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홀의 기획 공연인 '필윤의 재즈스토리' 세 번째 공연이 있던 날에는 좀 일찍 집에서 나왔는데, 오랜만에 영풍문고에 갈 일이 있어서였다. 어떤 책을 사오려고 했던 거였는데, 막상 호기심이 동해서 읽어 봤지만 살 만큼의 구매욕을 땡겨주지는 못해서 그냥 포기하고 나왔다.
다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왔는 데도 좀 애매했다. 공연까지는 약 두 시간 반 좀 넘게 남아 있었고, 일단 좀 일찍 점저를 때워 공연 중에 졸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처에서 종각역 근처에 콩비지찌개를 전문으로 하는 밥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마침 핸드폰에도 약도 짤방을 저장해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찾아가기도 수월했다.
종각역 2번 출구로 나와 우정국로를 따라 걷다가 사거리가 나오면 왼쪽으로 틀어서 계속 걷다 보면 그 왼편에 좁은 골목길이 대각선으로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쪽에 있었다.
누런 바탕의 간판이 제대로 찾아왔음을 말해주는 짤방.
콩비지 외에도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 제육백반 등 여타 식사 메뉴를 같이 파는 식당이었는데, 일단 간판에도 적혀 있는 콩비지를 먹어 보기로 했다. 집에서도 잘 익은 배추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어 끓이는 콩비지찌개는 매우 좋아하는 음식인데, 다만 밖에서 먹은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도착한 시간이 확실하게 애매한 오후 4시 45분 쯤이라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가게 안에는 주인 내외로 보이는 두 분만 보였고, 그 중 한 분은 손님이 없는 시간을 활용해 낮잠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 밥을 안먹으면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생각한 대로 콩비지를 주문했다.
상차림 준비를 하고 있는 주방의 모습과 그 위에 걸린 메뉴판. 모든 메뉴 가격은 6000원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쇠고기(호주산)와 김치(중국산)을 제외하면 모두 국산을 쓴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게 비지 끓는 냄새를 맡으며 기다리다가 한 상을 받았다. 비지도 비지지만 밑반찬에도 눈길이 갔는데,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도토리묵과 계란말이를 비롯해 내가 다 먹어치울 수 있는 것으로 꾸며져 있어서 먹기 전부터 기분이 꽤 좋았다.
비지는 뚝배기 안에서도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뜨거워 보였는데, 양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찌개류보다 콩을 갈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밀도가 높고, 여기에 밥까지 비비면 그 만큼 더 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밥을 몽땅 뚝배기에 덜어넣고 섞으면서 김과 열기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처묵하기 시작했다. 꽤 뜨거웠지만 잘게 썬 배추김치와 돼지고기의 식감도 괜찮았고, 약간 싱겁다 싶으면 밑반찬들을 적절히 곁들여 먹으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완전히 비워냈다. 보통 밑반찬은 좀 남기고 오지만, 여기서는 예상 대로 김치국물이나 도토리묵의 간장 정도를 빼면 몽땅 먹어치울 수 있었다. 밑반찬이 매일매일 바뀌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날은 내게 있어서 완식의 날이었다.
뜨끈한 콩비지가 뱃속에 들어간 덕에 집에 가서도 야식 걱정을 안해도 되었는데, 이래서 지역을 불문하고 콩음식이 서민의 음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콩 자체가 칼로리가 높은데 그걸 되직하게 끓여서 내오는 찌개나 스튜라면 다른 음식보다 적은 양으로 더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닷새 뒤에는 한 달 넘게 못가본 노량진의 허수아비, 포보와 체인 관계에 있는 나머지 한 군데 음식점인 국밥집을 찾아가볼 수 있었다. 이건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