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향은 2010년대 들어 (비록 한국 한정에 가깝기는 하지만) 소니BMG 코리아를 통해 여러 상업반을 찍어내면서, 도이체 그라모폰이라는 레이블과 계약해 세계구급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는 서울시향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음반 활동을 꽤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악단이 되었다.
하지만 현 상임 지휘자 김대진의 전임자였던 박은성도 비록 이런저런 이유로 비매품으로 묶인 채 대부분 품절된 상황이지만 게누인(Genuin) 한국 지사를 통해 도합 여섯 장의 CD를 낸 적도 있고, 박은성의 전임이었던 금난새도 녹음 활동을 한 바 있다. 그리고 그걸 입증할 CD의 진짜 시판본과 후속 CD를 나란히 구입할 수 있었다.
아직 시중 중고음반점에서 '체이스컬트 콘서트' 라는 이름을 단 제일모직의 캐주얼 브랜드 홍보용 비매품 음반으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품목이지만, 그것이 원래 서울음반에서 나온 상업반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위의 CD다. KBS 교향악단과 만든 두 장의 CD와 러시아 악단들과 만든 CD들과 달리, 이 음반에서는 소위 말하는 명곡선 혹은 롤리팝으로 불리는 관현악 소품들을 가지고 작업했다.
수록곡은 주페의 오페레타 '경기병' 서곡,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5번 (편곡자 불명), 로시니의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서곡, 차이콥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 중 정경과 어린 백조의 춤, 스페인 춤곡 세 곡, 영화음악 메들리 (편곡자 불명), 이성환 편곡의 한국 가곡 메들리,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순으로 되어 있다.
선곡은 대충 보기에 무난한 편인데, 다만 차이콥스키의 경우 흔히 모음곡 전곡 혹은 발췌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거기에 모음곡에서는 빠져 있는 스페인 춤곡을 넣은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영화음악 메들리나 한국 가곡 메들리의 경우 팝스 혹은 가곡 애호가들을 위한 서비스로 보이는데, 후자의 편곡을 맡은 이성환은 이후에도 금난새가 모스크바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한국 가곡과 러시아 소품들을 컴필레이션한 앨범 'From Seoul to Moscow' 를 제작했을 때도 편곡자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녹음은 1994년 2월 1~2일 이틀 동안 경기도문화예술회관(현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진행했다고 되어 있는데, 수원시립예술단 홈페이지의 수원시향 연혁에서 열람할 수 있는 공연 기록을 보면 1월 한 달 동안 아무 공연 기록이 없어서 아마 이 음반을 만들기 위한 리허설을 집중적으로 하고 2월 초순 동안 녹음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 녹음인 만큼 이렇다 할 소음이나 잡음은 없지만, 뭔가 녹음이 많이 탁하게 들리는 게 흠이다.
수원시향/금난새 콤비의 CD가 이후에 몇 장 더 나왔는 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는데, 아무래도 둘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안좋게 끝났기 때문인 지 예술단 홈페이지에서도 공연 기록 외에 음반과 관련된 정보는 박은성 재임기 부터만 확인할 수 있어서 자세한 것은 악단 측에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저것 외에 한 장 더 있다는 것은 확언할 수 있다.
서울음반에서 낸 처녀작과 같은 제목을 달고 있고, 컨셉도 비슷하다. 다만 녹음 제작은 서울음반이 아닌 이즘레코드에서 맡았고, 제작은 삼성전자에서 했다고 되어 있다. 처녀작이 제일모직의 홍보용 CD로 뿌려졌고, 이 음반도 삼성전자에서 제작했다고 하는 것을 볼 때 금난새 재임기에 이 악단의 활동이 삼성그룹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였음을 짐작케 한다.
다만 이 음반은 여러 모로 상당히 허술하고 오류 많은 곡목 표기와 속지 해설이 문제인데, 커버에는 'live' 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수원시립예술단 홈페이지의 공연 기록을 살펴 보면 녹음이 행해졌다고 되어 있는 1995년 6월 24일에는 아무 공연 기록이 없다. 그리고 커버에는 수원 시립 교향악단이라고 인쇄했으면서 케이스 뒤에는 수원 필 하모닉 교향악단이라는 식으로 해놓고 있어서, 악단명 표기에도 일관성이 없다.
영어 악단명 표기도 서울음반 커버에서도 보이듯이 Suwon Symphony Orchestra로 했다가 이 음반에서는 Suwon Philharmonic Orchestra라고 바꾼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사실 한국의 관현악단 명칭 영문 표기 문제는 너무 한심할 지경이라 더 이상 코멘트하고 싶지는 않지만 교향악단을 관현악단과 동일한 명사로 보는 작태는 반드시 고쳐져야 마땅하다고 본다.
물론 악단 명칭 표기를 갖고 깠다고 나를 문법 나치 수준으로 깎아내리고자 할 양반들도 있겠지만, 내 지적질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케이스 뒤의 수록곡을 보자면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 중 러시아 춤곡(트레파크)과 꽃의 왈츠,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빠른 폴카 '천둥과 번개' 와 왈츠 '봄의 소리',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베버의 클라리넷 소협주곡(여인호 협연),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 중 여름(김형순 협연),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순서로 인쇄되어 있다.
워낙 영어 물 먹은 양반들이 많아서인지 슈트라우스를 스트라우스로, 베버를 웨버로 표기한 건 애교로 넘기더라도, 후반 수록곡인 비발디와 모차르트의 경우 '이거 제대로 들어보고 표기한 건가?' 싶을 정도로 어설프고 허술하다. 분명히 케이스와 CD에는 여름이 연주되었다고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틀어 보면 여름이 아니라 봄이다.
아무리 비매품 목적으로 만들었다지만, 평소 클래식 전도사를 자처하던 금난새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황당한 오기가 아닐 수 없다. 그가 나중에 사계를 해설할 때 여름과 봄을 착각해서 설명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검수라도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어이없는 실수였다.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는 꽤 여러 곡이고 번호 정돈도 잘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많은데, 이 때문에 최소한 어떤 곡인 지를 구분하려면 쾨헬 번호는 같이 표기해 주어야 한다. 서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KBS에서 제작한 CD의 경우에도 K.138 (125c)이라고 표기했기 때문에 무슨 곡인 지를 알 수 있는데 이 음반에는 그냥 디베르티멘토, 딱 그것 뿐이다. 도대체 무슨 디베르티멘토인데? 다행히 필립스에서 나온 덩치 큰 모차르트 전집 CD가 있어서 일일이 들어본 끝에 수록곡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 (125a).
그리고 악단원 목록과 연혁 뿐인 속지에서도 연혁 부문의 설명이 다소 조잡한데, 특히 서울음반에서 나온 전작이 1993년 말에 출반되었다는 설명은 이해할 수가 없다. 위에 썼듯이 녹음은 1993년 말이 아니라 1994년 초에 제작되었고, CD에 표기된 제작 연도는 1995년이다. 제대로 조사했다면 이렇게 연대가 뒤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안일한 제작 방식 때문에 다소 이미지가 깎일 수밖에 없는 물건인데, 다만 한국 악단의 녹음으로는 처음 입수한 베버의 클라리넷 소협주곡은 꽤 유니크한 녹음이다. 음질은 서울음반의 것보다는 좀 더 명확한 편인데, 다만 마이크가 무대에 다소 가깝게 세팅되었는 지 자연스러운 울림을 느끼기는 힘들다. 특히 현악 편성만으로 녹음한 비발디와 모차르트의 경우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려서 오히려 약간 답답하다는 느낌도 준다.
그리고 금난새는 수원시향과 불명예스럽게 결별한 후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도 비슷한 소품 앨범을 하나 더 만들었는데, 이전 포스팅에 썼듯이 수록곡 중 꽤 여러 곡이 이 수원시향 앨범들과 겹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금난새가 만약 현재 재임 중인 인천시향과 소품집을 제작한다면 이런 이력을 비슷하게 따라가지 않을 까 싶다.
수원시향이 두 번째 CD를 녹음할 무렵이던 1995년에는 그보다 약 7년 늦게 창단된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자매 단체인 부천 시립 합창단과 첫 음반을 제작한 바 있다. 부천시립예술단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음반들은 관현악단 따로 합창단 따로 발매된 것 같은데, 이번에 입수한 것은 그 둘을 합친 더블 앨범이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합창 음악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관현악단 연주만을 수록한 첫 번째 CD만 듣고 있는데, 역시 컨셉은 수원시향/금난새의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소품집이다. 다만 자세한 녹음 일자와 장소를 기재한 수원시향 것과 달리, 이 음반에는 아무런 녹음 정보가 없다. 그나마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임헌정의 지휘로 녹음된 것은 확실하다.
수록곡은 아일랜드 전통 선율인 '런던데리 에어' 의 퍼시 그레인저 편곡판,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 2막 간주곡,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D단조 2악장(이명진 협연), 들리브의 발레 '코펠리아' 중 왈츠와 질투(Valse et jalousie),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론도 D장조(앨범 속지에는 C단조라고 잘못 기재됨) K.373(이소영 협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트리치 트라치 폴카,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김성태의 동심초(이성환 편곡), 차이콥스키의 관현악 모음곡 4번 '모차르티아나' 중 세 번째 곡 '기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1막 전주곡,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춤곡 작품 72 중 두 번째 곡, 그리고 임헌정이 직접 편곡한 동요 접속곡(포푸리)이다.
같은 롤리팝 컨셉이기는 하지만, 부천 필의 이 첫 음반은 그 중에서도 꽤 다양한 곡들이 섞여 있다. 마스네의 곡은 바이올린 솔로가 두드러지는 곡이지만 협연자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데, 추측으로는 당시 악단 악장이었던 김강훈이 연주한 것 같다. 악단 오보에와 플루트 수석 주자들을 솔리스트로 기용한 것도 눈에 띄는데, 특히 모차르트의 곡은 원래 바이올린용 작품이지만 여기서는 플루트로 편곡해 녹음했다. 또 수원시향/금난새의 첫 앨범에서 편곡자로 모습을 보인 이성환이 이번에도 동심초의 관현악 편곡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임헌정 자신도 원 전공인 작곡 실력을 살려 마지막 곡을 직접 편곡했는데, 이후 부천 필 공연에서도 리스트의 '사랑의 꿈',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헌정(Zueignung)' 등 유명 소품을 직접 편곡해 앙코르로 연주한 이력을 이 음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먼저인 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부천필은 같은 해 '돌아온 영웅 홍길동' 의 OST를 통해 음반 시장에 자신들의 연주를 선보인 바 있다. 다만 시판품으로 제작된 저 OST와 달리, 이 음반은 예술단 자체 제작반으로 소량 풀린 것이 전부라서 지금 구하려면 상당한 발품 혹은 검색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고 본다.
수원과 부천 등 서울의 위성 도시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시립예술단의 자체 제작반은 분명히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부산시립예술단의 부산시향, 부산시립합창단,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세 단체가 합동 제작한 음반도 그 범주에 속한다.
세 단체가 1998년 한 해동안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녹음한 실황을 추려서 서울음반이 두 장의 CD로 제작한 것인데, 첫 장에는 부산시향이, 둘째 장에는 합창단과 국악관현악단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 음반에서도 내 관심은 첫 번째 장에 집중되었다.
당시 부산시향의 상임 지휘자는 곽승이었는데, 미국 유학파 답게 여러 쇼피스 등을 선곡할 때는 다른 지휘자들과 달리 미국 작품을 자주 올린 바 있다. 앙코르와 서곡 격의 작품 연주를 모아놓은 이 음반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역시 소품집 비슷한 컨셉인 만큼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 많다.
순서대로 쇼스타코비치의 축전 서곡, 르로이 앤더슨의 싱커페이티드 클락,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춤곡 작품 46 중 첫 번째 곡, 밀양 아리랑(김희조 편곡),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메들리(존 윌리엄스 편곡), 수자의 워싱턴 포스트 행진곡, 차이콥스키의 슬라브 행진곡, 수자의 행진곡 '항상 충실히(Semper fidelis)',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러시아 부활제 서곡이 실려 있는데, 앤더슨과 번스타인, 수자는 한국 악단 연주로는 처음 듣는 곡들이라 이채롭다.
다만 이런 소품들과 달리 쇼스타코비치와 차이콥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같이 본격적인 관현악 작품 범주에 들어가는 곡들의 연주는 다소 밋밋한데, 매우 탁하고 평면적인 녹음 상태도 이런 이미지에 상당 부분 일조하고 있다. 지금도 리모델링 후의 음향에 대해 불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당시 부산문화회관의 음향 상태는 꽤 좋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소품집 형태의 음반들도 물론 여러 장 샀지만, 본격적인 교향곡 등을 담은 음반이나 종교음악, 칸타타 녹음이 든 것도 만만찮게 구매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그 중 연말에 한국의 개신교 계통 교회들에서 유달리 자주 공연하는 헨델의 '메시아' 를 담은 음반 세 종류를 비교해 썰을 풀 예정이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