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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장소가 몇 차례 옮겨갔는지 실제로 가서 본 '공연장' 의 모습은 해당 콘서트의 홈페이지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 이번이 세 번째 자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일단 매봉역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기 때문에 접근성이 딱히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이 날 공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요인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윤이상의 4중주 '영상' 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대학 후배가 작품을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배는 이미 학교 다닐 때 다른 학생들-선후배와 동기 포함-과는 상당히 차별화되는 실험적인 면모를 강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 어떤 아이디어를 들고 나와 충격과 공포를 안겨줄 지 기대했다.
지하실 문앞에서 공연비 2만원을 지불한 뒤, 신발을 벗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신발을 왜 벗는 지 궁금하다면 궁금하겠지만, 이 공연장은 무대와 청중석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자도 없고, 청중들은 마룻바닥에 걸터앉아서 공연을 보게 되어 있다. 생경하기는 했지만 이미 홈페이지에서 설명을 들은 바 있으니 딱히 충격적인 건 아니었다. 다만 공연이 오래 진행될 수록 다리가 아파오던 게 좀 거시기하기는 했지만.
프로그램이 단촐한 대신, 이 공연은 각자의 곡이 연주되기 전에 작곡자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해설하고 공연에 들어가는 일종의 렉처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연주곡 중에는 '내 작품이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라고 하면서 작곡자 자신의 곡 해설을 매우 삼갔던 쇼스타코비치처럼 해설 없이 막바로 공연에 돌입하는 이도 있었다.
첫 곡은 도쿄예대 방악과-邦樂. 일본에서는 전통음악을 이 단어로 칭한다-출신인 샤쿠하치(尺八) 연주자 쿠로다 세이쿄가 미야기 현의 한 사찰에서 전해져 오는 전통 곡인 오우슈사시(奥州薩慈)를 어느 정도 즉흥성을 띄게 재해석해서 연주한 것이었다.
사실 샤쿠하치라는 악기가 내게 완전히 생경한 것은 아니었는데, 대학 시절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샤쿠하치 주자가 초빙되어 진행된 특별 강연을 들었던 바 있다. 다만 저 강연 이후 내가 샤쿠하치 음악을 들어본 적은 없었고, 이번이 두 번째 대면이 되었다. 당시의 강연이 주로 주법이라던가 현대적 응용 방식에 대한 설명이 주가 되었다면, 이번 공연은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좀 더 '일본적인'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연주자 자신이 샤쿠하치 주자인 만큼 악기에 대해 간략하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해설을 했는데, 이 곡에 내재된 의미는 '악기와 자신을 돌본다' 이며, 과거에는 걸인들이 이 악기를 불고 다니면서 구걸을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도 덧붙였다. 또 그 전통이 이어져 곡의 절정에 달하는 순간에 연주자는 적선을 해준(=이 경우에는 음악을 들어준) 이에게 감사를 표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도 했다.
실제로 들어본 곡은 일본 전통 음악의 기본 구성 원리인 서-파-급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정적이고 때로는 처량하게도 들렸는데, 다양한 시김새라던가 음의 떨림, 숨과 소리의 강한 섞임 같은 면은 한국의 퉁소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곡의 음계라던가 진행 방식은 한국 전통음악의 그것과는 다른 편이었고, 그런 점에서 이국적인 느낌도 물씬 풍겼다.
두 번째 곡은 사사키 에리의 안개구름(層雲. 층운)이라는 오보에+첼로+피아노 3중주곡이었는데, 제목대로 층층이 쌓여 매우 가깝게 깔린 구름의 형상을 표현했고 중간부에서는 도호 재학 시절 들었다는 재독 작곡가 박영희의 강의를 상기하며 한국과 일본의 전통음악 장단을 의식했다고 해설했다. 곡의 분위기는 구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보다는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중간부에서 작곡자의 코멘트 대로 뭔가 틀이 잡힌 동적인 진행도 엿보였다.
세 번째 곡이자 1부 마지막 곡은 상술한 후배인 이의경의 '...조용히...깊어진 품으로...' 라는 곡이었는데, 이 날 연주자로 출연한 모든 이들이 '무대' 를 가득 메우고 연주했다. 박노해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했는데, 혼돈 상황과 그 속에 있는 개인의 내면을 묘사하려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반부에서는 특히 호흡에 관해 매우 세밀하게 다룬 듯 했는데, 연주자들이 악기를 잡지 않고 다양한 들숨과 날숨을 주고받다가 여러 형태의 빈 병을 불기도 하고, 곡이 소란스러워질 즈음에는 보면대에 매단 플라스틱 윈드차임을 치고 뒤흔들며 파열음을 곁들이기도 했다. 소리꾼은 그 속에서 구음을 내면서 동참하고, 후반부에는 의도한 것인지 핸드폰 벨소리와 DMB의 소리가 곁들여지면서 끝맺었다. 시쳇말로 학창 시절 보여준 '똘끼' 가 좀 더 강화된 모습이었는데, 보여지는 면모로 따지자면 2부에서 연주된 두 곡과 함께 상당히 인상적인 곡이었다.
2부의 첫 곡으로는 미야가와 신이치로의 'a small Bother for violin and composer' 라는 곡이 '연주' 되었는데, 사실 연주라는 표현 보다는 상연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일종의 음악극이었다. 작곡자의 일상적인 행위를 변형시켜서 무대화했다고 설명했는데, 대체적인 스토리나 바이올린 주자가 연주해야 할 대목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작곡자 자신과 바이올리니스트의 연기는 그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되, 즉흥성을 강하게 띄고 있었다.
그리고 딱히 고정된 대사가 없던 만큼, 언어 자체로 어필하기 보다는 마치 촌극 무대처럼 다양한 사물과 상황을 즉석에서 활용해 연기하는 모습이었고 영어와 일본어, 가끔 한국어도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청중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였다. 해프닝 측면으로 보자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음악극 풍의 공연 분위기는 바로 다음 곡으로 이어졌다.
작곡자 우메키타 나오아키는 자신의 곡인 '금지된 노래(禁じられた歌)' 에 대해 다른 이들과 달리 일체의 설명을 하지 않고 바로 '공연' 에 임했다. '무대' 중앙에는 종이컵에 담은 양초에 촛불이 밝혀져 있었고, 컵 주변으로 붉은 실이 이리저리 엉켜 있었다. 작곡자를 포함한 열 명의 '연주자' 들은 촛불 주변에 둘러앉아 악보를 펴놓고 마치 밀교의 비밀 의식 같은 분위기를 잔뜩 내면서 '연주' 를 시작했다.
아무 악기 없이 열 명의 목소리가 주가 되는 곡이었는데, 다양한 무성음과 들숨/날숨, 신음소리, 파편화된 단어의 의미없는 중얼거림 등이 계속 이어지며 마치 말싸움 하듯 격렬한 분위기로 이어지기도 하고, 마법 주문을 외우듯이 웅성이기도 하면서 진행되었다. 마지막에는 서로 잡고 있던 실을 끊어버리고 촛불을 끄는 것으로 마무리했는데, 미야가와의 곡이 구체적인 일상을 각색했다면 이 곡은 매우 추상적이면서도 청중 개개인에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다의적인 느낌을 주는 곡으로 여겨졌다.
공연의 마지막은 윤이상의 '영상' 이 장식했는데, 창작 활동 중기의 걸작 실내악 작품이라 음반으로는 여러 종류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 공연으로 듣기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간소한 편성이지만 상당히 어려운 연주 난이도의 곡이라 그랬는지 바로 전에 자작곡을 선보였던 우메키타가 지휘했는데, 최상급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열성적이고 진지하게 연주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곡 전에 공연된 온갖 전위적인 곡들을 경험한 뒤라 그런지 되레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곡으로까지 들렸는데, 초연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 연주자들도 힘들게 소화하던 곡을 이제는 갓 학생 신분을 벗어난 이들이 모여 연주하는 모습은 인간의 기교나 표현력에 아직은 정해진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아직 보수적인 취향의 감상자라면 이 날 공연에 대해 '이게 무슨 애들 장난이냐' 고 격하게 반발할 지도 모르지만, 이미 몇십 년 전에 장르는 다르지만 프리 재즈의 걸출한 색소포니스트 앨버트 에일러가 남긴 "이제 음은 중요하지 않아. 느낌이지." 는 말을 상기시키는 공연이기도 했다. 또 이 공연의 주최자 박창수씨가 공연 전과 후에 남긴 코멘트에도 나왔듯이, 이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면 처음 접했을 이 음악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예 듣지도 않고 거부하는 것과, 듣고 나서 자신의 주관을 세우고 수용 혹은 거부하는 것은 차원이 상당히 다르다. 적어도 이 날 공연을 직접 들었던 사람이라면, 현대음악의 다양한 사조 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 작품들을 공개적이든 마음 속이든 나름대로 음미하고 품평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누구든 일치하는 생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작곡이라는 것을 대학에서 전공한 만큼, 아직 늦깎이 백수이기는 하지만 작곡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인지하고 있고 또 그 활동을 위해 갖가지 음악을 경청해야 하는 입장에서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 와 함께 상당히 흥미롭고 또 귀한 기회였다. 물론 아직까지 내 귀나 취향, 스타일은 좀 보수적이라서, 과연 어떻게 해야 이 바닥에서 살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은 끝까지 남을 것 같지만.
또 청중 쪽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내 오른편에서 별로 지루한 기색도 없이 모든 곡들을 사뭇 진지하게 듣던 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취학 전의 아이들이나 초등학생들에게 현대음악을 들려주면 오히려 일반적인 고전음악보다 더 흥미로운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었다. 어른들은 다소 어렵고 난해하게 들었을 지 모르지만, 과연 그 아이에게 이 날 공연에서 연주된 음악들은 어떻게 느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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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공연도 중요했지만, 거기에 더해 나는 독일 체류 이후 오랫동안 제대로 구사할 기회를 갖지 못한 독일어를 신나게 떠벌거릴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베를린 필의 아시아 투어 프로그램 중 피에르 불레즈의 '노타시옹' 연주 때 객원 주자로 참가한 독일 피아니스트 홀거 그로쇼프(Holger Groschopp)와 만나 국내 윤이상 관련 자료를 주고 받고 풍월당과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예술자료원을 방문했는데, 그로쇼프는 국제 윤이상 협회의 회장 대리도 맡고 있다.
내가 건넨 자료에 답하기 위해서였는지, 그로쇼프는 내게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세 종류의 음반들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바로 올해 발매된 국제 윤이상 협회의 회원 전용 CD 9집이 있었다.
그로쇼프와 직접 만난 것은 저 베를린 필 공연 때가 처음이었지만, 이미 그 전부터 메일로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고 자료도 발송했기 때문에 협회의 동향 같은 것도 직접 전해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 동향은 대체로 좋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아직 협회에 베를린의 윤이상 자택 보존이라던가 더 안정적인 기금 마련 등의 현안이 쌓여 있지만 재정난으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이 음반도 원래 순탄하게 진행되었다면 작년에 나왔어야 할 물건이라고 했지만, 음원 선택과 음반화 작업 등에 난항을 겪어서 올해에 와서야 수록곡이 대폭 교체된 형태로 선보였다고 한다. 원래 계획이라면 그 동안 음반으로는 전혀 나오지 않았던 합창곡들이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사실 윤이상의 합창곡과 오페라 같은 경우에는 그 중요성에 비하면 음반이 전무한 실정이라 꽤 아쉬웠다.
물론 이 신보도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레어템인데, 수록된 순서 대로 써보려고 한다.
1. 플루트를 위한 다섯 개의 연습곡 (1974): 제1번
베른하르트 쿠리 (플루트)
국제 윤이상 협회에서는 이미 6집(4번)과 7집(3/5번)에서 저 연습곡들을 섞어 출반한 바 있었는데, 이 9집으로 전곡의 음원이 모두 갖춰지게 되었다. 물론 이전에 나온 타라 헬렌 오코너(아카디아)와 이르멜라 놀테(토로폰)의 연주를 담은 전곡반이 있지만, 각 곡마다 다른 플루트 주자들의 연주를 한데 모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1번의 경우 흔히 산조대금으로 연주하는 국악 정악의 청성자진한잎(또는 청성곡)을 많이 참고해 작곡되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국립예술자료원에는 이 곡을 플루트가 아닌 산조대금으로 연주한 음원도 존재한다.
같은 플루트를 사용한 5번과 달리 여기서는 정-동-정-(동) 식으로 곡의 흐름을 짜놓은 것으로 들리는데, 템포나 음의 움직임 변화보다는 주로 다양한 음역대에서 포르티시모 혹은 그 이상의 강한 음역을 연습하도록 하기 위한 곡으로 여겨진다. 또 마지막 대목에서는 극단적인 디미누엔도를 요구해 숨이 거의 사라진 후에도 계속 키를 조작하는 소리의 여음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고 있다.
연주를 맡은 쿠리는 오스트리아 트리벤 태생의 플루티스트로, 그라츠와 빈, 베를린에서 고트프리트 헤히틀과 볼프강 슐츠(빈 필 수석 역임), 로즈비타 슈테게에게 배웠다고 한다. 관현악단 플루티스트로는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과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경험을 쌓아왔고, 현재는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수석대행 플루티스트 겸 드레스덴 음대 강사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녹음은 수록곡 중 가장 최신의 것을 사용했는데, 2012년 10월 17일에 베를린 예술대학의 톤스튜디오 분데스알레에서 제작한 스튜디오 녹음이다.
2.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사' (1963)
한스하인츠 슈네베르거 (바이올린), 안드레아스 케르스텐 (피아노)
7집에 수록된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가락' 과 함께 초기 이력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2중주 곡인데, 역시 12음 기법을 주된 소재로 삼되 특정 음을 중심으로 다양한 셈여림과 주법, 음색을 시험하는 주요음 기법을 함께 도입했다는 점에서 초기의 실험 노선을 대표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 베른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한스하인츠 슈네베르거는 근현대음악을 위주로 상당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연주자인데, 1926년생으로 올해 87세라는 고령의 나이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고 한다. 프랑크 마르탱의 바이올린 협주곡(1952)과 버르토크 벨러의 미발표작이었던 바이올린 협주곡 1번(1958)을 세계 초연한 경력도 있고, 딱히 근현대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칼 리히터가 지휘한 뮌헨 바흐 관현악단과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을 같이 녹음한 음반도 있다.
그리고 이 '가사' 는 음반에서 두 번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이 원판이고 한 곡 건너 수록된 것은 굉장히 이색적인 버전이다. 이 원판 녹음은 1999년 11월 3일에 슈투트가르트 음대의 콘체르트잘에서 열린 연주회의 실황이라고 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의 협회반 실황들과 마찬가지로 박수 소리는 삭제되어 있다.
3. 플루트를 위한 다섯 개의 연습곡 (1974): 제2번
리암 말렛 (알토플루트)
알토플루트를 악기로 택한 연습곡 시리즈의 두 번째 곡인데, 상당히 격렬하고 강한 음색의 훈련을 위해 작곡된 1번에 비하면 이 곡은 매우 섬세한 피아니시모 혹은 그 이하의 셈여림 숙달을 위해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악기 자체의 음역도 낮은 편이고 동적인 면모도 1번이나 3번, 5번 등 홀수 곡보다는 덜한 편인데, 물론 곳곳에 멀티포닉스라던가 숨과 소리의 비율을 딱딱 맞춰 연주해야 하는 대목이 속출하는 등 손보다는 숨 조절이 매우 까다로운 곡으로 생각된다.
연주자인 말렛은 뉴질랜드 왕가레이 태생으로, 오클랜드와 프라이부르크, 베를린에서 각각 우베 그로트와 펠릭스 렝글리, 로즈비타 슈테게에게 배웠다고 되어 있다. 관현악 활동은 스웨덴의 예테보리 교향악단과 베를린 코믹 오페라(코미셰오퍼) 관현악단, 베를린 필에서 객원으로 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현재는 웰링턴의 뉴질랜드 교향악단 객원 단원 겸 독주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수록 음원은 2011년 4월 19일에 1번과 마찬가지로 베를린 예대의 톤스튜디오 분데스알레에서 제작한 스튜디오 녹음이다.
4. 바이올린, 피아노(와 첼레스타), 심발롬과 타악기를 위한 '가사' (한스하인츠 슈네베르거 편곡판 2008)
한스하인츠 슈네베르거 (바이올린), 홀거 그로쇼프 (피아노/첼레스타), 마티아스 뷔르슈 (심발롬/타악기)
이 음반에서 가장 이색적인 수록곡인데, 사실 편곡이라는 작업은 주로 현대음악 이전의 레퍼토리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작곡자가 매우 꼼꼼하게 자기 주장을 투영하는 현대음악 쪽에서는 그다지 흔치가 않다. 또 편곡을 하더라도 대개 작곡자가 직접 하기 마련이고-불레즈의 노타시옹도 원래 피아노곡 모음이었지만, 현재 그 중 다섯 곡을 작곡자가 직접 편곡했다-, 타인의 편곡이더라도 작곡자의 승인을 거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만 윤이상은 1995년에 타계했고, 그 이후에 나오는 편곡들은 물론 작곡자의 승인을 받을 래야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편곡의 진정성 같은 것이 의심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도 일단 협회를 통해 음반이 나올 정도라면 작곡자의 의지를 계승한 협회에서 승인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6집에 실린 소양음의 피아노판도 비슷하게 사후 편곡된 사례다.
슈네베르거는 이 곡을 상당히 자주 연주한 연주자로서 곡을 꼼꼼하게 분석했고, 곡에서 피아노 파트가 단순히 반주 역할에 그치지 않고 고유의 소리층을 중첩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편곡으로 재구성한 것이 이 판본인데, 바이올린 파트는 거의 그대로지만 피아노 파트의 경우 피아노 외에 첼레스타를 같이 넣고 한국의 양금과 비슷한 헝가리의 타악기 심발롬, 공과 탐탐, 차이니즈 심벌, 마림바, 트라이앵글, 박 같은 타악기를 같이 넣어 상당히 다양한 음색을 선보이고 있다.
이 편곡판은 2008년 11월 15일에 베를린 예대의 콘체르트잘 분데스알레에서 열린 공연에서 초연되었고, 여기 수록된 녹음도 그 때의 실황이다. 심발롬과 타악기를 맡은 뷔르슈는 스위스 바젤 출신의 타악 주자로, 고향과 파리에서 수학한 뒤 바젤 음악원에서 타악 강사로 활동하면서 언어와 신체 표현까지 아우르는 실험극 같은 작업에도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타악기 전반 외에도 이 녹음에서 연주한 심발롬이나 글라스하모니카 같은 이색적인 악기의 연주에도 능통하다고 되어 있는데, 슈네베르거와는 쿠르탁 죄르지의 작품을 연주할 때 만나서 편곡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타악과 심발롬 파트의 취급에 관해서도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줬다고 나와 있다.
5. 플루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5중주 (1986)
로즈비타 슈테게 (플루트), 괴츠 뤼스티크 (제1바이올린), 괴츠 하르트만 (제2바이올린), 카탈리나 맥도널드 (비올라), 클라우디아 림페르크 (첼로)
라디오 프랑스의 위촉으로 작곡된 곡으로, 수록곡 중에는 가장 후반기의 작품이다. 그 동안의 중주곡들과 달리 모데라토-아다지오-알레그로 3악장인 다악장 형식을 취하고 있고, 당시의 여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와 중기의 실험과 전위성이 다소 후퇴한 대신 좀 더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음향의 작품으로 마무리되었다. 발터-볼프강 슈파러가 작성한 속지 해설에 따르면, 어릴 적 통영에서 자라며 자주 접했던 어부들의 노동요와 항일운동으로 수감되었을 때의 힘든 기억들을 떠올리며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윤이상 플루트 작품의 단골 연주자인 슈테게와 협연한 현악 4중주 연주자들은 모두 당시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2007년에 카이저슬라우테른 남서독일 방송 관현악단과 통합되어 자르브뤼켄 카이저슬라우테른 독일 방송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개칭되었다-단원들이었다.
뤼스티크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으로 1965~68년 동안 베를린 필 단원으로 재직하다가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이반 갈라미언과 오스카 셤스키에게 배웠고, 1977~2011년 동안 자르브뤼켄 방송향/독일 방송 필의 악장을 역임했다.
베를린 출신인 하르트만은 귄터 케어와 이고르 오짐에게 바이올린과 실내악을 배웠고, 1979년에 자르브뤼켄 방송향에 제2바이올린 주자로 입단해 1989년에 제2바이올린 수석으로 승급했다. 2013년 현재도 계속 직책을 유지하면서 아르투스 4중주단 단원, 독주자 겸 지휘자로 다양하게 활동 중이라고 한다.
비올리스트 맥도널드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캐나다인 연주자로, 몬트리올과 토론토에서 각각 오토 요아힘과 로랑 페니브에게 비올라를 배우고 체코와 독일에서 유학한 뒤 밤베르크 교향악단과 헤센 방송 교향악단을 거쳐 1985년에 자르브뤼켄 방송향에 입단했고, 현재도 계속 재직 중이다.
첼리스트 림페르크는 데트몰트와 하노버에서 각각 이레네 귀델과 프리드리히-유르겐 젤하임에게 배웠고, 1985~87년에 괴팅엔 교향악단에서 수석 첼리스트로 재직했다가 1987년에 자르브뤼켄 방송향의 첼로 단원으로 옮겨가 현재까지 재임하고 있다.
수록 음원은 1987년 12월 14일에 자르브뤼켄 방송국에서 방송녹음으로 제작된 것이었는데, 적어도 이 곡의 상업반은 이전까지 음반 목록에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게 아마 세계 최초 음반 발매가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이 음반을 그로쇼프와 만나기 전에도 이미 협회에서 부쳐온 것으로 하나 갖고 있었는데, 그건 지인에게 건네줬고 이것으로 내 꺼 한 장, 또 일본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후배에게 선물로 줄 한 장을 더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배는 처음으로 찾아간 하우스 콘서트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이 공연은 상당히 유니크한 무대였기 때문에 따로 감상평을 남기려고 한다. 다음에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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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미스티레코드에서 입수한 음반은 삼성전자가 휘하에 '나이세스' 라는 레이블을 거느리고 클래식 음반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내놓은 것인데,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1994년에 당시 악단의 상주 공연장이었던 세종체육관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한 연주회 실황들 중에서 앙코르 만을 선별해 묶은 음반이다. 음반 겉에는 지휘자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데, 일단 속지에 당시 악단 상임 지휘자 원경수의 프로필이 기재된 것을 보면 모든 곡의 지휘는 원경수가 맡았다고 간주해도 될 것 같다.
앙코르만 수록한 것인 만큼, 개인적으로는 무척 성에 안차는 다악장 곡의 발췌 같은 것이 많아서 구입을 좀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중에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 라던가 볼프-페라리의 오페라 '성모의 보석' 의 간주곡 두 곡, 에네스쿠의 루마니아 광시곡 제2번,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 같이 그 곡 자체로도 즐길 수 있는 '롤리팝' 들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지갑을 열어 구입했다.
여러 공연들의 실황을 짜깁기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연주력이나 음향은 솔직히 말해 고르지 못하다. 이 때문인지, 당시 게재된 언론 보도를 보면 음반 제작을 위해 한국에서 전자음악과 엔지니어링으로 유명한 이돈응(현 서울대 교수)이 독일로 음원을 가지고 가 마스터링 작업을 해서 가능한한 음반에 어울리는 소리로 만들어 왔다고 한다.
물론 현재 정명훈이 재임하고 있으면서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내놓고 있는 음반들과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원경수의 전임자였던 정재동의 지휘로 제작된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결과물의 완성도가 어떻든 이것도 서울시향 역사에서 엄연히 존재했던 음반인 만큼, 자료 수집을 위한 의도로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음반이다.
하지만 이 음반이 발매된 지 몇 년 뒤 나이세스라는 레이블은 공중분해 되었고, 저작권도 이리저리 흩어져 이 음반의 재발매도 한참 요원해진 상태라 이렇게 가끔 중고음반점에 굴러다니는 것으로만 볼 수 있게 된 것은 여느 1980~90년대 음반들과 다를 바 없다. 서울시향 측에서 저작권을 인수해 가서 훗날 악단 창단 몇십 주년 때 박스반 합본 같은 것으로 발매한다면 좋겠지만, 문화예술 지원에 인색한 한국의 현실에서 이 바램이 이루어지려면 얼마나 걸릴 지, 아니 가능한 때가 올 지 어떨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북오프 신촌점 음반 코너를 별 생각없이 주시하다가 우연히 찾아낸 것이 위의 음반이다. 내가 이 뻘포스팅 초반에 잠깐 언급한 단어인 '국뽕' 에 매우 걸맞는 곡을 담은 것인데, 당시 한양대 작곡과 교수였던 장일남(1932-2006)의 4부작 교향시 '조용한 아침의 나라' 가 수록되어 있다.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역시 장일남이 창단한 사설 악단인 서울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이후 서울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자작자연 음반이다.
예성음향이라는 음반사는 내게 그다지 낯선 회사가 아닌데, 여기서는 이 음반 발매 후 1년 뒤에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이 수록된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첫 음반을 LP와 카세트 테이프로 선보이기도 했고 그 중 LP를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의 소재지나 현재도 존속하고 있는 지의 여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튼 CD라는 매체가 막 한국에 들어온 무렵에 나온 것인데, 물론 무려 25년이나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상당히 촌티 팍팍 나는 디자인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음반을 보고 놀란 것은 단순히 한국 작곡가의 관현악 작품을 담은 매우 초기의 CD라는 점 때문 만은 아니었는데, CD 속지에 나온 그림이 고 신동헌 화백의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동헌 화백은 생전에 클래식 애호가로도 유명했고, 만년에 이런저런 음악가의 에피소드를 담은 책을 직접 집필해 간행하기도 했다. 아마 이 음반에 그려진 그림도 그런 인연으로 맡은 것 같은데, 다만 CD에는 그림을 그린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수록곡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 돌아가자면, 이 곡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MBC에서 위촉받은 곡이라고 되어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황홀한 빛 뒤에 숨은 그림자도 많지만, 올림픽 개최라는 것 자체가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상징이라면서 신나게 자화자찬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이렇게 그것을 이리저리 치장하기 위한 문화예술 분야의 위촉도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호돌이라는 마스코트나 올림픽공원 같이 이 기회를 통해 나온 조형예술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과 달리, 이 때 나온 음악들은 그 때만 반짝 소비되고 지금은 거의 언급도 안되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사실 작곡가의 의지 보다는 이렇게 크고 작은 행사를 위해 작곡되는 '기회 음악' 은 누가 작곡해도 후대까지 살아남기 힘든 게 사실인데, 하다 못해 이 방면에서 그나마 유명한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 나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 도 완성도 면에서 계속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올림픽 개최로 한층 드높아진 콧대를 상징하듯, 이 곡도 비슷한 컨셉의 연작 교향시인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처럼 애국심을 고취하는 보수적인 국민악파 스타일 조성 음악의 예시를 따라가고 있다. 동해의 여명-한강-황금 벌판-눈덮힌 영봉 네 개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각 부분은 저마다 독립되어 있다. 한강의 경우 음반에는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합창단도 투입된다.
작곡자가 직접 쓴 해설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정말 오그라들고, 이곳 저곳에서 주모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이 상투적인 애국주의 문구로 가득하다. 하지만 해설을 무시하고 듣더라도 거슬리는 것은 또 있다. 바로 녹음 상태. 언제 어디서 누가 녹음했는 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 일단 잔향이 너무 인위적으로 잡혀 있고 소리도 스테레오 녹음임에도 입체감이 없이 너무 평면적이다. 아마 제작진이 클래식 녹음에 다소 경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소리의 양감이라던가 투명도는 어느 정도 살아있기 때문에 자기 기준을 좀 더 낮춘다면 들을 만한 소리로 쳐줄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작곡가 장일남의 만년은 그다지 명예롭지 못했다. IMF의 타격은 저 서울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사설 관현악단을 꾸려가던 장일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재정난에 대한 타개책은 모 바이올리니스트를 자기 학교 음대에 교수로 채용시켜주겠다는 미끼를 던지고 그 댓가로 2억 1000만원의 뇌물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일남은 이 뇌물 수수 건으로 2000년에 검찰에 의해 덜미를 잡히게 되었고, 여타 사학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주요 일간지와 뉴스에 일제히 이름이 오르내리는 지경까지 갔다.
법원에서 피고가 받은 뇌물을 다시 돌려주었고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했는지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했지만, 장일남은 이 뇌물 수수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오점을 경력에 남기고 말았다. 물론 '비목' 이나 '기다리는 마음' 같은 가곡들은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지만, 가곡 작곡가로서 기억하는 사람 말고도 이렇게 뇌물 수수로 남은 부정적인 인상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일단 한국 가곡이나 합창곡에 별 감흥이 없는 나로서는, 듣기 힘든 한국 작곡가의 대규모 관현악 작품을 담은 CD라는 점에서 분명히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구입했다. 가격도 겨우 3000원이었기 때문에 부담도 없었고, 이 때 아니면 언제 볼 기회가 있을 지도 알 수 없는 레어템이니까.
이렇게 해서 내가 '구입한' 웬만한 음반들에 대한 글은 다 싸질렀다. 다만 구입한 게 아니라 머나먼 독일에서 온 음악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음반들도 있기 때문에 음반 관련 포스팅은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포스팅 제목은 바뀌겠지만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