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금호아트홀에서 어떤 해금 주자가 리사이틀을 한다고 해서 가 보았다. 가기 전에 교보문고에 들려서 예체능계 신간이 뭐가 들어왔나 살펴 보았는데, 한국의 유명 음악인들을 다룬 일종의 평론 선집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작자는 음악계 사람이라면 이름이라도 들어 보았을 한 원로 평론가. 하지만 그 평론가는 내가 '이름이라도 들으면' 곧바로 썩어 문드러진 표정을 짓는 사람이었다.
괜히 집었구나 하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도 나의 작곡가로서 정신적 지주인 김순남과 윤이상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고 그 쪽으로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
아니나 다를까.
김순남에 대해-월북 후 작곡한 작품들은 체제 순응적인 것들 뿐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윤이상에 대해-연구소까지 만들어진 북한에서는 그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지 않는다고 하니, 역시 그의 고향은 대한민국인 것이다.
저 '평론가' 는 80년대에 '북한 음악의 실상과 허상' 이라는 책을 통해 북한 음악을 '맹목적인 체제 선전의 음악' 이라며 비판한 바 있었지만, 2000년 조선 국립 교향악단이 서울 공연을 가진 직후에는 '북한도 민족 음악을 지키고자 하는 면이 엿보여 좋았다' 면서 카멜레온 뺨치는 변신을 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저 '평론가답지 않은 습성'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두 작곡가의 작품성은 인정한다면서도 거기에 북한을 끌어들여 물타기 하는 수준이라니. 나이 지긋한 원로이건, 혹은 새파란 어린아이건 간에 한국 음악계에서는 사고 회로가 제대로 된 인물을 찾기가 너무나 힘들다.
(네이버 블로그, 2003.12.10)
작자는 음악계 사람이라면 이름이라도 들어 보았을 한 원로 평론가. 하지만 그 평론가는 내가 '이름이라도 들으면' 곧바로 썩어 문드러진 표정을 짓는 사람이었다.
괜히 집었구나 하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도 나의 작곡가로서 정신적 지주인 김순남과 윤이상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고 그 쪽으로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
아니나 다를까.
김순남에 대해-월북 후 작곡한 작품들은 체제 순응적인 것들 뿐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윤이상에 대해-연구소까지 만들어진 북한에서는 그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지 않는다고 하니, 역시 그의 고향은 대한민국인 것이다.
저 '평론가' 는 80년대에 '북한 음악의 실상과 허상' 이라는 책을 통해 북한 음악을 '맹목적인 체제 선전의 음악' 이라며 비판한 바 있었지만, 2000년 조선 국립 교향악단이 서울 공연을 가진 직후에는 '북한도 민족 음악을 지키고자 하는 면이 엿보여 좋았다' 면서 카멜레온 뺨치는 변신을 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저 '평론가답지 않은 습성'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두 작곡가의 작품성은 인정한다면서도 거기에 북한을 끌어들여 물타기 하는 수준이라니. 나이 지긋한 원로이건, 혹은 새파란 어린아이건 간에 한국 음악계에서는 사고 회로가 제대로 된 인물을 찾기가 너무나 힘들다.
(네이버 블로그, 2003.12.10)

뭐 한국어나 알파벳으로 표기되는 나라의 홈페이지라면 문제는 없지만, 일본어 홈페이지를 즐겨찾기에 추가할 때는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꽃피곤 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동 선택' 을 해 놓아 각 국가별로 문자의 깨짐 없이 홈페이지가 떴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어 홈페이지에서는 도저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문자의 수라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해제를 시키고 즐겨찾기한 페이지들을 살펴 보았는데, 야마다 노리에('마법사에게 소중한 것' 만화판 원작자)의 일러스트 홈페이지가 없어져 있었다.
부랴부랴 구우(goo. 일본 검색 엔진)에 들어가 이리저리 서핑한 끝에 복구시켜 놓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까 없어진 줄 알았던 그 사이트는 '궰궭궻궞맦똒' 이라는 한글 외계어로 둔갑해 있었다.
교훈: 역시 땡스빌의 압박은 블루스크린으로 그치지 않는다.
(네이버 블로그, 2003.12.9)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동 선택' 을 해 놓아 각 국가별로 문자의 깨짐 없이 홈페이지가 떴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어 홈페이지에서는 도저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문자의 수라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해제를 시키고 즐겨찾기한 페이지들을 살펴 보았는데, 야마다 노리에('마법사에게 소중한 것' 만화판 원작자)의 일러스트 홈페이지가 없어져 있었다.
부랴부랴 구우(goo. 일본 검색 엔진)에 들어가 이리저리 서핑한 끝에 복구시켜 놓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까 없어진 줄 알았던 그 사이트는 '궰궭궻궞맦똒' 이라는 한글 외계어로 둔갑해 있었다.
교훈: 역시 땡스빌의 압박은 블루스크린으로 그치지 않는다.
(네이버 블로그, 2003.12.9)

어느 누가 '문화' 라는 것을 자기네 나라에 들이네 마네 할 수 있겠는가? 교황도 그렇게는 못할 거다. 심지어 어떤 종류의 탄압을 가한다고 해도 들어갈 곳에는 다 들어가는 것이 문화다. 설령 그 문화의 발생국이 자기 나라를 몇십 년간 지배하면서 폭정을 휘둘렀던 곳이라도 말이다.
나는 대략 1990년대에 정부에서 일본 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한다고 '칙령' 을 내리자마자 비웃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 당시에는 PC통신도 인터넷도 모두 원시적인 수준이라 자료 공유 같은 것도 활발하지 못했지만, 대만제 빽판 VCD와 CD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정부의 정책에 조롱이라도 하듯 일본 것을 그대로 베낀 드라마나 노래를 계속해서 폭로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어 노래' 는 수입 금지라고? 이래서 '책상 위에서 펜대나 놀리는' 녀석들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말에 문화공보부의 정식 수입 인증 딱지를 받고 일련의 일본 CD들이 들어왔는데, 용산의 모 레코드점에서 떨이로 파는 것을 운좋게 살 수 있었다. 물론 그 CD들 중에는 일본어로 된 오페라와 칸타타까지 있었고. 전임자들이 알려주지 않아서 모르는 건지, 아니면 걔네들이 똘추라서 모르는 건지.
이러한 까닭에 오히려 표절과 밀수라는 '어둠의 루트' 는 더욱 성행했고, 꼭 '어둠' 이 아니라도 나나 Fireegg Friend 여 모군처럼 일본 구매대행 회사에 몇십 만원을 바쳐가며 일본 문화상품을 구하는 사람들을 더욱 양산해준 것이다. '금주법' 이 술을 없애기는 커녕 갱을 키워서 미국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실만 봐도, 문화관광부의 일본 문화 개방 어쩌고 하는 것이 삽질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외국 문화에 되지도 않는 빗장을 걸기 전에 국내의 문화 현실이라도 간섭하지 않았다면야 아무 말 안하지만(하기야, 지원 따위는 애당초 바라지도 않았으니), 이 놈의 정부 조직이란 참 똘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짓을 골라서 해왔다. 상디는 아직도 사탕을 입에 물고 다니고, 노래는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을 못 타며, 쥬라기 공원과 자동차 수출 수익 따위를 비교하면서 문화를 육성해야 한다는 녀석이 대통령질을 해처먹고 다녔던 나라가 그럼 어느 나라인가?
내가 아는 문화관광부 장관 중 4년 이상을 채우고 물러난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걸로 안다. 문화 정책을 제대로 입안하고 실행하기에는 4년이란 시간도 사실은 부족한데 말이다. 대신에 그들은 지금도 재미없는 주말 쇼를 대신하듯 이런저런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많이 웃겨 주기 바란다.
(이 글은 10월 중순에 ExCF에 썼던 글이지만, 아직 유효한 것 같아 재탕함)
(네이버 블로그, 2003.12.8)
나는 대략 1990년대에 정부에서 일본 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한다고 '칙령' 을 내리자마자 비웃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 당시에는 PC통신도 인터넷도 모두 원시적인 수준이라 자료 공유 같은 것도 활발하지 못했지만, 대만제 빽판 VCD와 CD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정부의 정책에 조롱이라도 하듯 일본 것을 그대로 베낀 드라마나 노래를 계속해서 폭로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어 노래' 는 수입 금지라고? 이래서 '책상 위에서 펜대나 놀리는' 녀석들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말에 문화공보부의 정식 수입 인증 딱지를 받고 일련의 일본 CD들이 들어왔는데, 용산의 모 레코드점에서 떨이로 파는 것을 운좋게 살 수 있었다. 물론 그 CD들 중에는 일본어로 된 오페라와 칸타타까지 있었고. 전임자들이 알려주지 않아서 모르는 건지, 아니면 걔네들이 똘추라서 모르는 건지.
이러한 까닭에 오히려 표절과 밀수라는 '어둠의 루트' 는 더욱 성행했고, 꼭 '어둠' 이 아니라도 나나 Fireegg Friend 여 모군처럼 일본 구매대행 회사에 몇십 만원을 바쳐가며 일본 문화상품을 구하는 사람들을 더욱 양산해준 것이다. '금주법' 이 술을 없애기는 커녕 갱을 키워서 미국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실만 봐도, 문화관광부의 일본 문화 개방 어쩌고 하는 것이 삽질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외국 문화에 되지도 않는 빗장을 걸기 전에 국내의 문화 현실이라도 간섭하지 않았다면야 아무 말 안하지만(하기야, 지원 따위는 애당초 바라지도 않았으니), 이 놈의 정부 조직이란 참 똘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짓을 골라서 해왔다. 상디는 아직도 사탕을 입에 물고 다니고, 노래는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을 못 타며, 쥬라기 공원과 자동차 수출 수익 따위를 비교하면서 문화를 육성해야 한다는 녀석이 대통령질을 해처먹고 다녔던 나라가 그럼 어느 나라인가?
내가 아는 문화관광부 장관 중 4년 이상을 채우고 물러난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걸로 안다. 문화 정책을 제대로 입안하고 실행하기에는 4년이란 시간도 사실은 부족한데 말이다. 대신에 그들은 지금도 재미없는 주말 쇼를 대신하듯 이런저런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많이 웃겨 주기 바란다.
(이 글은 10월 중순에 ExCF에 썼던 글이지만, 아직 유효한 것 같아 재탕함)
(네이버 블로그, 2003.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