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 게오르크 틴트너는 내게 꽤 각별한 인물인데, 독일에 체류하던 시절에도 독일 아마존을 통해 오이로디스크에 취입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 CD를 구입했고 귀국 후 미국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품목 중에도 캐나디언 브라스 앨범 중 한 종류가 포함되어 있었다.
틴트너가 생애 후반기에 집중 육성한 관현악단인 심포니 노바 스코샤는 캐나다 방송 협회(약칭 CBC)를 통해 적어도 다섯 장의 음반을 내놓았는데, 이들 중 세 종류는 이미 틴트너 사후 낙소스에서 발매한 추모 선집에도 포함되어 재발매된 바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장의 경우 그렇지 못했는데, 한 장은 중고 시장에서도 매물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귀해진 반면 나머지 한 장은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그게 저 음반인데, Late Romantics라는 제목 그대로 후기 낭만 시대의 관현악 작품들을 모은 음반이다. 하지만 선곡은 그냥 안이하게 꾸민 명곡집이라는 편견을 깰 정도로 대담한데, 물론 에밀 니콜라우스 폰 레즈니체크(Emil Nikolaus von Reznicek, 1860-1945)의 오페라 '돈나 디아나' 서곡이나 엥겔베르트 훔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 1854-1921)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3막 전주곡+2막 꿈의 무언극 같이 소위 '관현악 명곡집' 에 들어갈 만한 유명한 곡들도 있다.
하지만 프란츠 슈레커(Franz Schreker, 1878-1934)의 느린 왈츠(Valse lente)나 한스 갈(Hans Gál, 1890-1987)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오스카 모라베츠(Oskar Morawetz, 1917-2007)의 현을 위한 디베르티멘토 같이, 틴트너 자신처럼 나치에 의해 핍박당한 작곡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도 선곡했고, 또 이와 반대로 독일에 계속 남아 나치 정권에 협력했다가 전후에 신나게 까이며 별로 영예롭지는 않은 후반생을 살았던 한스 피츠너(Hans Pfitzner, 1869-1949)의 교향곡 C장조까지 들어 있다.
당연히 잘 알려진 곡들 보다는 듣기 힘든 곡들 때문에 구입했는데, 모두 이 음반으로 처음 들어본 슈레커와 갈, 모라베츠의 작품들은 낭만주의라는 틀 속에 있기는 해도 20세기로 넘어온 시점에 주로 활동한 인물들인 만큼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슈레커의 짧은 왈츠는 이전 시대의 산물인 빈 왈츠를 아주 섬세한 음향 속으로 희석시킨 듯한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고, 갈의 세레나데는 소박한 신고전주의 성향을 더 많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슈레커나 갈은 그나마 직간접적으로 존재를 알 수 있던 작곡가들이었지만, 나치의 탄압을 피해 캐나다로 이주해 거기서 여생을 보낸 모라베츠의 경우 아예 이 음반으로 처음 이름을 접한 인물이었다. 수록곡 중 시기상으로 가장 늦은 1948년에 작곡되어 1954년에 최종 개정된 디베르티멘토는 신고전주의 성향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가장 '모던한' 느낌의 곡인데, 불과 11분 가량의 작품이지만 독특한 화성 진행이나 조바꿈을 통해 마치 미요나 루셀 등의 작품을 듣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물론 레즈니체크나 훔퍼딩크, 피츠너의 작품도 좀 템포가 느린 감은 있지만 틴트너 특유의 악보의 지시를 중시하는 자세나 따뜻한 음향이 공통적으로 느껴지고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피츠너의 경우 소편성 관현악단의 연주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웅장한 느낌은 별로 찾아볼 수 없어서 좀 이질적이었고. 바이올린은 여느 틴트너의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제1바이올린이 지휘자 왼쪽에, 제2바이올린이 오른쪽에 오는 양익 배치를 취하고 있다.
사실 이 앨범은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서도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어볼 수 있지만, 피츠너 곡의 경우 전곡이 계속 이어지는 데도 트랙별로 계속 끊겨 재생되는 낙뮤라 특유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결국 이 CD를 사고 나서야 직성이 풀릴 수 있었다.
두 번째 음반은 KBS 교향악단이 박탕 조르다니아의 지휘로 1994년 1월에 KBS홀에서 녹음한 것인데, 러시아의 유대인 작곡가 이사크 슈바르츠(Isaac Schwartz, 1923-2009)가 작곡한 두 곡을 담고 있다. 다만 음반 발매는 위에 나와있는 대로 상당히 늦은 2000년에나 성사되었는데, 이 음반 이전에 발매된 호바네스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집과 달리 왜 이리 늦게 발매되었는 지는 모르겠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 음악에 대해 유달리 국수적인 기사를 쏟아내기로 유명한 예술계 언론에서도 이 음반에 대한 기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작곡가가 듣보잡이라서 그랬는지, 2000년이라면 이미 한참 지나서 관심이 식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런 레어템을 오히려 찾아다니는 내게는 별 거릴 것이 없었다.
첫 곡인 노란 별들(Yellow Stars)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라고 주기되어 있는데, 1993년에 작곡되었고 '부림절-게토의 휴일(Purim Spiel-Holidays in the Ghetto)' 이라는 의미심장한 부제가 붙어 있다. 초연의 지휘도 조르다니아가 작곡자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맡았고, 이 녹음이 세계 최초 녹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헌정은 2차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맞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자신의 고국이었던 중립국 스웨덴으로 이주시켜 구출해냈지만, 소련 당국에 의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뒤 실종-이라고 쓰고 NKVD에 살해되었다고 읽는다-된 스웨덴 외교관인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에게 행해졌는데, 그 외에도 슈바르츠 자신이 대숙청 기간 동안 아버지가 체포/처형되고 가족들과 함께 키르기스스탄의 오지로 추방되어 험난한 유년기를 보낸 시절의 경험도 반영되었다고 보인다.
음악 자체도 느리고 우울한 대목과, 흥겨운 장단 위에서 쾌활함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독특한 클레츠머(Kletzmer) 풍 음악이 돌아가며 등장해 진한 유대 음악의 맛을 내고 있다. 현대음악이라고는 해도 상당히 통속적인 맛이 강해 마치 영화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같이 커플링된 곡은 아예 영화음악이었다.
사실 슈바르츠는 소련에서 주로 영화음악 작곡가로 명성이 있던 인물이라고 하는데, 이 앨범에서는 일본의 거장 감독으로 평가받는 쿠로사와 아키라가 작품 활동 침체기였던 1975년에 소련과 합작해 만든 영화 '데르수 우잘라(Dersu Uzala)' 의 음악을 앨범 후반에 싣고 있다. 재생 시간이 거의 46분에 달하는데, 영화 OST 자체인지 아니면 간추려낸 것인 지는 불명확하다.
유대 음악을 상당히 돌출되게 사용한 노란 별들과 달리 이 곡은 슈바르츠가 유배 생활을 했던 중앙아시아 지방의 민속 음악 어법을 양념처럼 곁들인 보수적인 어법으로 쓰여졌는데, 저 영화 자체가 시베리아의 대자연을 무대로 한 만큼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이 이런 것이라는 감각으로 작곡에 임한 것으로 보인다. 쿠로사와의 재기작이라고 불릴 만한 명작이라고 하지만,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해서 자세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녹음은 여느 KBS향의 코흐 음반과 마찬가지로 현재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 DG 음반을 제작하고 있는 마이클 파인이 맡았는데, 수록 시간이 79분이라 그런지 트랙 사이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다는 느낌이 강하다. 특히 노란 별들의 경우 악장 사이가 너무 다급하게 지나간다는 느낌이 강한데, 그래도 그 당시라면 CD 한 장에 80분 좀 넘게도 담아낼 수 있었던 만큼 좀 더 여유롭게 편집해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남은 음반들은 일본 HMV를 통해 주문한 세트 두 종류인데, 그것 보다는 훨씬 전에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두 종류의 '음원' 에 대한 썰을 먼저 풀어보고 싶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