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 이어서. 이제 양식 메뉴 중 정식 빼고 남은 것은 밥 종류와 까스 종류 각기 두 가지 씩 네 가지였다. 일단 전에 함박스텍을 먹었으니 이제 다시 밥으로 가자고 생각해서 아름볶음밥이라는 걸 주문했다.
그런데 이 메뉴는 주문할 때 뭔가 페널티(?)가 걸렸다. 사실 분식 쪽 메뉴에도 볶음밥이 있는데, 이건 그걸 상당히 매운 양념으로 볶아낸 거라고 해서 주문을 하면 미리 맵다고 주의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맵겠냐는 오기도 돌고 해서(??) 그냥 시켰다.
일단 냄새를 맡아 보니, 후추 계통 향신료를 꽤 썼는지 매캐한 냄새가 돌아 바로 재채기를 했다. 먹어 보니 꽤 매운 맛이기는 했지만, 무교동 낙지 수준으로 통각까지 자극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 반 정도 먹으니 오히려 익숙해졌는데, 대신 매운 음식을 먹을 때 늘 그렇듯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기본적으로는 오무라이스에 들어가는 야채볶음밥을 매콤하게 조리하고, 거기에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인지 삶은 달걀 1/4쪽을 추가한 모양새였다. 다행히 오무라이스 먹었을 때처럼 질척하지는 않았고 꽤 고슬고슬했는데, 다만 매운 음식에 부담을 느낄 때라면 다소 망설일 지도 모르겠다.
일단 밥 종류 중에서는 그래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이건 흔쾌히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 뒤 여섯 번째로 갔을 때 다시 까스류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는데, 둘 중 뭘 주문할 지 골라야 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가 주문한 게 비후까스. 이미 썼듯이 이 집의 고가 메뉴 세 가지 중 하나다.
소스는 돈까스와 마찬가지로 데미글라스를 쓰고 있었는데, 돈까스와 달리 소스를 위에 끼얹어주는 게 아니라 접시 밑에 붓고 그 위에 비후까스를 올린 독특한 형태로 내오고 있었다.
이리저리 잘라본 뒤. 아무래도 쇠고기다 보니 고기 층은 돈까스보다 좀 더 얇았고, 다소 질긴 듯한 부위가 많았다. 다만 5000원이라는 비용으로 쇠고기 먹는 느낌을 내고 싶다면 가끔 선택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름도 생소한 폭팔메산을 빼면 웬만큼 예측 가능했던 까스류 종류는 모두 먹은 셈이었는데, 3월 초에 일곱 번째 갔을 때는 이제 남은 밥 메뉴 하나를 먹을 차례였다.
하이라이스. 사실 가게 앞에 붙은 것들 외에도 메뉴판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되어 있는데, 양식의 경우 카레라이스와 샌드위치 같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걸 먹고 카레라이스를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건 좀 아쉽다.
길쭉하고 움푹 패인 그라탕 접시에 나왔는데, 한 켠에 밥을 담고 다른 한 켠에 소스를 부어서 내놓고 있었다. 아름볶음밥과 마찬가지로 소스 위에 삶은 달걀 1/4쪽이 올라와 있었다.
한 번 비벼본 뒤. 이것도 가격 대가 저렴한 탓인지 고기를 쓰지 않고 양파와 당근, 토마토 만으로 조리하고 있었다. 야채 위주인 것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입에서 오독하게 씹히는 당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소스도 흔히 먹던 하이라이스보다는 단맛과 신맛이 강한 타입이라서 이것도 좀 거시기했다.
물론 다 먹기는 했지만, 왠지 카레라이스도 이것과 비슷할 것 같아서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그리고 1주일 뒤 여덟 번째로 갔을 때는 이제 가게 앞에 붙여둔 메뉴판에 있던 것 중 마지막 남은 양식 메뉴를 주문할 차례였다.
이 집에서 이름부터 가장 특이한 메뉴라서 갈피를 못잡았던 폭팔메산. 나중에 돈까스 위에 야채 소스와 치즈를 올린 것이라는 메뉴판의 설명을 보고서야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영어로 써보자면 pork parmesan. 물론 올라가는 치즈는 진짜 이탈리아산 파르메산 치즈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슬라이스 치즈다.
물론 저렴한 재료를 써서 가격대를 맞췄다고는 하지만, 그냥 돈까스와 달리 야채 소스와 치즈가 올라갔기 때문에 모양새는 좀 더 고급스럽게 보였다. 다만 치즈의 경우 갓 튀긴 돈까스에 뜨거운 소스를 붓고 바로 올려서 내오기 때문에 사실상 반 쯤 녹아 있는 상태였다.
녹은 치즈와 소스를 섞어서 잘 펴발라주고 잘라놓은 뒤. 야채 소스의 건더기는 하이라이스와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맛은 돈까스와 비슷했지만, 치즈 때문인지 좀 더 진하고 어떨 때는 느끼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어쨌든 500원을 더 들여서 치즈돈까스 비슷한 것을 먹고 싶다면 가끔 골라도 될 것 같다.
음식이 마음에 들었든 아니든 간에, 이렇게 해서 여덟 번의 끼니를 모두 말끔하게 해결했다. 혜화역 이북으로는 그렇게 자주 들락거리는 편은 아니지만, 지하철로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고 마을버스 환승이나 도보 이동 같은 추가 부담만 감수할 수 있다면 대학가 식당 특유의 박리다매와 옛 경양식풍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다만 주로 먹고 싶다고 생각되는 건 돈까스와 생선까스, 폭팔메산, 비후까스 정도고, 나머지는 취향을 좀 많이 탈 것 같다.
이후에도 서울과 수도권, 멀게는 강원도까지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는데, 일하면서 이것저것 먹게 된 것 중에서도 내 관심을 끈 어느 기사식당도 있어서 다음엔 이걸 좀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게 내가 그 동안 쓰던 구형 피처폰의 열악한 화소 폰카로 찍은 사진을 담은 마지막 포스팅이 될 예정이고, 다음부터는 지인이 공짜로 준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을 무보정으로 올려보려고 한다.
물론 이미 케이크스퀘어 후기에서 몇 장을 올린 바 있었는데, 한 장 빼고는 처음 다뤄보는 스마트폰 카메라라 화질이 상당히 구린 게 아쉽긴 하다. 지금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익히고 있는 중인데, 그런 과정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일단 다음에 여력 되면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