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면 한국은 경제대국 운운하기에는 날이 갈 수록 참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트위터에 '회사원 생활하면 천천히 망하지만, 자영업하면 더 빨리 망한다' 고 신랄하게 적어놓은 구절이 떠오르는데, 실제로 자영업을 하는 가게들의 흥망성쇠 주기가 이 방면에서 둔감한 편인 내게도 더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 주기는 소위 '땅값 비싼' 번화가에 가면 눈이 돌아갈 정도다. 홍대 같은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내가 가본 음식점 중 지금까지 영업하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굴라시 전문점이었던 G&B, 드물게 저렴한 밥집이었던 박리식당, 일본식 카레 전문점이었던 사토시카레는 모두 문을 닫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한 상태인데, 이 때문에 홍대 쪽은 갈 때마다 인파에 치이면서도 뭔가 삭막함이 같이 느껴진다.
저렇게 세 집이 사라진 것을 보고 허탈하게 돌아서야 하나 싶었지만, 어쨌든 3월 서코 예매권을 사고 나온 배고픈 이는 뭔가를 먹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박리식당 근처에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던 곳을 들어가 보기로 했다.
철판인지 뭔지로 투박하게 만든 간판이 인상적이었는데, 닭곰탕과 닭칼국수 두 가지 메뉴만 파는 집이었다. 가게 이름은 다락투라고 되어 있는데, 다락원이 있는지 다락쓰리가 있는 지는 모르겠다.
가게 내부는 일체의 장식이 없이 매우 단조롭게 꾸며져 있어서, 까딱하면 무슨 함바집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미니멀리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단 닭곰탕에 눈길이 갔기 때문에 보통으로 할까 특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특으로 주문했다.
주문 시 바로 되는 메뉴라고 되어 있었고, 실제로도 시킨 지 얼마 안되어 이렇게 밑반찬까지 포함해 한 상이 차려졌다. 밑반찬은 배추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생양파로 단촐하게 나왔다.
파가 잔뜩 올라와 있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특인 만큼 고기 양은 꽤 되는 편이었다. 다만 을지로 쪽의 황평집이나 호반집 같은 곳과 비교하면 좀 적은 것도 사실이었다.
먹는 게 차려지면 눈에 뵈는 게 없는 식탐은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했다. 바로 밥 한 공기를 때려넣어 말아버린 것이었는데, 밥의 양과 국물 양을 가늠하지 못해 넘치기 일보직전 상태가 되었다. 급하게 국물을 들이키며 퉁쳤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나는 불과 1주일 뒤 광주에서 비슷한 실수를 했다.
을지로 쪽의 두 집보다는 조금 감흥이 덜하기는 했지만, 이 곳 닭곰탕도 기본적으로는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다대기를 취향껏 먹을 수 있게 따로 내오는 게 아니라 미리 넣어서 내오는 탓에, 담백하게 먹고 싶을 때 아무 얘기를 안하면 좀 난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생양파에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쌈장이 아니라 고추장이 곁들여졌는데, 좀 특이한 조합 같았지만 찍어먹어 보니 그런 대로 어울렸다.
허기도 진 상태였기 때문인지,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그리고 다음에는 닭칼국수를 먹어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방문은 11일이 지나고서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켜본 결과는 이랬다.
이번에도 역시 다대기가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스타일이었고, 칼국수라 그런지 김 고명과...그리고 애호박이 들어 있었다. 물론 단호박과 달리 애호박은 어느 정도 먹기는 하지만 그리 즐기지는 않았기 때문에, 상을 받은 순간 잠시 굳어 있다가 젓가락을 들었다.
애호박을 걷어내 버릴까 하다가, 시험 삼아 먹어 보고는 그래도 부드럽구나 하면서 잘 섞어서 한 젓가락 뜨기 시작했다.
맛은 닭곰탕의 그것과 기본적으로는 비슷했지만, 아무래도 밥 대신 국수, 그것도 쉬 풀어지는 칼국수가 들어가니 국물이 좀 더 걸쭉한 느낌이었다. 일단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애호박이 좀 부담스러운 만큼 재방문을 하게 되면 닭곰탕에 올인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애호박 때문이 아니더라도 국수보다는 밥이 낫다는 개인적인 취향도 있고 하니까.
애호박 때문에 좀 난해하기는(???) 했지만, 이것도 역시 깨끗이 비웠다. 비록 을지로 쪽의 두 노포에 버금가는 포스는 없지만, 이미 대학가보다 유흥가 분위기가 잠식하고 있는 홍대 바닥에서 여전히 소박한 밥집 분위기를 유지하는 몇 안되는 곳이라 가끔 닭곰탕이 땡기면 갈 만한 곳으로 여겨진다. 다만 요즘 홍대 쪽 가면 땡기는게 닭곰탕이 아니라 일본식 라멘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런 점에서, 예전에 갔던 곳을 오랜만에 찾았을 때와 원래 가려던 곳이 너무 붐벼서 꿩 대신 닭으로 찾아간 곳 두 군데를 한 번에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도 마찬가지고. 다만 이곳저곳에서 이것저것 먹은 것도 묶어서 정리해야 하니 어느 것을 먼저 다룰 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