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포스팅의 말미에서 언급한 대로, 이 시리즈에는 전후 제작된 녹음이 상당 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주의깊게 들은 것은 별로 없는데, 전후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비약적인 기술 향상을 느낄 수 있는 음반이 없다는 문제 때문이었다.
일본 음반 업계는 전후에도 심각한 물자 부족 때문에 여전히 전시 통제 시기와 마찬가지로 조악한 재질의 원자재로 음반을 만들어야 했고, 독일과 달리 테이프 녹음 기술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병맛스러운 똥반이 계속 양산되었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나마 한국전쟁 특수로 일본 경제가 회생하기 시작한 뒤로는 음반 업계가 본격적인 회생기에 들어섰다지만, 적어도 1950년대 초반까지는 그렇게 안습 상황을 유지해야 했다.
*롬 뮤직 파운데이션의 4집 소개 페이지: 클릭
-CD 1- (일본인 음악가 국내 녹음 1)
루트비히 판 베토벤: 교향곡 제9번 4악장
카야마 요시코(소프라노)/요츠야 후미코(알토)/키노시타 타모츠(테너)/
후지이 노리아키(베이스)/타마가와 학원 합창단/도쿄 교향악단/하시모토 쿠니히코
(일본 빅터 JH232~4. 1943년 녹음)
일본에서 '제9' 라면 먼저 손꼽는 이 곡의 첫 상업용 스튜디오 녹음. 다만 전쟁 후반기의 물자 부족 때문인지 4악장만 녹음했다. 그리고 성악 파트의 가사는 예전에 소개한 이 녹음처럼 시인 오자키 키하치가 일본어로 개사한 것이다. 연주 자체는 딱히 빠지는 것 없이 괜찮은 편이고 녹음 상태도 그 당시 상황을 보면 기적적으로 우수한 편이지만, 일본어로 개사된 가사의 어색함이나 독창자의 경박해 보이는 발성은 여전히 내게 극복하기 어려운 난점이다.
카뮤 생상: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쿠사마 카즈코/도쿄 교향악단/오타카 히사타다
(일본 빅터 VH4080~3. 1943년 녹음)
그 당시 음반으로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생상의 피아노 협주곡을, 그것도 5번을 녹음한 이색 음반이다. 1943년 한 해 동안 도쿄 교향악단(현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은 꽤 빡빡한 녹음 스케줄을 소화했는데, 상술한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과 이 생상 협주곡의 매트릭스 번호가, 후술할 이후쿠베의 교향 담시와 3집에 수록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매트릭스 번호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봐서는 세션 당 지휘자 두 사람이 각기 한 곡 씩의 작품을 녹음한 것으로 보인다.
녹음 상태는 비슷한 시기의 베토벤 협주곡보다 좀 흐리멍텅한 소리인데, 곡이 가진 섬세한 표현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 연주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만한 문제다. 다만 이 녹음도 오타카가 지휘자로 남긴 녹음 중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음반 관련 정보에서는 1집 때와 마찬가지로 복각 엔지니어 아타라시 타다아츠가 '한 일본군 장교가 이 레코드를 구입한 뒤 사이공 방송국에서 아직 잔류하던 프랑스 기술진과 들으면서 감흥을 나눴다' 며 별 상관 없는 뻘소리를 또 늘어놓고 있는데, 그런 카더라 통신 수집할 시간에 마스터링이나 좀 빠릿빠릿하게 하지 그랬나?
요하네스 브람스: 헝가리 춤곡 제5번
칸사이 교향악단/아사히나 타카시
(이스터 C-1. 1953년 녹음)
아사히나는 생애 후반기에 베토벤과 브람스,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을 엄청나게 쏟아내며 일본 클래식 음반사들의 밥줄이 된 인물이었지만, 패전 후 음반 제작은 이런 '사소한' 소품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 녹음은 당시 미국에서 도입한 테이프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SP 컬렉션 복각 세트라는 점 때문인지 테이프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건지 열악한 상태의 SP로 복각했다고 되어 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쿠노 히사
(후지산 7263~4. 1922/23년경 녹음)
피아노 독주곡으로, 그것도 어쿠스틱 시대의 녹음으로는 드물게 관심을 가진 녹음. 시가 현 오츠 태생인 쿠노는 일본 초기 피아노 음악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록된다고 하는데, 190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한 첫 일본인 여성 피아니스트이자 처음으로 관현악을 대동한 '제대로 된' 협주곡 연주를 선보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한창 피아니스트와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1923년에 일본 문부성의 후원으로 빈에 유학하게 되었는데, 이 때 담당 교수인 에밀 자우어가 '일본인으로서는 가장 탁월한 베토벤 음악을 연주하고 있지만,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고 충고했다. 하지만 쿠노는 이것을 자신에게 내린 예술적 사망 선고라고 생각했는 지,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묵고 있던 빈 근교의 바덴 바이 빈 호텔에서 투신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물론 유서 조차 남기지 않은 것을 봐서는 상당히 돌발적인 죽음인 것이 확실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녀가 순두부 멘탈이었는지 자우어가 너무 가시돋힌 말로 일본인 학생을 비판한 것인 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아무튼 오스트리아로 가기 직전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 녹음이 쿠노가 남긴 유일한 녹음인데, 어쿠스틱 녹음의 한계 때문인지 1악장의 셋잇단음표 음형의 첫 음을 한 옥타브 올려서 연주하고 있다.
너무 흐릿하고 애매한 녹음 상태 때문에 쿠노가 그 당시 독보적인 피아니스트였는지 어쨌는지도 파악하기 힘든데, 일단 역사적인 가치 정도만을 인정해야 할 녹음 같다. 차라리 같은 곡을 사와다 류키치가 연주한 3집의 1931년 전기 녹음이 더 듣기 편하다. 물론 향상된 음질과 함께 잡음도 향상된 게 문제지만.
-CD 2- (일본인 음악가 국내 녹음 2)
로베르트 슈만: 시인의 사랑
키노시타 타모츠/레오니드 크로이체르
(일본 콜럼비아 W127~9. 1943년 녹음)
이 세트에서 유일한 서양 연가곡집 전곡 녹음. 일본인 성악가가 외국 연가곡 전곡을 원어로 녹음한 최초의 기록 중 하나라고도 한다. 녹음 시기도 일본이 막장 일보로 달려가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특이한데, 키노시타는 이 곡 외에도 같은 해 12월에 니치쿠(일본 콜럼비아의 전시 명칭)에서 노부토키 키요시의 성악 모음곡 '사라' 를 미즈타니 타츠오의 반주로 녹음했다(이 녹음 역시 이 세트의 다섯 번째 CD에 수록되어 있다).
물론 최초라는 기록에 전시 중 만들어진 보기 드문 연가곡 녹음이라는 점과, 음악적으로 얼마나 우수한가 하는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어눌한 독일어 딕션과 프레이징이 특히 이 녹음을 듣기 괴롭게 하는데, 더군다나 가사의 해석과 전달에 큰 비중이 주어지는 독일 가곡의 특성 상 이런 난점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녹음이 그 시기 기준으로는 괜찮다는 게 얼마 안되는 위안일 따름이다.
-CD 3- (일본인 음악가 해외 녹음)
루트비히 판 베토벤: 교향곡 제1번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 관현악단/코노에 히데마로
(일본 파를로폰 E17090~2. 1931년 녹음)
1집에 수록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스페인 기상곡과 함께 녹음된 것으로, 일본 지휘자가 녹음한 첫 베토벤 교향곡 전곡으로 기록되는 물건이다. 하지만 정말 같은 시기에 같은 악단이 녹음한 건가 싶을 정도로 음질이 시망인데, 이 세트에서 가장 기대한 녹음이 이 모양이다 보니 실망이 무척 컸다.
복각 엔지니어인 아타라시도 원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복각 후기에 첨언하고 있고, 이 음반 자체가 일본 파를로폰이 사업을 접기 직전에 만든 터라 극소량만 시판되었다면서 음반 입수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모든 포르테 악구에서 으스러지는 막장 음질 뿐 아니라 있는 지도 모를 목관의 존재감, 곳곳에서 엉성해지는 합주력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줄리니 시절의 라 스칼라라면 몰라도, 이 시기의 라 스칼라는 베토벤의 첫 교향곡도 연주하기 버거울 정도의 상태였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매도일까?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왈츠 '당신과 당신'
NBC 교향악단/코노에 히데마로
(일본 콜럼비아 A395. 1937년 녹음)
곡목 순서지에는 그냥 '심포니 오케스트라' 라고만 되어 있지만, 해설지에서는 명백하게 NBC 교향악단이라고 악단 정체를 밝히고 있어서 좀 벙찐 녹음. 시판품이 아니라 코노에가 일본 콜럼비아에 위탁해 제작한 사가반이다. 2월 14일에 RCA의 라디오 쇼인 '매직 키' 에 출연했을 때 지휘한 실황인데, 그래서 이 세트에서는 드물게 연주 종료 후의 박수가 수록되어 있다.
순서지에는 발췌판이라고 되어 있지만, 들어본 바로는 몇몇 대목의 반복만 생략되어 있을 뿐 서주와 왈츠, 후주가 온전히 들어가 있다. 하지만 녹음 상태가 별로였는 지, 아니면 일본 콜럼비아가 음반으로 제작하는 도중에 뻘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녹음 상태가 무척 탁하고 저음역이 완전히 뭉쳐져 들린다.
-CD 4- (일본인 작품 1)
이후쿠베 아키라: 교향 담시
도쿄 교향악단/야마다 카즈오
(일본 빅터 VH4084~5. 1943년 녹음)
3집에 수록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직전에 만든 녹음. 1집에서 후카이 시로의 곡을 지휘한 아사히나 타카시와 마찬가지로, 이 녹음도 야마다 카즈오의 지휘 활동 초기에 만들어진 매우 희귀한 녹음이다. 하지만 희귀한 건 둘째 치더라도, 이 곡도 피치가 엉망이어서 WAV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엇비슷하게 맞춰놓고 듣고 있다.
야마다는 이 곡을 초연한 지휘자이기도 했고, 또 이 곡이 일본 빅터의 관현악곡 현상 모집에서 당선된 곡이기 때문에 곧바로 이 녹음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카타야마 모리히데가 집필한 해설지에서는 너무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이후쿠베의 창작관과 당시 영향받은 정치 사조에 대한 썰을 풀고 있는데, 이후쿠베가 한 때 마르크시즘의 영향도 받았다고 언급한 것을 봐서는 역시 이후쿠베의 전쟁 중 군국주의 사조에 영합한 과오를 실드질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을 품게 한다.
이후쿠베도 당시 활동한 여러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군국주의 미화의 병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표면적으로 내세운 것은 오키 마사오 같은 이들처럼 사해동포주의나 범아시아주의였지만, 결국 그렇게 만든 작품들이 만주국이라던가 일본 점령 하의 필리핀 등지에서 정치 선전용으로 악용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실드는 커녕 비판이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이 모든 것을 비정치적으로 뭉뚱그려 퉁치고 있고, 2004년에 있었던 이후쿠베의 90회 생일 기념 음악회에서 첫 곡으로 일본군의 필리핀 점령 시기에 창작된 축전 서곡 '필리핀 국민에게' 가 별다른 성찰 작업 없이 버젓이 연주되는 등 역사와 관련된 어떠한 비판적 자세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핫토리 료이치: 이소쿄쿠(의상곡) 1936
일본 크리스탈 교향악단/핫토리 료이치
(크리스탈 2007. 1935년 녹음)
핫토리는 주로 히트곡을 여럿 발표한 대중음악 작곡가로 유명한데, 영국식 경음악의 영향을 받았는지 관현악을 동원한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도 남겼다. 하지만 이 곡은 3집에 수록된 하시모토의 '일본 역사의 노래 두루마리' 와 함께 이 시리즈 희대의 병맛 작품으로 손꼽고 싶은 곡이다. 러일전쟁 승전 3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곡이라는데, 간단히 하자면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역지사지 식으로 뒤집어 열화시킨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첫머리에서 일본 가가쿠의 대표작인 '에텐라쿠' 에도 사용된 '쿠로다부시' 를 시작으로 여러 곡의 일본과 러시아 노래가 인용되고 있는데, '볼가의 뱃노래' 같은 민요도 있지만 대체로 양국의 군가나 전쟁 관련 노래가 들어가 있어서 분명한 전쟁 묘사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모든 러시아 선율을 누르고 기미가요 선율이 부각되면서 일본의 승리를 명확하게 그리고 있다.
마르크시즘을 언급하면서 이후쿠베 실드질을 시도했던 카타야마는 여기서도 일본에 정주하며 음악 활동을 한 러시아 음악인 에마누엘 메테르와 핫토리의 친분 관계를 들먹이면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메테르와 핫토리가 친구를 먹었든 어쨌든 간에, 이렇게 자만하던 일본은 1938~39년에 각각 하산 전투와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에게 깨지면서 데꿀멍했다.
특히 이후 독소전쟁의 명장이었던 게오르기 주코프가 일본군을 아주 개발살낸 할힌골 전투는 일본에서도 쪽팔리는 지 분명한 전투를 '노몬한 사건' 이라고 축소해 부르는 등, 자신들 입장에서 흑역사로 여기고 있다. 또 2차대전 말기에 행해진 8월의 폭풍 작전에서 일본군이 입은 손실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CD 5- (일본인 작품 2)
마유즈미 토시로: 열 개의 악기를 위한 디베르티멘토
오하타 타모츠(플루트)/스즈키 세이조(오보에)/키타즈메 리세이(클라리넷)/
나카다 카즈츠구(바순)/치바 카오루(호른)/나카야마 후지오(트럼펫)/
시마 노보루(트롬본)/다테 료(바이올린)/쿠보타 모토이(콘트라베이스)/다테 준(피아노)
(일본 콜럼비아 A1055~6. 1950년 녹음)
1950년대 이후 일본 현대음악계에 충공깽을 몰고 온 마유즈미의 초기 실내악 작품 녹음이다. 아직 도쿄 음악학교(현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에 다니던 시기의 작품인데, 전체적으로 프랑스 6인조나 버르토크 등 20세기 초중반의 근대 작곡가들의 강한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독특한 유머 감각이나 날카로운 대비로 점철된 곡이지만, 이후 나오는 곡들과 비교하면 훨씬 평이한 편이다.
실내악 치고는 대규모 곡이지만 따로 지휘자를 뒀는 지는 표기되어 있지 않고, 테이프로 녹음했다고 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아마 테이프 도입 직전의 다이렉트 커팅 녹음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당시 음반 품질의 열악함은 이 녹음도 피해갈 수 없어서 문제.
-CD 6- (외국인 음악가 국내 녹음 1)
장 원여(일본어로는 코 분야): 공자묘의 음악
도쿄 교향악단/만프레드 구를리트
(일본 빅터 A4271~3. 1941년 녹음)
장 원여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에서도 다룬 바 있는데, 1집에서는 일본 작품집에 포함시켰다가 이 4집에서 외국인 음악가 국내 녹음으로 바꾼 것을 보면 왠지 중국 측의 항의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녹음도 1집에 있던 와타나베의 교향 모음곡 '야인' 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고, 또 구를리트가 전쟁 중 남긴 드문 녹음 대열에도 들어가는 자료다.
모두 여섯 곡으로 구성되는 모음곡 형식인데, 다만 이 녹음에서는 두 번째 곡이 생략되어 있다. 얼핏 보면 대만 혈통의 작곡가가 중국의 성현을 기리는 공자를 기리기 위해 쓴 곡 같아 보이지만, 작곡된 시기가 이미 중일전쟁으로 중국이 막장이 된 1939년이고 장 자신이 코 분야라는 일본식 이름의 일본인 자격으로 베이징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뭔가 찝찝하다.
물론 이 곡에서 공자를 비하한다거나 하는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눈으로 바라본 공자의 음악이라고 악용되었을 소지는 분명히 있다. 그게 아니라면야, 전쟁으로 녹음 활동이 위축된 시점에서 이 곡을 굳이 상업용 음반으로 만들었을 리 없겠지. 간단히 일본인의 눈으로 '내려다 본' 중국 성현의 모습이 투영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려나?
이렇게 어떤 것은 괜찮고, 어떤 것은 녹음이 구려서 실망이고, 어떤 것은 연주가 병맛이라 실망이고, 또 어떤 것은 곡 자체가 캐병진이라 짜증난 것들을 쭉 골라서 지껄였다. 일본에서 구한 것은 이게 다여서 따로 쓸 것도 없지만, 회현지하상가에서 발견한 또 다른 음반들과 모처에서 구입한 음원 등 끄적일 꺼리는 여전히 많다. 그리고 독일에서 주문한 것들까지 도착하면 꺼리 없어 뭐 쓰지 하는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All CD Images: ⓟ 2009 Rohm Music Foundation
일본 음반 업계는 전후에도 심각한 물자 부족 때문에 여전히 전시 통제 시기와 마찬가지로 조악한 재질의 원자재로 음반을 만들어야 했고, 독일과 달리 테이프 녹음 기술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병맛스러운 똥반이 계속 양산되었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나마 한국전쟁 특수로 일본 경제가 회생하기 시작한 뒤로는 음반 업계가 본격적인 회생기에 들어섰다지만, 적어도 1950년대 초반까지는 그렇게 안습 상황을 유지해야 했다.
*롬 뮤직 파운데이션의 4집 소개 페이지: 클릭
-CD 1- (일본인 음악가 국내 녹음 1)
루트비히 판 베토벤: 교향곡 제9번 4악장
카야마 요시코(소프라노)/요츠야 후미코(알토)/키노시타 타모츠(테너)/
후지이 노리아키(베이스)/타마가와 학원 합창단/도쿄 교향악단/하시모토 쿠니히코
(일본 빅터 JH232~4. 1943년 녹음)
일본에서 '제9' 라면 먼저 손꼽는 이 곡의 첫 상업용 스튜디오 녹음. 다만 전쟁 후반기의 물자 부족 때문인지 4악장만 녹음했다. 그리고 성악 파트의 가사는 예전에 소개한 이 녹음처럼 시인 오자키 키하치가 일본어로 개사한 것이다. 연주 자체는 딱히 빠지는 것 없이 괜찮은 편이고 녹음 상태도 그 당시 상황을 보면 기적적으로 우수한 편이지만, 일본어로 개사된 가사의 어색함이나 독창자의 경박해 보이는 발성은 여전히 내게 극복하기 어려운 난점이다.
카뮤 생상: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쿠사마 카즈코/도쿄 교향악단/오타카 히사타다
(일본 빅터 VH4080~3. 1943년 녹음)
그 당시 음반으로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생상의 피아노 협주곡을, 그것도 5번을 녹음한 이색 음반이다. 1943년 한 해 동안 도쿄 교향악단(현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은 꽤 빡빡한 녹음 스케줄을 소화했는데, 상술한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과 이 생상 협주곡의 매트릭스 번호가, 후술할 이후쿠베의 교향 담시와 3집에 수록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매트릭스 번호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봐서는 세션 당 지휘자 두 사람이 각기 한 곡 씩의 작품을 녹음한 것으로 보인다.
녹음 상태는 비슷한 시기의 베토벤 협주곡보다 좀 흐리멍텅한 소리인데, 곡이 가진 섬세한 표현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 연주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만한 문제다. 다만 이 녹음도 오타카가 지휘자로 남긴 녹음 중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음반 관련 정보에서는 1집 때와 마찬가지로 복각 엔지니어 아타라시 타다아츠가 '한 일본군 장교가 이 레코드를 구입한 뒤 사이공 방송국에서 아직 잔류하던 프랑스 기술진과 들으면서 감흥을 나눴다' 며 별 상관 없는 뻘소리를 또 늘어놓고 있는데, 그런 카더라 통신 수집할 시간에 마스터링이나 좀 빠릿빠릿하게 하지 그랬나?
요하네스 브람스: 헝가리 춤곡 제5번
칸사이 교향악단/아사히나 타카시
(이스터 C-1. 1953년 녹음)
아사히나는 생애 후반기에 베토벤과 브람스,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을 엄청나게 쏟아내며 일본 클래식 음반사들의 밥줄이 된 인물이었지만, 패전 후 음반 제작은 이런 '사소한' 소품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 녹음은 당시 미국에서 도입한 테이프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SP 컬렉션 복각 세트라는 점 때문인지 테이프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건지 열악한 상태의 SP로 복각했다고 되어 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쿠노 히사
(후지산 7263~4. 1922/23년경 녹음)
피아노 독주곡으로, 그것도 어쿠스틱 시대의 녹음으로는 드물게 관심을 가진 녹음. 시가 현 오츠 태생인 쿠노는 일본 초기 피아노 음악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록된다고 하는데, 190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한 첫 일본인 여성 피아니스트이자 처음으로 관현악을 대동한 '제대로 된' 협주곡 연주를 선보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한창 피아니스트와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1923년에 일본 문부성의 후원으로 빈에 유학하게 되었는데, 이 때 담당 교수인 에밀 자우어가 '일본인으로서는 가장 탁월한 베토벤 음악을 연주하고 있지만,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고 충고했다. 하지만 쿠노는 이것을 자신에게 내린 예술적 사망 선고라고 생각했는 지,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묵고 있던 빈 근교의 바덴 바이 빈 호텔에서 투신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물론 유서 조차 남기지 않은 것을 봐서는 상당히 돌발적인 죽음인 것이 확실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녀가 순두부 멘탈이었는지 자우어가 너무 가시돋힌 말로 일본인 학생을 비판한 것인 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아무튼 오스트리아로 가기 직전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 녹음이 쿠노가 남긴 유일한 녹음인데, 어쿠스틱 녹음의 한계 때문인지 1악장의 셋잇단음표 음형의 첫 음을 한 옥타브 올려서 연주하고 있다.
너무 흐릿하고 애매한 녹음 상태 때문에 쿠노가 그 당시 독보적인 피아니스트였는지 어쨌는지도 파악하기 힘든데, 일단 역사적인 가치 정도만을 인정해야 할 녹음 같다. 차라리 같은 곡을 사와다 류키치가 연주한 3집의 1931년 전기 녹음이 더 듣기 편하다. 물론 향상된 음질과 함께 잡음도 향상된 게 문제지만.
-CD 2- (일본인 음악가 국내 녹음 2)
로베르트 슈만: 시인의 사랑
키노시타 타모츠/레오니드 크로이체르
(일본 콜럼비아 W127~9. 1943년 녹음)
이 세트에서 유일한 서양 연가곡집 전곡 녹음. 일본인 성악가가 외국 연가곡 전곡을 원어로 녹음한 최초의 기록 중 하나라고도 한다. 녹음 시기도 일본이 막장 일보로 달려가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특이한데, 키노시타는 이 곡 외에도 같은 해 12월에 니치쿠(일본 콜럼비아의 전시 명칭)에서 노부토키 키요시의 성악 모음곡 '사라' 를 미즈타니 타츠오의 반주로 녹음했다(이 녹음 역시 이 세트의 다섯 번째 CD에 수록되어 있다).
물론 최초라는 기록에 전시 중 만들어진 보기 드문 연가곡 녹음이라는 점과, 음악적으로 얼마나 우수한가 하는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어눌한 독일어 딕션과 프레이징이 특히 이 녹음을 듣기 괴롭게 하는데, 더군다나 가사의 해석과 전달에 큰 비중이 주어지는 독일 가곡의 특성 상 이런 난점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녹음이 그 시기 기준으로는 괜찮다는 게 얼마 안되는 위안일 따름이다.
-CD 3- (일본인 음악가 해외 녹음)
루트비히 판 베토벤: 교향곡 제1번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 관현악단/코노에 히데마로
(일본 파를로폰 E17090~2. 1931년 녹음)
1집에 수록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스페인 기상곡과 함께 녹음된 것으로, 일본 지휘자가 녹음한 첫 베토벤 교향곡 전곡으로 기록되는 물건이다. 하지만 정말 같은 시기에 같은 악단이 녹음한 건가 싶을 정도로 음질이 시망인데, 이 세트에서 가장 기대한 녹음이 이 모양이다 보니 실망이 무척 컸다.
복각 엔지니어인 아타라시도 원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복각 후기에 첨언하고 있고, 이 음반 자체가 일본 파를로폰이 사업을 접기 직전에 만든 터라 극소량만 시판되었다면서 음반 입수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모든 포르테 악구에서 으스러지는 막장 음질 뿐 아니라 있는 지도 모를 목관의 존재감, 곳곳에서 엉성해지는 합주력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줄리니 시절의 라 스칼라라면 몰라도, 이 시기의 라 스칼라는 베토벤의 첫 교향곡도 연주하기 버거울 정도의 상태였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매도일까?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왈츠 '당신과 당신'
NBC 교향악단/코노에 히데마로
(일본 콜럼비아 A395. 1937년 녹음)
곡목 순서지에는 그냥 '심포니 오케스트라' 라고만 되어 있지만, 해설지에서는 명백하게 NBC 교향악단이라고 악단 정체를 밝히고 있어서 좀 벙찐 녹음. 시판품이 아니라 코노에가 일본 콜럼비아에 위탁해 제작한 사가반이다. 2월 14일에 RCA의 라디오 쇼인 '매직 키' 에 출연했을 때 지휘한 실황인데, 그래서 이 세트에서는 드물게 연주 종료 후의 박수가 수록되어 있다.
순서지에는 발췌판이라고 되어 있지만, 들어본 바로는 몇몇 대목의 반복만 생략되어 있을 뿐 서주와 왈츠, 후주가 온전히 들어가 있다. 하지만 녹음 상태가 별로였는 지, 아니면 일본 콜럼비아가 음반으로 제작하는 도중에 뻘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녹음 상태가 무척 탁하고 저음역이 완전히 뭉쳐져 들린다.
-CD 4- (일본인 작품 1)
이후쿠베 아키라: 교향 담시
도쿄 교향악단/야마다 카즈오
(일본 빅터 VH4084~5. 1943년 녹음)
3집에 수록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직전에 만든 녹음. 1집에서 후카이 시로의 곡을 지휘한 아사히나 타카시와 마찬가지로, 이 녹음도 야마다 카즈오의 지휘 활동 초기에 만들어진 매우 희귀한 녹음이다. 하지만 희귀한 건 둘째 치더라도, 이 곡도 피치가 엉망이어서 WAV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엇비슷하게 맞춰놓고 듣고 있다.
야마다는 이 곡을 초연한 지휘자이기도 했고, 또 이 곡이 일본 빅터의 관현악곡 현상 모집에서 당선된 곡이기 때문에 곧바로 이 녹음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카타야마 모리히데가 집필한 해설지에서는 너무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이후쿠베의 창작관과 당시 영향받은 정치 사조에 대한 썰을 풀고 있는데, 이후쿠베가 한 때 마르크시즘의 영향도 받았다고 언급한 것을 봐서는 역시 이후쿠베의 전쟁 중 군국주의 사조에 영합한 과오를 실드질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을 품게 한다.
이후쿠베도 당시 활동한 여러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군국주의 미화의 병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표면적으로 내세운 것은 오키 마사오 같은 이들처럼 사해동포주의나 범아시아주의였지만, 결국 그렇게 만든 작품들이 만주국이라던가 일본 점령 하의 필리핀 등지에서 정치 선전용으로 악용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실드는 커녕 비판이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이 모든 것을 비정치적으로 뭉뚱그려 퉁치고 있고, 2004년에 있었던 이후쿠베의 90회 생일 기념 음악회에서 첫 곡으로 일본군의 필리핀 점령 시기에 창작된 축전 서곡 '필리핀 국민에게' 가 별다른 성찰 작업 없이 버젓이 연주되는 등 역사와 관련된 어떠한 비판적 자세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핫토리 료이치: 이소쿄쿠(의상곡) 1936
일본 크리스탈 교향악단/핫토리 료이치
(크리스탈 2007. 1935년 녹음)
핫토리는 주로 히트곡을 여럿 발표한 대중음악 작곡가로 유명한데, 영국식 경음악의 영향을 받았는지 관현악을 동원한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도 남겼다. 하지만 이 곡은 3집에 수록된 하시모토의 '일본 역사의 노래 두루마리' 와 함께 이 시리즈 희대의 병맛 작품으로 손꼽고 싶은 곡이다. 러일전쟁 승전 3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곡이라는데, 간단히 하자면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역지사지 식으로 뒤집어 열화시킨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첫머리에서 일본 가가쿠의 대표작인 '에텐라쿠' 에도 사용된 '쿠로다부시' 를 시작으로 여러 곡의 일본과 러시아 노래가 인용되고 있는데, '볼가의 뱃노래' 같은 민요도 있지만 대체로 양국의 군가나 전쟁 관련 노래가 들어가 있어서 분명한 전쟁 묘사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모든 러시아 선율을 누르고 기미가요 선율이 부각되면서 일본의 승리를 명확하게 그리고 있다.
마르크시즘을 언급하면서 이후쿠베 실드질을 시도했던 카타야마는 여기서도 일본에 정주하며 음악 활동을 한 러시아 음악인 에마누엘 메테르와 핫토리의 친분 관계를 들먹이면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메테르와 핫토리가 친구를 먹었든 어쨌든 간에, 이렇게 자만하던 일본은 1938~39년에 각각 하산 전투와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에게 깨지면서 데꿀멍했다.
특히 이후 독소전쟁의 명장이었던 게오르기 주코프가 일본군을 아주 개발살낸 할힌골 전투는 일본에서도 쪽팔리는 지 분명한 전투를 '노몬한 사건' 이라고 축소해 부르는 등, 자신들 입장에서 흑역사로 여기고 있다. 또 2차대전 말기에 행해진 8월의 폭풍 작전에서 일본군이 입은 손실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CD 5- (일본인 작품 2)
마유즈미 토시로: 열 개의 악기를 위한 디베르티멘토
오하타 타모츠(플루트)/스즈키 세이조(오보에)/키타즈메 리세이(클라리넷)/
나카다 카즈츠구(바순)/치바 카오루(호른)/나카야마 후지오(트럼펫)/
시마 노보루(트롬본)/다테 료(바이올린)/쿠보타 모토이(콘트라베이스)/다테 준(피아노)
(일본 콜럼비아 A1055~6. 1950년 녹음)
1950년대 이후 일본 현대음악계에 충공깽을 몰고 온 마유즈미의 초기 실내악 작품 녹음이다. 아직 도쿄 음악학교(현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에 다니던 시기의 작품인데, 전체적으로 프랑스 6인조나 버르토크 등 20세기 초중반의 근대 작곡가들의 강한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독특한 유머 감각이나 날카로운 대비로 점철된 곡이지만, 이후 나오는 곡들과 비교하면 훨씬 평이한 편이다.
실내악 치고는 대규모 곡이지만 따로 지휘자를 뒀는 지는 표기되어 있지 않고, 테이프로 녹음했다고 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아마 테이프 도입 직전의 다이렉트 커팅 녹음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당시 음반 품질의 열악함은 이 녹음도 피해갈 수 없어서 문제.
-CD 6- (외국인 음악가 국내 녹음 1)
장 원여(일본어로는 코 분야): 공자묘의 음악
도쿄 교향악단/만프레드 구를리트
(일본 빅터 A4271~3. 1941년 녹음)
장 원여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에서도 다룬 바 있는데, 1집에서는 일본 작품집에 포함시켰다가 이 4집에서 외국인 음악가 국내 녹음으로 바꾼 것을 보면 왠지 중국 측의 항의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녹음도 1집에 있던 와타나베의 교향 모음곡 '야인' 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고, 또 구를리트가 전쟁 중 남긴 드문 녹음 대열에도 들어가는 자료다.
모두 여섯 곡으로 구성되는 모음곡 형식인데, 다만 이 녹음에서는 두 번째 곡이 생략되어 있다. 얼핏 보면 대만 혈통의 작곡가가 중국의 성현을 기리는 공자를 기리기 위해 쓴 곡 같아 보이지만, 작곡된 시기가 이미 중일전쟁으로 중국이 막장이 된 1939년이고 장 자신이 코 분야라는 일본식 이름의 일본인 자격으로 베이징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뭔가 찝찝하다.
물론 이 곡에서 공자를 비하한다거나 하는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눈으로 바라본 공자의 음악이라고 악용되었을 소지는 분명히 있다. 그게 아니라면야, 전쟁으로 녹음 활동이 위축된 시점에서 이 곡을 굳이 상업용 음반으로 만들었을 리 없겠지. 간단히 일본인의 눈으로 '내려다 본' 중국 성현의 모습이 투영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려나?
이렇게 어떤 것은 괜찮고, 어떤 것은 녹음이 구려서 실망이고, 어떤 것은 연주가 병맛이라 실망이고, 또 어떤 것은 곡 자체가 캐병진이라 짜증난 것들을 쭉 골라서 지껄였다. 일본에서 구한 것은 이게 다여서 따로 쓸 것도 없지만, 회현지하상가에서 발견한 또 다른 음반들과 모처에서 구입한 음원 등 끄적일 꺼리는 여전히 많다. 그리고 독일에서 주문한 것들까지 도착하면 꺼리 없어 뭐 쓰지 하는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All CD Images: ⓟ 2009 Rohm Music Foundation
Posted by 머나먼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