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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레코드에서는 지난 번 썼던 라트하우스 교향곡 전집을 구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현재는 사라진 음반사인 코흐에서 발매된 한 장이 더 눈에 띄어서 구입했다. 피아노 협주곡과 모음곡 '우리엘 아코스타', 교향 폴로네즈와 극적인 환상 네 곡을 커플링한 음반인데, 협주곡의 독주는 도널드 파이론(Donald Pirone)이 맡았고 관현악 연주는 조앤 팔레타 지휘의 런던 교향악단이 담당했다.
수록곡 중 아직 유럽에 있을 때 작곡된 유일한 곡인 모음곡 '우리엘 아코스타' 는 지난 번 조셉 로젠스톡 포스팅을 했을 때 로젠스톡이 베를린 유대인 문화연맹 관현악단을 지휘해 마지막 곡을 녹음했다고 지나가듯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저 녹음은 아직 들어보지도 못하고 있고, 결국 이 CD로 모음곡 전곡을 접하게 되었다.
해설지를 보니, 1930년에 극작가 페르디난트 구초 원작의 동명 연극이 베를린의 유대인 극장인 하비마 극장에서 상연되었을 때 부수음악으로 작곡된 것을 이후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개작한 곡이라고 한다. 다만 이 CD에 수록된 버전은 라트하우스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인 1947년에 정규 편성의 관현악단용으로 다시 다듬은 개정판이라고 되어 있다.
들어 보니 그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당돌한 어법을 취해 청중들에게 충공깽을 안겨준 교향곡들과는 달리 유대 민속 음악의 가락이나 장단에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섞어 일반 대중들도 이해하기 쉬운 곡이었다. 라트하우스 자신도 이 곡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는 것에 상당히 만족한 모양인데, 불행히도 그 인기는 몇 년 뒤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급짜식하고 말았다.
나치 집권 직전이었던 1932년에 가족들과 독일을 떠난 라트하우스는 프랑스와 영국을 거쳐 1938년에 미국에 정착했는데, 미국에 도착한 직후 완성한 곡 중에는 이 음반에 수록된 피아노 협주곡도 있었다. 다소 통속성을 강하게 띄는 우리엘 아코스타에 비하면, 이 협주곡은 유럽 활동 시절 앙팡 테리블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을 적의 기질을 다시 부활시킨 듯한 모양새다. 다만 전체적인 곡의 느낌은 상당히 어둡게 채색되어 있는데, 망명 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난 건지 아니면 몇 개월 후 유럽에서 터진 전쟁을 예견한 건지는 청취자의 상상에 맡겨야 할 것 같다.
라트하우스는 유럽 시절 손댄 영화음악 작업으로 미국 활동의 기반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작업 환경이나 요구하는 음악의 취향이 꽤 달랐기 때문인지 쉽게 일을 따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1940년에 뉴욕의 퀸스 음악원에서 작곡 교수직을 얻어 연명할 수 있었는데, 음반에 수록된 나머지 두 관현악 작품들도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1943년에 뉴욕 필하모닉의 의뢰로 급하게 작곡된 교향 폴로네즈 같은 경우에는 아마 라트하우스의 고향인 타르노폴-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지만, 사실 폴란드/우크라이나 지역이었고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다-에 대한 추억이 일정 부분 담긴 것 같다. 2차대전 말기였던 1945년에 작곡되어 야샤 호렌슈타인이 지휘한 텔아비브 교향악단이 초연했다는 극적인 환상도 제목 그대로 기복이 심한 환상곡 풍의 작품인데, 교향곡 3번을 작곡하던 시기 혹은 그 이후의 작품이라 그런지 초기보다는 좀 특유의 전위적인 맛이 많이 죽은 느낌이다.
해설지는 영어로만 작성되어 있는데, 녹음 제작을 후원한 개인/단체와 런던 교향악단 단원 명부까지 자세해 적어놓고 있다. 다만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 1954년에 사망한 라트하우스가 1967년에 쓴 곡이라고 표기하는 실수를 범했는데, 물론 해설지에는 제대로 표기되어 있다.
그나마 라트하우스 같이 미국 혹은 유럽 내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이나 스위스, 스페인 등지로 망명한 이들은 어떻게든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나치가 정권을 잡은 뒤, 또 2차대전이 벌어진 뒤에도 계속 유럽에 남아 있던 유대인 음악인들의 운명은 대체로 비참했다.
이들의 음악에 대한 재조명은 대략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다만 그 작업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 등 소위 중부 유럽 출신 작곡가들의 작품 위주로 진행되고 있어서 다른 작곡가들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와 재발견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이 CD에 수록된 네덜란드 작곡가 레오 슈미트(Leo Smit, 1900-1943)의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이 작곡가의 작품을 담은 음원으로는 처음 접한 물건이었다.
암스테르담의 포르투갈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슈미트는 고향 음악원에서 베르나르 즈베어스와 삼 드레스덴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고, 졸업 직후에는 동교에서 강사로 화성학과 작품 분석을 가르치면서 작곡 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재즈의 영향을 작품에 반영해 화제가 되었고, 이후에는 라벨과 프랑스 6인조를 비롯한 프랑스 근대 음악에 흥미를 갖고 파리에 가서 그들과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CD에 수록된 곡들 중 6중주(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호른-바순-피아노)와 5중주(플루트-바이올린-비올라-첼로-하프)도 슈미트가 파리에 정주하고 있던 1928년에 작곡되었는데, 두 곡에서 모두 프랑스 근대 음악과 신고전주의로부터 받은 '세례' 의 흔적이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들으면서 '즐거움' 을 느낄 수 있다고 간단히 생각해도 될 정도다.
나머지 수록곡들인 2중주(오보에-첼로)와 3중주(클라리넷-비올라-피아노)는 유럽에 전쟁의 기미가 짙게 감돌고 있던 1938년에 나온 곡들인데, 프랑스 체류 시절보다는 작품에 진지함이라던가 현대성이 더해진 느낌이다. 특이하게 바로크 모음곡 양식으로 쓰여진 2중주에서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회귀하기 보다는 각 춤곡 별로 대비되는 악상을 병치시키며 좀 더 짜임새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 흔적이 엿보이고, 좀 더 전통적인 양식의 3중주에서도 상당히 대조적인 악상들을 대비시키면서도 뭔가 체계적인 것을 만들어 낼 궁리를 한 기색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슈미트의 창작 활동은 불과 2년 뒤에 독일군이 프랑스 침공을 위해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점령하면서 갑작스럽게 정체되고 말았다. 나치가 보낸 총독은 본국의 반유대주의 이념에 따라 약 16만 명에 달하는 네덜란드의 유대인들을 게토에 억류했고, 전쟁 중이던 1942년 여름 부터는 이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강제수용소로 보내기 시작했다.
슈미트도 그 대열에 끼어 있었는데, 중간 억류지였던 베스터보르크 수용소에서 플루트 소나타의 작곡을 마치고 악보를 친족들에게 편지와 함께 보냈다. 언젠가 그 곡이 연주될 것으로 생각한 것 같은데, 그 이후 슈미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슈미트는 여타 네덜란드 유대인들과 함께 소비부르 강제수용소에 도착한 뒤 노동 부적격자로 분류되었고, 가스실에서 최후를 맞았다.
슈미트의 작품은 이외에도 교향곡, 협주곡, 가곡, 발레 등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이 음반 외에 다른 건 찾아보지 못해서 들어본 곡은 이게 전부다. 사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작곡가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네덜란드나 벨기에 작곡가의 작품은 아직 미지의 세계라서, 음반이 얼마나 더 있고 또 구할 수 있는 지의 여부가 확실히 파악되지 않으면 여전히 생경한 영역이 될 것 같다.
연주는 지난 번 미요의 실내교향곡 전집과 마찬가지로 앙상블 빌라 무지카가 맡았는데, 다소 멤버 변동은 있지만 마찬가지로 유럽 유수의 악단에서 수석/부수석을 맡거나 솔로 활동을 벌이는 이들이 모인 올스타 그룹이라 믿을 만한 연주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앙상블은 이외에도 기데온 클라인과 에르빈 슐호프 같이, 마찬가지로 나치 정권 하에서 '퇴폐음악' 으로 단죄된 작곡가들의 실내악 작품 리바이벌에 꽤 적극적인 것 같아서, 이 음반들도 차례로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헝가리 작곡가의 교향곡 한 곡씩을 담은 음반 차례인데, 한 곡의 경우 이미 예전에 거의 까듯이 소개했기 때문에 이 새 음반의 발견이 개인적으로는 다소 당혹스러웠다. 자세한 건 역시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