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우메 케이는 일본에서 동인지만 해도 10만원 선에 거래된다는 작가이고, 무한의 주인 작가인 사무라 히로아키가 대학교 만화동아리에서 그에게 연필화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물론 나는 '무한의 주인' 을 본 적도 없고, 그저 대사 몇 구절을 크라잉 넛의 '빨대맨' 에서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토우메 케이는 국내에서 매우 레어한 작가로, 카타야마 슈나 오카미 미네코 작품과 함께 단행본이 나오면 1년도 못 가 폐간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이는 인지도 뿐 아니라 한국 만화계의 기형적인 유통 구조가 낳은 것이기도 하지만.
일단 그림에 있어서는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내 취향이고, 지금 관점으로 '날림 그림' 이 내게 받아들여진 작품은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정도다. 이명진의 저 데뷰작은 신인의 혈기왕성이 그림의 미숙함을 넘어 버린 것이라 지금도 애독하고 있는 듯.
토우메 케이의 경우, 소년지의 혈기왕성함이나 순정지의 깔끔하고 단아함과도 거리가 멀다. 그림체는 그야말로 거칠고, 내용도 네거티브한 것이 많다. 하지만 그 네거티브함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솔직히 '세상은 아름다워', '그래도 희망은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며 나가자' 따위의 만화는 명작이건 졸작이건 범작이건, 너무 지겹게 봐 왔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이 남긴 뒷맛은 달디단 과자 같았고.
이틀 전 8호선 석촌역 근처의 만화책 전문 헌책방에서 지금은 절판된 두 권의 단행본을 입수할 수 있었다. '제로' 와 '우리들의 변박자'. 전자의 경우 굉장히 파괴적+도전적인 작품이었고, 후자는 상업지 데뷰작 '3평극장' 을 비롯한 초기 단편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제로' 의 경우에는 너무나 내용이 파격적이어서 그랬는지 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오히려 좀 더 자연스레 다가온 것은 '우리들의 변박자' 였다. 컴필레이션이라 그림체는 각 단편마다 들쭉날쭉하지만, 이 단편들에서는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같은 담담한 현실 세계 만화의 편린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두 권을 가지고 있는 Fireegg Friend 여 모군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단행본들이라고 귀띔해 주었는데, 일단 그 의견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의 수집광 기질과, 작가가 겪은 여러 가지 시행 착오를 볼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함에는 아마 그도 의견을 같이 할 듯.
p.s.: 그 날 같이 산 임주연의 '악마의 신부' 는 토우메 케이와 정반대의 면에서 내게 유효했다. 이렇게 정신 없는 개그와 스토리가 선보여진 순정 만화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듯 하다. 하지만 '그 시대에만 유효한' 1회성 개그의 남발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오히려 권말의 '상록수' 가 산뜻해서 의외였고.
(네이버 블로그, 2003.12.20)

서로의 사정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봉천동의 한 구직 등록업체에 찾아갔다. 단기 알바라고는 하지만, 일단 돈이 필요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태.
일단 이력서 양식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Fireegg Friend 여 모군의 알바 경력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알바 경험 작성란에 정신이 멍해졌다.
맥도날드-3년
PC방-1년(자세히는 모름)
파고다어학원-6개월
영풍문고-하루
영풍문고는 그렇다 쳐도, 거의 모든 기입란의 알바 근무일수가 3개월 이상의 장기였다. 알바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 외에도 몇 개 더 있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 외에도 수많은 단기 알바 경험도 있었다고 하고. 다른 건 몰라도 맥잡만 3년이라는 것에는 대략 정신이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치열한 알바 생활의 결과 현재 컴퓨터는 물론이고 플스2, 엑박, DVD콤보, 수많은 만화책과 DVD, 비디오를 자력갱생의 기치 아래 살 수 있었던 것이 여 모군이었다.
이제는 독립까지 생각 중인 여 모군. 그리고 알바 경력 란에 쓸 것이라고는 금년 초에 오페라 엑스트라로 이틀 공연 뛴 것이 전부인 나. 단순직이라 해도 혼자 뛰어들기가 참 뭐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벌어야 할 때이니까. 전공은 언제 쯤 살릴 수 있을지?
(네이버 블로그, 2003.12.17)
일단 이력서 양식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Fireegg Friend 여 모군의 알바 경력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알바 경험 작성란에 정신이 멍해졌다.
맥도날드-3년
PC방-1년(자세히는 모름)
파고다어학원-6개월
영풍문고-하루
영풍문고는 그렇다 쳐도, 거의 모든 기입란의 알바 근무일수가 3개월 이상의 장기였다. 알바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 외에도 몇 개 더 있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 외에도 수많은 단기 알바 경험도 있었다고 하고. 다른 건 몰라도 맥잡만 3년이라는 것에는 대략 정신이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치열한 알바 생활의 결과 현재 컴퓨터는 물론이고 플스2, 엑박, DVD콤보, 수많은 만화책과 DVD, 비디오를 자력갱생의 기치 아래 살 수 있었던 것이 여 모군이었다.
이제는 독립까지 생각 중인 여 모군. 그리고 알바 경력 란에 쓸 것이라고는 금년 초에 오페라 엑스트라로 이틀 공연 뛴 것이 전부인 나. 단순직이라 해도 혼자 뛰어들기가 참 뭐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벌어야 할 때이니까. 전공은 언제 쯤 살릴 수 있을지?
(네이버 블로그, 2003.12.17)

나는 음악을 일종의 '강요' 로 시작했고,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취미' 가 되었으며, 그리고 지금은 '전공' 이 되고 있다. 족보를 뒤져 봐도, 그리고 지금의 가족 구성원을 보아도 음악에 투신한 선조나 가족은 한 사람도 없다.
대학 4년 중 3학년 1학기 까지의 학제를 마친 상태인데도 나의 이론은 좀 많이 부실하다. 돈 벌려면 편하게 레슨이나 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응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 솔직히 '음악 듣는 것' 을 좋아하지, 음악을 쓰거나 연주하는 것에는 아직까지 재미는 커녕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러한 까닭에 지금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내가 과연 '애호가' 인가 아니면 '전공자' 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대학교는 '전공' 을 위해 다니고 있지만, 초등학교 5학년 이래 음악은 '취미' 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음악 매니아들은 '애호가' 들이다. 수천 장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다거나,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제 6번에서 최종판 해머가 몇 번이나 연주된다거나, 비틀즈의 비공식 녹음 테이크가 몇 종류나 되는가를 논하는 것은 솔직히 전문가보다는 매니아들이 더 열성적이다.
오히려 음악을 다양하게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공자' 들로, 이들은 음악을 주로 '분석' 하기 때문에 좋고 싫음이 확실히 가려지게 된다. 특히나 분석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나 드보르작 같은 작곡가들을 '너무 물러터지고 달콤한 작곡가' 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나는 '애호가' 로 시작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장르와 종류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클래식 쪽만 해도 전공자들은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는 칼린니코프(Vassily Kalinnikov), 페핑(Ernst Pepping), 마르투치(Giuseppe Martuzzi)같은 작곡가들의 작품, 중국-일본-북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든 CD까지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1996년 생일 때는 Fireegg Friend 여 모군이 사준 넥스트 라이브 콘서트 챕터(2집 투어) 테이프 두 개를 시작으로 대중음악 쪽도 듣기 시작했으며, 암울한 재수생 시절에는 수없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드럭의 크라잉 넛과 노 브레인을 시작으로 국내 펑크/하드코어 밴드의 음악에 열광하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여러 장르의 음악인들과 친분을 공유하고 있다. 80대의 원로 작곡가 조념 선생님을 비롯해 약관 30대의 작곡가 김대성씨, 지휘자 박태영씨, 사이코빌리 밴드 '명령 27호' 의 베이시스트 시드니군 등. 그리고 책꽂이에는 여러 관현악 작품의 악보들과 각종 음악가의 전기/이론서, 그리고 조니 로턴(섹스 피스톨즈와 PiL 보컬)의 욕설과 비속어로 가득찬 자서전까지 있고.
하지만 남은 대학 생활과 그리고 계획중인 유학-개인적으로는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중 한 군데 택일할 예정-은 확실히 '전공자' 혹은 '전업 음악인' 을 목표로 하는 것인 만큼, 전공자로서의 경험과 지식이 쌓여야 하는 것이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영영 '애호가' 로 남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까지의 음악 청취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나 반영이 될 지,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애호가' 와 '전공자' 어느 쪽도 버리고 싶지 않은 만큼, 앞으로는 이 둘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듯 하다.
(네이버 블로그, 2003.12.16)
대학 4년 중 3학년 1학기 까지의 학제를 마친 상태인데도 나의 이론은 좀 많이 부실하다. 돈 벌려면 편하게 레슨이나 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응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 솔직히 '음악 듣는 것' 을 좋아하지, 음악을 쓰거나 연주하는 것에는 아직까지 재미는 커녕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러한 까닭에 지금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내가 과연 '애호가' 인가 아니면 '전공자' 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대학교는 '전공' 을 위해 다니고 있지만, 초등학교 5학년 이래 음악은 '취미' 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음악 매니아들은 '애호가' 들이다. 수천 장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다거나,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제 6번에서 최종판 해머가 몇 번이나 연주된다거나, 비틀즈의 비공식 녹음 테이크가 몇 종류나 되는가를 논하는 것은 솔직히 전문가보다는 매니아들이 더 열성적이다.
오히려 음악을 다양하게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공자' 들로, 이들은 음악을 주로 '분석' 하기 때문에 좋고 싫음이 확실히 가려지게 된다. 특히나 분석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나 드보르작 같은 작곡가들을 '너무 물러터지고 달콤한 작곡가' 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나는 '애호가' 로 시작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장르와 종류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클래식 쪽만 해도 전공자들은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는 칼린니코프(Vassily Kalinnikov), 페핑(Ernst Pepping), 마르투치(Giuseppe Martuzzi)같은 작곡가들의 작품, 중국-일본-북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든 CD까지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1996년 생일 때는 Fireegg Friend 여 모군이 사준 넥스트 라이브 콘서트 챕터(2집 투어) 테이프 두 개를 시작으로 대중음악 쪽도 듣기 시작했으며, 암울한 재수생 시절에는 수없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드럭의 크라잉 넛과 노 브레인을 시작으로 국내 펑크/하드코어 밴드의 음악에 열광하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여러 장르의 음악인들과 친분을 공유하고 있다. 80대의 원로 작곡가 조념 선생님을 비롯해 약관 30대의 작곡가 김대성씨, 지휘자 박태영씨, 사이코빌리 밴드 '명령 27호' 의 베이시스트 시드니군 등. 그리고 책꽂이에는 여러 관현악 작품의 악보들과 각종 음악가의 전기/이론서, 그리고 조니 로턴(섹스 피스톨즈와 PiL 보컬)의 욕설과 비속어로 가득찬 자서전까지 있고.
하지만 남은 대학 생활과 그리고 계획중인 유학-개인적으로는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중 한 군데 택일할 예정-은 확실히 '전공자' 혹은 '전업 음악인' 을 목표로 하는 것인 만큼, 전공자로서의 경험과 지식이 쌓여야 하는 것이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영영 '애호가' 로 남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까지의 음악 청취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나 반영이 될 지,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애호가' 와 '전공자' 어느 쪽도 버리고 싶지 않은 만큼, 앞으로는 이 둘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듯 하다.
(네이버 블로그, 2003.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