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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잡설록 (공지 필독!!!)
by 머나먼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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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입시 때 가르쳐준 레슨 선생님-미국 유학 1년차-이 두 번째로 귀국하신다고 한다. 토요일에 회식이 있는데, 솔직히 가기가 꽤 뻘쭘하다.

레슨 때 같이 배운 학생들 중 그나마 마음을 터놓고 지낸 사람은 권 모군 뿐으로, 지금은 군 복무중이라 당연히 못 오니 가서 밥이나 편히 먹고 올지도 미지수다.

권 모군은 밀림닷컴에 'takeo!' 라는 예명으로 자작곡을 몇 편 올려 놓았는데, 그 중 'Rush' 는 나의 첫 백보컬 참가작이다. 메탈 분위기의 곡이라 낮게 깔리는 그로울링 보이스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선정되었는데, 대부분 곤히 자고 있을 새벽에, 그것도 아파트에서 수 차례의 테이크를 고래고래 소리치며 녹음하던 그 때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마 나를 오프라인에서 본다면 뭔가 꽉 막혔다거나, 아니면 안절부절하는 정서불안 기색이 있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빈약한 친구 관계가 입증하듯,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나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 상에서는 이렇게 할 말은 하고 살지만,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사람 대하는 것이 어렵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내온 '진정한 친구' 는 두 명 뿐이고, 그나마 한 명은 일본에서 살고 있는 데다가 5년이 다 돼가도록 연락도 못하고 있다.

남들과는 좀 다른, 특이한 직업인 음악을 위해서는 물론 원만한 인간 관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 지주 베토벤의 나쁜 성격만 닮았는지 어쨌는지, 일단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는 의심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약점이나 단점을 캐내려고 한다.

이러한 타산이 맞아 떨어지고 나서야 상대방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지금까지의 인간 관계였다. 물론 양면성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러한 '평가 작업' 때문에 오히려 내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이 요즘 느낌이다.

인간 관계의 개선, 그야말로 나의 인생 공부에 있어서 가장 큰 과제인 것 같다.

(네이버 블로그, 200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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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승전국이 패전국 다구리친다' 라는 시각도 있겠지만, 2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단죄는 공소 시효도 없이 굉장히 빡세게 진행되고 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미국에서 78세의 독일계 이민이 악명높은 오스트리아 마우타우젠 집단수용소의 경비원으로 일했던 사실이 발각돼서 국외 추방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마우타우젠은 수도 빈(Wien)과 린츠(Linz)의 중간 지점에 있었고, 거대한 채석장이 있어서 유태인들을 비롯한 수용자들이 하루 12시간의 중노동을 당했던 곳이다. 이미 쇠약해진 수용자들은 가스실로 보낼 필요도 없이 채석장의 낭떠러지로 떠밀어 추락사시켰고, 이러한 만행은 1945년 소련군이 이 수용소를 해방시킬 때까지 계속되었다.

2000년에는 그 비극의 장소에서 빈 필(Wiener Philharmoniker)이 주축이 되어 추모 음악회를 가졌는데, 이 추모 음악회는 빈 필 단원들이 전원 공무원임에도 이루어져 화제가 되었다. 지금도 집권 중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외르크 하이더라는 일종의 극우 성향 똘추가 막 권좌에 올라 인종 차별 발언을 하면서 큰 물의를 빚고 있었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일해야 하는 공무원들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정반대의 '추모음악회' 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빈 필이 자주 운영 단체라 가능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항명' 때문에 그 동안 꾸준히 참석해 온 오스트리아 관료들이 음악회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오스트리아 정부는 내내 비난을 면치 못했다.

독일과 한국을 비교해 보자면 상당한 무리가 따르겠지만, 한국은 솔직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독일의 나치 전범 혹은 용의자들은 왜곡되고 뒤틀리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독일인임을 자긍하고 있던 녀석들이었고, 한국의 친일 부역자들의 경우 오히려 점령국에 혼을 빼앗겨 버린 '사대 똘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홍난파의 감춰졌던 친일 전력을 드러내 '오직 한민족을 위했던 음악인' 이라는 신화를 깨부수기까지 무려 5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도 국내 모 사립 대학교는 '난파음악관' 을 운영 중이고 그의 친일 행적을 은폐한 전기가 아직도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실정이기는 하지만. 어두운 과거를 '잊어버리자' 는 심리 때문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과거는 잊혀지지 않는다. '용서' 는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말이다. 용서는 커녕 그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왜곡과 미화가 판치는 것이 요즘 한국의 모습이다. 위의 두 사례를 한국에서 기대해 보려면 앞으로도 몇십 년이 걸릴 듯 하다.

(네이버 블로그, 200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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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대갈장군 비만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나는 별로 클래식 듣게 생기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순정만화를 즐겨 볼 사람같이 생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게 '나는 남들과 다르다' 라는 넥스트 노래 제목을 일종의 인생 신조로 정립해준 Fireegg Friend 여 모군의 영향은 정말 대단했다.

남들이 슬램덩크, 드래곤볼 등을 보고 있을 때 나는 그가 골라준 야마자키 타카코, 히가와 쿄코, 박무직 등의 소위 '순정계' 작가 작품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취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지금도 밖에서 만화책을 사거나, 아니면 만화책을 보거나 할 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쓰이는 것은 여전하다. 물론 이어폰의 방호벽이 하나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

사실 '순정만화' 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보이!(야마자키 타카코)라던가 후르츠 바스켓(타카야 나츠키) 같은 작품들은 나름대로의 깊은 메시지가 있어서, 같은 남자들에게도 권하고 싶기도 한 작품들이다. 특히 '보이!' 의 경우, 작정하고 보면 지금까지 나온 21권까지 쭉 독파할 수 있을 정도로.

그나저나, 만화책이라면 사서 보는 스타일 때문에라도 알바 자리를 구해야 할 듯 하다. -_-

(네이버 블로그, 200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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