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돈까스/치킨까스 전문점인 허수아비, 베트남식 쌀국수 전문점인 포보와 함께 일종의 연합 체인을 이루고 있는 식당이 국밥현이다. 다만 워낙 요식업의 흥망성쇠 주기가 빠른 노량진이라는 동네의 특성 상 저기도 좀 우여곡절이 있는 것 같은데, 원래 일본식 라멘집이 있었다가 장사가 안되었는지 접고 대신에 국밥집이 들어온 거라고 한다.
그 증거가 가게 앞의 오른쪽 옆구리(???)에 붙은 냉모밀 광고인데, 잘 보면 위에 '코쿠라멘' 이라고 알파벳으로 적혀있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이제 라멘은 팔지 않고, 국밥 위주로 운영되는 가게로 바뀌었지만.
그리고 진짜 첫 방문은 위의 가게 사진을 찍은 지 한 달 남짓 되어서야 가능했는데, 허수아비의 돈까스가 뿜어내는 유혹이 너무 강하기도 했기 때문이고 알바를 요즘 비교적 자주 뛰는 편이라 시간이 그리 넉넉치 않다는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도 포보와 마찬가지로 가게 안에 식권 발매기를 비치하고 있는데, 신용카드로 결제할 사람 외에는 모두 여기서 먹을 것을 선택해 계산해야 한다. 메뉴는 순대국밥, 육개장국밥, 콩나물국밥, 제육덮밥과 불짬국수, 냉모밀/비빔모밀로 되어 있었는데, 밥 종류에서 대짜와 소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포보와 비슷했다. 이들 중 내가 먹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순대국밥과 육개장국밥 두 종류.
그래서 처음에는 순대국밥 대짜(5000\)를 시켰다. 이렇게 발매기에서 나온 번호를 주방에서 부를 때 음식을 타오면 된다.
가게 안은 별로 넓지는 않았는데, 대신 식사 공간을 허수아비/포보와 마찬가지로 모두 벽을 마주보고 앉는 식으로 배치해 식사 자체에 주력하도록 했다. 이렇게 고시촌 식당 특유의 효율성을 강조한 것은 역시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벽에 붙은 순대국밥에 대한 설명. 뭔가 이해가 안되는 문맥과 오타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국에 다대기가 들어간다는 것은 확실했다. 원래 다대기를 잘 안넣는 편인데, 그렇다고 테이블에 새우젓이 비치된 것도 아니어서 따로 빼달라고 하지는 않고 그냥 먹어 보기로 했다.
128번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서 받아온 순대국밥 식판. 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새우젓이 담긴 종지가 따라 나왔다. 밑반찬 인심이 야박해 보이지만, 음식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서 모자라면 주방에 더 청해서 먹을 수도 있다.
다대기의 붉은색이 좀 위협적이었지만, 일단 덜어내지 않고 잘 섞어봤다.
국물을 한 숟갈 먹어 보니 예상 외로 싱거운 편이어서, 같이 나온 새우젓까지 넣어서 간을 맞췄다. 내용물은 순대와 돼지고기, 내장 약간으로 되어 있었는데, 진하지 않고 다소 깔끔한 국물 맛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병천아우내장터순대의 순대국을 연상케 했다.
다만 주문 받고 바로 펄펄 끓여내기 때문에, 뜨거운 것을 빨리 못먹는 내 입맛에는 약간 고역이었다. 물론 이 뜨거움이 오히려 뱃속으로 들어가면 든든함이라는 느낌으로 변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진하고 돼지냄새 나는 와일드한 쪽을 선호하지만, 이렇게 가벼운 느낌의 순대국도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나흘 뒤 두 번째 갔을 때는 육개장국밥 대짜(4000\)를 주문했다. 다만 돼지보다 비싼 소가 주재료임에도 되레 가격이 순대국밥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번호가 호명될 때 받아온 모습. 일단 겉모습은 충실해 보인다.
다만 국그릇 위에는 달걀지단채를 제외하면 주로 콩나물, 토란 줄기, 고사리, 무 같은 '식물성' 건더기 위주라서, 아마 고기는 별로 들어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섞어서 먹어봤을 때도 실제로 그랬다. 좀 아쉽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 원망스러운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고기가 많고 적고를 떠나 상당히 뜨겁고 또 매웠기 때문에, 순대국밥보다 더 시간을 들여서 먹어야 했다. 순대국밥 다대기가 별로 맵지 않아서 이런 상황에 대비가 안되어 있었는데, 다음에는 아예 뜨겁고 화끈한 게 무지 땡길 때를 노려야 할 것 같다.
이외에도 여러 메뉴가 있기는 했지만, 일단 가장 궁금했던 건 저 두 메뉴라서 일단 이렇게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로 돼지고기 쪽이 더 취향이라서, 순대국밥 같은 경우에는 약간 덜 느끼하고 가벼운 맛으로 먹겠다고 하면 반복해서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노량진.
그리고 이 다음에는 정말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곳과 멀지 않은, 한양대 인근의 어느 돈까스집을 찾았다. 소위 '한국식 경양식' 삘의 돈까스집이라고 해서 예전부터 점찍어둔 곳이었지만, 직접 가보기 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