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사진을 찍다 보니 처묵한 것들에 대한 사진도 꽤 여럿 있는데, 그 중에는 대부분 예전에 포스팅했던 곳이 있어서 독립된 포스팅으로 올리기 뭣한 것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우기도 아까워서-저퀄짤이 뭐가 아깝겠냐마는-, 그냥 별 두서없이 마구 올려대보기로 했다.
3월 중순에 외대 근처 '버드나무집' 에 오랜만에 들러 먹은 머리국밥 한 그릇. 여전히 푸짐한 양을 자랑하는 국밥 한 상이었다. 이 때는 특별히 따로 담근 것인지 생풋고추가 아닌 풋고추 장아찌가 같이 나왔고. 다만 장아찌 전반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고, 약오른 풋고추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손대지는 못했다.
5월 중순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근처의 '유진식당' 에 찾아가서 먹은 돼지수육 소짜 한 접시와 돼지머리국밥. 그 새 가격이 올라서 이렇게 먹으려면 6000원이 든다. 그렇다고 쳐도, 국밥만 저 가격으로 받는 집들과 비교하면 여전한 염가의 강점을 지니고 있고. 독일어학원과도 그리 멀지 않아서, 지금도 가끔 푼돈 여유가 좀 있고 돼지수육을 뱃속에서 갈망하고 있으면 종종 먹으러 가고 있다.
5월 서코 갔다가 들른 '할아버지 돈까스' 서울 본점에서 먹은 돈까스. 새송이버섯을 잘게 썰어넣은 수프와 균형잡힌 맛의 소스가 듬뿍 뿌려진 얇은 한국식 돈까스까지 늘 그대로인 맛이었다. 물론 80대 고령임에도 노익장을 자랑하시는 할아버지 요리사분께서도 자리를 지키고 계시고.
6월 초 오랜만에 방문한 외대 근처의 돈까스 전문점 '하늘푸름' 에서 먹은 피자돈까스. 여기도 마찬가지로 가격이 6000원으로 올랐지만, 그래도 이 가게만의 강점인 1회 리필은 여전히 건재했다. 하지만 불가사의하게도 피자돈까스는 한 번만 먹어도 포만감이 제대로라서, 이번에도 리필은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두 끼는 쫄쫄 굶고 와야 시도할 수 있을 듯.
본점이 서울로 옮겨온 이래, 성남 쪽 사정은 어떨까 해서 6월 말과 8월 중순에 가본 할아버지 돈까스 성남 분점에서 먹은 스페셜 메뉴와 일반 돈까스 메뉴. 돈까스와 스파게티가 같이 담겨 나오는 중간 짤방의 것이 6000원짜리 스페셜 메뉴다. 맨 밑의 돈까스는 4500원. 맛과 양에서 큰 차이도 없고, 아무래도 입지 때문인지 가격이 올라버린 서울 본점보다는 아직 싼 편이다. 하지만 서울 사는 입장에서는 오갈 때 차비 더하면 큰 차이가 없지만. lllorz
7월 중순에 먹었던 용산 '용사의 집' 의 생선까스. 이 메뉴 역시 부가세 포함해 6600원이라는 만만찮은 가격이 되었는데, 맛에 약간 변화가 있었던 돈까스와 달리 곁들임에 황도 통조림이 들어가는 것 빼면 맛이던 셋팅이건 큰 변화는 없었다.
8월 말에 용인 사는 지인 집에 놀러 갔다가 거기 근처...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거기서 몇 km 떨어져 있는 '후루룩 8·4·4' 라는 좀 기묘한 이름의 음식점에서 먹은 돈까스. 돈까스와 칼제비를 전문으로 한다는 곳인데, 깔끔하면서도 아파트 상가에서 볼 수 있는 동네 음식점 같은 소탈한 분위기였다.
돈까스는 약간 파삭하게 튀겨졌지만 꽤 괜찮은 편이었는데, 특히 독특한 맛의 소스가 그랬고. 그렇다고 아직은 난개발크리와 영 좋지 않은 대중교통 여건으로 악명높은 용인까지 다시 찾아갈 만한 배짱은 없다. lllOTL
9월 초순에 먹은 또 다른 '할아버지 돈까스'. 2007년 포스팅한 이래 계속 잠실 장미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이다. 사실 이름 빼고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지하상가의 서울 본점과 수진역 지하상가의 성남 분점 어디와도 접점이 없는 곳이기는 하지만, 80년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고색창연함 때문에 늘 뭔가 썰풀기 힘든 매력이 있다고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고.
여기도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맛이나 분위기에 큰 변화는 없었다. 밀가루 맛이 강한 수프와 좀 더 거무튀튀한 색깔의 소스, 단무지와 채썬 양배추, 삶은 마카로니, 옥수수 통조림이라는 곁들임 네 종류, 그리고 미역국이라는 셋팅도 그 때와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가장 최근인 9월 말에 먹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통닭집 겸 돈까스집에서 먹은 신메뉴. 2007년 당시 처음 포스팅했을 때 이름은 '온달호프통닭' 이었는데, 모 굽는 치킨 프랜차이즈와 계약했는지 이름을 그걸로 바꿔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돈까스와 생선까스 메뉴는 건재한데, 거기에 언제 들어왔는지 치킨까스가 추가되었다.
다만 치킨까스 단품은 이 가게 기준으로는 좀 고가인 5000원이라서, 500원 더 싼 돈까스+치킨까스 메뉴를 시켜서 맛보았다. 고기 두께는 오히려 돈까스보다 좀 더 두꺼운 편이어서 씹는 맛이 더 느껴졌는데, 치킨까스 답게(??) 소스는 양념치킨소스와 허니머스타드를 쓰고 있었다. 여력이 되면 치킨까스 단품만 먹어봐도 괜찮을 듯.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는 것 외에, 늘 변하지 않는 맛을 확인하는 것도 나름대로 회고적인 취미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미각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터라, 늘 맛을 변화시키는 것 보다는 내 마음에 맞는 맛과 분위기를 유지하는 곳이 상대적으로 가는 데 불편함이 없는 편이고.
시험이 다가오면서, 그리고 여권을 발급받고 유학에 관한 이러저러한 제반 사항들을 알아보면서 이제 한국에서 있을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고 있는 중이다. 아직 지인들로부터 추천받은 곳도 몇 군데 더 있고, 굳이 처묵하는 것 외에도 아직 이 땅에서만 할 수 있는 이러저러한 것들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고. 과연 그 중에 얼마나 더 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