른 것은 로스까스(4500\)였다. 국산 돼지고기를 쓴다고 자신있게 인증서까지 붙여놓고 있었는데, 쇠고기가 아닌 이상 원산지를 그리 까다롭게 따지는 편은 아니지만 뭔가 믿어도 될 만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맛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티슈통과 젓가락통, 소스병. 로스까스나 치킨까스 모두 한입 크기로 미리 썰려져 나오므로 다른 식기는 필요가 없다. 물도 물론 셀프. 그리고 무엇보다 소스병이 비치된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다른 곳도 소스를 더 달라면 주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내키는 대로 즉석에서 집어서 이용할 수 있으니, 주방의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게 할 필요가 없어서 더 효율적이다.
가게 내부의 모든 자리는 벽 혹은 칸막이를 마주한 독대형으로 짜여져 있다. 내부가 그리 넓지 않고, 또 손님 대부분이 고시생 혹은 학원생이라 식사 그 자체에만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성이 아닐까 싶은데, 외식도 혼자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 내게 있어서는 이런 방식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혼자 가서 괜히 2인 혹은 4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을 때의 '죄책감' 을 면할 수 있으니까.
주문한 로스까스. 밥과 된장국, 양배추 샐러드, 깍두기는 모자라면 더 요청할 수 있지만, 이 정도만 깨끗이 먹어치워도 꽤 배부르기 때문에 딱히 이용한 적은 없었다.
치킨까스도 마찬가지지만,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주문받는 즉시 튀겨주기 때문에 고기는 따끈따끈했다.
소스병을 집어 소스를 깨 간 것이 든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넣고 겨자도 살짝 넣은 뒤 먹을 찰나. 고기 두께도 생각보다 꽤 두꺼운 편이었고, 씹는 맛도 매우 좋았다. 이런 돈까스를 4500원에 먹을 수 있다니. 덕분에 다음에는 치킨까스를 먹겠다는 '의지' 를 다지며 싹싹 비워낸 뒤 식판을 반납하고 나왔다.
그리고 2월 초에 다시 찾았을 때 그 의지대로 치킨까스를 주문했다. 가격은 찍혀있는 대로 4000원. 로스까스보다 500원 저렴한데, 다만 닭고기의 경우 단가 때문인지 국산이 아니라 브라질산을 쓴다고 나와 있었다.
주방에서 받아온 치킨까스 식판. 크기가 좀 작아 보이지만, 대신 두 줄로 되어 있어서 양 자체는 엇비슷했다. 다만 소스의 경우 받을 때부터 머스터드 소스가 담긴 소스통이 따라나왔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까스 접시만 찍어보면 이렇고,
고기를 뒤집어 보면 이렇다. 이것도 보듯이 속에 닭고기가 꽤 두툼하게 들어 있었고, 덕분에 닭고기 많이 먹지 말라는 한의사의 충고도 아오안으로 만들면서 깨끗하게 위장으로 쓸어넣었다. 개인적으로는 돼지고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로스까스가 더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돈이 살짝 모자라거나 가끔은 좀 더 담백하게 먹고 싶다고 하면 치킨까스를 택해도 무관할 것 같다.
이렇게 여기서 새삼스레 일식 돈까스에 다시금 맛을 들였는데, 근처에 있는 포보나 국밥현 같은 경우는 또 어떨 지 궁금하다. 특히 베트남 쌀국수의 경우 지금까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고, 그 때문에 생판 처음 접하는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나 의구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훌훌 털고 가봤으면 한다. 그래야 식충잡설 포스팅 거리가 생기니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