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략 11년 동안 이 행사를 방문하면서 느낀 건, 겨울에 열리는 행사에서 뭔가 건질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여름방학에 돌입하는 시기에도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가장 많은 돈을 '뿌리는' 것도 거의 겨울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1월 한 달을 건너뛰고 열리는 행사이자, 봄방학(초등~고등)과 겨울방학(대학)의 막바지에 열리는 행사라 그런지 이상하게 주목할 만한 신간이 많이 나왔다. 미리 봐둔 정보만으로 선입금 예약한 일러스트북만 세 권, 그냥 예약한 앤솔로지 한 권, 그리고 '이거 못사면 양재천에 몸을 던지겠다(???)' 는 심정으로 가장 먼저 들어가자마자 사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세 종류가 확보되었다.
일단 쓸 돈은 바로 전날까지 계속 일을 해 넉넉히 모아뒀으니 걱정은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일찍 가겠다는 다짐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한두 종류는 매진되겠지 하면서 약간 체념하는 기분으로 갔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지만.
이제 존잘의 최고봉에 속하는 나르닥 화백의 동인 행사 참가는 1년에 1~2회 정도로 확정되는 것 같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개인 일러스트북 세트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다른 일러북과 마찬가지로 이 행사 아니면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앞으로 구할 수 없다고 못박아둔 것이라 가장 먼저 이것부터 사러 1관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늘어선 사람들의 줄부터 상당히 비범했는데, 물론 작년에도 구입하는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이거 다음 지르러 간 개인지의 작가가 참가했을 때 이래로 두 번째로 줄을 서야 했는데, 내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20분 가량을 기다렸다. 그나마 이것도 그냥 부스열에 있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독립 부스로 옮기면서 많이 줄어든 거라고 했으니, 더 일찍 갔다면 어땠으려나.
다행히 구입에 성공했지만, 포스터의 경우 그냥 펴져있는 채로 준 탓에 '어떻게 해야 구김 없이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람막이 주머니를 뒤지다가 뭔가를 발견했는데, 일할 때 쓰다가 남은 고무줄이었다. 덕분에 포스터도 깔끔하게 둘둘 말아서 쇼핑백에 넣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후기는 안썼지만, 여동생편과 누나편 두 신간을 낸 작년 12월 행사 때도 이미 엄청난 인파를 목격했기 때문에 애초에 독립부스로 등록한 여기서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길게 늘어선 대기줄을 생각했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고, 한 8분 정도 기다리다가 구입할 수 있었다.
동네 페스타에서 이미 구입한 구간의 판형을 여동생편/누나편 수준으로 줄인 재록본이라 엄밀히 따지면 다시 구입하지 않아도 될 책이었지만, 그 당시 한정판으로만 주어진 여러 특전 그림이 포함되고 몇몇 축전 그림이 컬러로 바뀌어 실렸기 때문에 이것도 충분히 살 만한 별도의 가치가 있었다.
부스 자체는 Mca 화백의 단독 부스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트윈 부스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갑자기 판매 물품이 늘어난 건지, 아니면 다른 작가와 공동 참가하는 지 궁금했다. 그리고 개최 며칠 전 트위터를 통해 꽤 오랜만에 cocoon 화백이 자신이 원화를 맡은 소드걸스 캐릭터 일러스트북으로 같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곧바로 세 번째로 닥돌해 구입할 물건이 되었다.
사실 이 일러북의 프로토타입은 일본 코믹마켓에 출품된 적이 있다는데, 서코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참가가 미뤄졌다가 일종의 개정판 형태로 처음 한국 행사에서 선보인 것이 이 책이었다. 일본에서 출품된 것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이건 개정판이라는 이유로 문자남매 구간 합본편과 마찬가지로 바로 구입 예정 목록에 올려버렸다.
이렇게 가장 먼저 사야 할 것들을 모두 확보한 뒤에야 좀 홀가분하게 행사장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제 예약 품목만 바로바로 구입하거나 이름 대고 가져오면 됐으니까.
커뮤니티 자체에 각별한 관심은 없었지만, 참가 작가 중 계절 시리즈 창작 동인지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리리 화백이 참가한다고 해서 예약한 합동 앤솔로지. 커뮤니티의 구조와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지식은 물론 없었지만, 딱히 그게 없더라도 충분히 즐길 만한 책이었다. 다만 정작 해당 작가가 낼 예정이었던 계절 시리즈 마지막 권인 겨울편은 다음 달 케이크 스퀘어로 밀렸다는 게 함정.
선입금 예약 품목 1. 참가 작가 중 아는 사람은 노멀커플 온리전 '설레임'에서 처음 대면한 소고 화백 뿐이었지만, 표지 그림에서 느껴지는 뭔가 요염한 분위기도 있고 해서 동아리 인포에서 체크하고 예약했다. 1호라고 나온 데서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앤솔로지는 앞으로도 프로젝트 형식으로 1년에 최소 2회 가량 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선입금 예약 품목 2. "슈에무라? 그거 먹는 건가요?" 이게 동아리 홍보에서 처음 본 내 반응이었다. 뭔가 헐벗은(?) 여캐 두 명이 나오길래 프리큐어 류의 미소녀 변신물인지 게임인지 그렇게 보였지만, 구글링을 해보니 일본 화장품 브랜드라고 한다.
화장품 브랜드 관련 일러북이라는 굉장히 특이한 컨셉이었는데, 정확한 건 나도 모르지만 아마 저 브랜드의 어떤 광고에서 등장한 두 캐릭터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 나온 책이라고 한다. 값이 좀 비싼 축에 속하기는 했지만, 참가 작가가 30명이나 되고 그 중에도 소위 존잘러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고민 끝에 예약했다.
선입금 예약 품목 3. 이것도 이상소녀와 마찬가지로 참가 작가들이 다소 생소하기는 했지만, 일단 미쿠 앤솔이고 마찬가지로 섬네일만 보고 잠깐 고민하다가 예약했다. 물론 여타 앤솔들과 마찬가지로 내 취향에 맞는 그림도 있고 아닌 그림도 있고 미묘한 그림도 있었지만, 일단 취향에 맞는 그림을 노린 것이니 구입 후 후회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예정에 있던 모든 품목을 구입했는데, 다만 아직 자금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예비 후보' 들 중에서도 몇 가지 품목을 골라 구입했다.
이미 12월 서코에서 본 책이었지만, 그 때 구입을 망설였다가 이번에 와서 샀다. 사실 저 작가도 내가 독일에 체류할 때 냈던 에어 동인지 정보를 보고 직접 통판 요청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후 이런저런 국내 라이트노벨이나 게임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만화 형태의 동인지와 달리 이건 그림만을 그린 것이고, 그림체가 다소 단순해 보인다는 점이 갈등(?)의 원인이었지만 그게 딱히 결격 사유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결국 구입했다. 나중에 해당 작가가 자기 발전을 거듭해 존잘 대열에 들어갈 지도 모르니까. (여담으로, 나르닥 화백의 첫 일러스트북도 이렇게 우유부단하게 고민하다가 살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지금은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연리는 2007년에 발족한 아마추어 창작 모임인데, 지금까지 열두 종류의 일러앤솔과 한 종류의 한복 일러앤솔을 발간했다. 하지만 거의 매번 서코에 가면서도 여기서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낸 책의 권수가 많은 탓에 시리즈의 연속성을 무척 따지는 내게는 뭔가 '등골 브레이커' 가 될 것 같다는 속좁은 노파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5000원 이상의 것들을 마구 구입해대고 나니 가격 면에서 확실한 장점이 있었고, 또 주제가 어쨌든 '글로벌한' 것이다 보니 결국 호기심에 구입했다. 꽤 오래 활동하는 모임이다 보니, 참가 작가들의 실력이나 지명도가 동인계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포풍지름을 완료하나 싶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는데, 부스 참가 목록에도 없었던 곳 하나가 우연히 눈에 띄었다. 상당히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로리꾼 화백이 1관 E03 자리를 위탁구매해 부스를 차린 것이었는데, 바로 난입해 안부를 물었다. 블로그도 2012년 1월 이래 장기 휴면 상태고 다른 활동도 없었기 때문에 '이 양반 죽었나 살았나' 싶기도 했는데, 상당히 의외의 갑툭튀여서 꽤 놀랐다.
일단 새롭게 내놓은 물품들이 여럿 있었는데, 리그 오브 레전드 쿠션은 제값(5500\)을 주고 구입했다. 물론 나머지 물품은 음료수와 여타 주전부리를 공물로 바치고 대체(??)했는데, 그 동안 별다른 동인 활동 없이 지내다가 취직하라는 집안의 압력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한 1주일 정도 서울에 머물며 구직 활동을 하다가 부코 참가하러 다시 내려간다고 하는데, 3월에도 참가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에는 내가 3월 행사를 방문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꽤 오랜만에 상당한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할 수 있었다. 다만 나르닥 화백 부스에서 받은 쇼핑백 자체가 상당한 '덕스러움' 을 지니고 있던 탓에 일코를 위해서는 은엄폐가 필수였다. 다행히 가방이 등산용으로 써도 될 만큼 많이 들어가는 탓에 꾸역꾸역 밀어넣어 가져올 수 있었다. 다만 무게가 꽤 나가는 탓에 어깨가 좀 아프기는 했지만. 오마이숄더
이번 달 동인 행사는 아마 이걸로 끝날 것 같은데, 이제 남은 과제는 두 번째로 행한 독일 아마존 물품 구입과 배송대행 등으로 쌓인 카드 사용료 청산 등이다. 요즘에는 그래도 정기적으로 일이 들어오고 있고, 나름대로 자제력(???)을 발휘해 어떻게든 액수를 맞춰놓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미리 결제해 한시름 덜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동인행사 덕질과는 별도로 음반 덕질을 해야 할 물품들이 몇 개 더 생긴 게 문제다(...). 이것들도 어쨌든 사정이 되는 대로 구입할 생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