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Title](https://tistory1.daumcdn.net/tistory/297605/skin/images/icon_post_title.gif)
어떻게든 피곤함은 감수해야 했는데, 결국 이 모든 것을 토요일 하루에 해치우기로 결심한 게 그 주의 목요일이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빠른 시간 안에 가려면 KTX 만한 교통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난생 처음 저 고속열차를 '제대로' 타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코믹월드를 거의 개장 직후에 가서 15시 안으로 다 돌아본 뒤, 바로 서울역으로 직행해 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다소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개장 후 약 20분 뒤에 SETEC에 도착했고, 바로 들어가서 관람을 시작했다. 물론 이런 일정에 예매권은 필수였는데, 다만 빨리 들어가도 무작정 좋은 게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서울 외 지역에서 오는 많은 부스 참가자들이 동아리 입장 시간이 너무 이르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부스가 아예 비어 있거나 막 도착해 부스를 만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일단 판매하고 있는 곳 위주로 쭉 돌기 시작했다. 미리 선입금 예약한 것도 있었고, 예약을 받지 않아 현장에서 바로 사야 하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날 구입 품목 중 두 가지를 빼면 모두 한 가지 작품의 2차 창작이라는 것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러브라이브!'.
사실 막말로 현실 세계 아이돌도 성별 관계 없이 안빠는 내가 그것도 가상 아이돌 프로젝트에 이렇게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이 작품 이전에 이 영역의 본좌급이었던 아이돌 마스터도 대충은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것 만큼의 흡인력은 느낄 수 없었다. 물론 러브라이브! 자체도 애니메이션 2기에서 발생한 미국 드라마 '글리' 의 표절 논란 때문에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어서 무턱대고 찬양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지금도 내 입장은 다소 어정쩡한 중간자 정도다.
일단 순서대로 구입한 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CHOCO CAKE (1관 G29): 러브라이브! 2인 합동 일러스트북 (5000\)
kibi와 sui 두 작가의 합동 서클 CHOCO CAKE에서 내놓은 일러스트북. 첫 구입 품목 부터가 사실상 예비 럽라빠 인증이었는데, 사실 이 서클은 작년(2013)에도 두 권의 합동 일러스트북을 낸 바 있었지만 그 때까지도 별 관심이 없었다가 이번에야 지갑을 열게 되었다.
mystique gem (1관 G47): 러브라이브! 3인 합동 일러스트북 'Summer Festa' (5000\)
피료, 코코립, 에스피 세 작가의 합동 일러스트북. 두 번째 품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의 경우 에스피라는 작가의 그림체가 막연하게 낯익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2011년에 귀국 후 처음 찾아간 12월 서코에서 창작 일러스트북을 낸 작가였다.
이렇게 1관을 모두 돌아보고 구입까지 마친 뒤 3관을 돌았는데, 보통 SETEC 행사에서는 1관에서 산 게 많았다면 3관은 그냥 둘러보는 정도이거나 혹은 그 반대이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비등비등했다.
망르의 연금술 연구실 (3관 N51): 창작 일러스트북 'Sweet Flower Girls*' (10000\)
5월 서코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망가진 르망의 개인 일러스트북. 그 때 책 가격이 7000원이라 좀 망설였다고 썼지만 이번에는 거기에 3000원 더 붙은 10000원이 되어 있었다. 물론 판형이 좀 크고 올컬러라 그렇다고는 했지만 역시 개인적인 느낌은 가격이 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지난 책과 달리 판권물 일러스트가 많았고, 해당 저작권 소유자 혹은 회사/단체의 요구였는 지 몇몇 그림은 해상도가 좀 낮게 인쇄되어 있어서 의문스러웠다. 인쇄의 실수인가 하고 샘플이나 다른 책을 봤지만 모두 똑같아서, 작가가 공개적으로 이유가 뭔 지 밝혀줬으면 했다. 물론 행사장에서 직접 물을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에 쫓기며 관람했기 때문에 그냥 관뒀다.
으후루꾸꾸후으으후루꾸꾸후으 (3관 N03): 창작 회지 'Lemon Shower' (5000\)
이번 행사의 유일한 중복 구입 품목. 중복 구입을 했다는 건 기억력이 나빠져서...는 아니고, 소장용으로 하나 더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3회 케이크 스퀘어 때 구입한 것이었는데, 언제 재참가할 지도 몰라서 거의 반쯤 잊고 있었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이 날 운이 얼마나 좋았는 지를 반증하는 사례였는데, 그림이 워낙 내 취향이고 오리지널 스토리임에도 그 개달달함(...) 때문에 재구입했다. 지금까지 소장을 목적으로 복수 구입한 회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만큼,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 지는 더 안써도 될 것 같다.
Crossroad (3관 J07): 러브라이브! 일러스트 앤솔로지 'Summer Live!' (8000\)
총 20명의 작가가 참가한 앤솔로지 일러스트북. 참가자 중에는 위에 언급한 망가진 르망도 있었고, 그 외에도 소위 '존잘러' 들이 대부분이라 미리 선입금 예약한 뒤 받아왔다. 이로서 러브라이브! 관련 물품은 세 개째였는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Cat or fish? (3관 I05&06): 러브라이브! 패러디 회지 'Love Revolution21' (3000\)
마침내 페이트 회지를 팔아치운 로리꾼 화백은 약속대로 이번 행사에 러브라이브! 신간을 들고 나왔다. 물론 작가의 그림체 특성상 위의 일러스트북들에서 느껴지는 색기나 귀여움 같은 것보다 개그 위주로 풀어나갔는데, 주된 개그는 역시 우미의 카오게이나 노조미의 돼조미(...) 네타 등이었다. 에리의 허세 혹은 졸렬함(...)이나 패왕 호노카 같은 네타도 더 다뤘으면 했지만, 김성모 개그를 비롯해 가볍고 유쾌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 장소에서도 부담없이 볼 수 있는(?) 회지였다.
결국 이번 서코는 러브라이브! 로 시작해 러브라이브! 로 끝난 셈이 되었다. 이렇게 모든 부스 탐방과 물품 구입을 마친 뒤 의외로 여유가 있었는데, 다만 이후 일정이 저녁을 걸러야 할 정도로 빡빡했기 때문에 점심까지 걸렀다가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점심을 좀 제대로 먹기 위해 14시 쯤 SETEC을 빠져나왔다.
물론 식사 때문에 멀리 이동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대치역 근처 은마아파트 상가의 지하에 있는 할아버지 돈까스로 갔다. 이 날은 오랜만에 그 '할아버지' 주방장께서 오셔서 일을 하고 계셨다. 거의 90대이실 텐데 상당히 정정해 보이셨다.
난생 처음 타보는 KTX. 고속열차 체험도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제대로 해봤기 때문에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꽤 기대되었다. 실제로 금천구청 밑으로 접어들며 상당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16시에 서울역을 출발한 뒤 동대구역에 닿기 까지 2시간도 채 안걸리는 것을 보고는 그 빠름을 체험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빠름을 위해 지불한 돈은 상당했는데, 역방향 좌석으로 구입했지만 그 마저도 4만원 좀 넘는 정도라 현재 재정 상태로는 고속버스 마냥 신나게 타고 다니기 힘들다.
바로 지하철을 타고 동촌역으로 간 뒤, 거기서 공연장인 아양아트센터 홈페이지에 나온 대로 15분 정도 걸린다는 길을 찾아가야 했다. 사실 아양로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는 게 편하다고 되어 있기는 했지만, 서울에서 오면서 맛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동촌역에서 걸어가는 것도 그리 멀고 오래 걸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대로 된 약도도 없이 막연하게 설명된 경로만 메모장에 복붙한 뒤 행한 상당히 무모한 짓이었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헤매지 않고 도착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꽤 신기했다. 물론 미리 지도를 보고 갔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는데, 이 날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매표소가 굳게 닫혀 있어서 공연장 로비에서 표를 구입하는 줄 알았는데, 표 값이 얼마냐고 묻자 전석 무료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공연은 19시부터 시작됐고, 출연 밴드는 남경윤 쿼텟과 필윤 그룹, 찰리정 퀸텟 세 팀이었다. 초대권을 돌릴 정도면 얼마나 사람이 적어서 그럴 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내가 본 바로는 2층은 모르겠지만 1층은 거의 80%는 채울 정도의 관객 동원력을 볼 수 있었다. 각 구마다 공연장을 갖추고 있는 도시라 그런 지 무료던 유료던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이 꽤 많다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남경윤 쿼텟의 연주부터 시선을 뗄 수 없었는데, 특히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대 재즈 베이스 교수라는 비톨트 레크가 멤버로 협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한국 재즈 베이시스트들은 손으로 줄을 뜯는 피치카토 주법을 주로 쓰고 활로 켜는 아르코 주법은 부수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대부분의 곡은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했지만 자신의 창작곡 한 곡의 인트로에서는 아르코 주법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주법만 바뀐 것도 아니었고, 브리지 근처에서 활을 켜는 술 폰티첼로나 두 현을 같이 켜는 더블 스토핑, 폭넓은 글리산도 등 마치 현대음악에서 볼 법한 꽤 전위적인 연주라서 학구적인 관심을 자극했다. 필윤 그룹이야 거의 그루피 수준으로 쫓아다니고 있으니 더 이상의 말이 必要韓紙? 였는데, 다만 사운드 체킹이 제대로 되지 않아 베이스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공연이 잠시 지연되기도 했다.
원래 이런 공연에서는 미리 사운드 세팅을 끝마치고 공연에 임하는 첫 번째 밴드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데, 물론 다음 밴드들도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착실하게 세팅이 되어야 했다는 점에서 좀 아쉬웠다. 공연 중에도 피아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고 색소폰이 상대적으로 음량이 적게 세팅된 것 역시 아쉬움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밴드인 찰리 정 밴드의 경우 처음으로 듣는 블루스 밴드의 연주라는 점에서 흥미롭긴 했지만, 공연 시간이 다른 밴드에 비하면 상당히 긴 편이었고 연주곡들의 분위기도 정적이고 느린 편이라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세 밴드 모두에게 공평한 연주 시간이 주어지도록 코디했어야 하지만, 이것 역시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여러 아쉬움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공연장에서 보는 재즈의 흡인력이라던가 관객들의 상당히 적극적인 반응 등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인상이 오래 남을 것 같다. 게다가 공짜로 봤으니 금전적 아쉬움 같은 것도 별로 느낄 수 없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공연이 끝난 뒤, 이제 대구에서 하루 더 보내고 돌아갈 지 아니면 서울로 바로 갈 지를 결정해야 했다. 전자에 마음이 많이 움직이기도 했지만, 일요일에 다른 걸 하자고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결국 바로 올라가기로 했다.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탈 까 생각하고 있을 때 필윤 그룹의 색소포니스트께서 '나도 바로 서울로 올라가니 내 차를 타고 가라' 고 제안해 주셔서 그대로 따랐다. 이렇게 해서 올 때 차비 역시 굳힐 수 있었다.
물론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적으로 이미 일요일이기는 했지만, 1시 반 정도였고 집에서도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지방 간다던 놈이 벌써 올라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 이렇게 해서 참 다양한 걸 즐긴 하루가 끝났다.
요 근래 가장 운수 좋은 날이었는데, 물론 나머지 나날도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날의 다양한 기억이 오래 남았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잡다하게 글을 남겼다. 이제 다시 음반과 처묵 등에 대해 쓰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둘 중 어느 걸 쓸 지는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