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주중은 마지막 한 주 가량 빼고 계속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 덕에 재정 상태가 꽤 호전되었기 때문에 국내외로 이것저것 또 사들일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 중 국내에서 산 것들을 각각 네 종류씩 묶어서 기록해 보려고 한다.
내가 아시아 각지의 관현악단 단원들이 헤쳐모여 식으로 만드는 비상설 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음반으로 접한 것은 폴리그램 한국 지사에서 1997년 쯤 나온 CD였다. 사실 그 때까지 내가 모은 음반은 주로 외국 연주자들의 녹음이 든 음반이었고, 지금처럼 한국 관현악단 음반들을 죽자살자 모으던 시절은 아니어서 별로 관심이 없을 뻔 했다. 다만 내가 흥미롭게 봤던 건 예술의 전당에서 녹음을 했다는 것이었다.
한국 공연장에서 녹음한 음반이 (비록 한정된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외국 메이저 레이블을 달고 나오니 꽤 '뽀대가 있어 보였고', 그래서 카세트 테이프로 구입해 들어봤다. 하지만 뭔가 루즈한 느낌이 지배적이라 들었을 때의 감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인 2001년 1월 20일에는 저 악단의 연주를 현장에서 들을 기회가 한 번 있었다. 다만 본 공연은 아니었고, 공연 직전의 무대 리허설 참관이었다.
저 기회는 내가 아시아 필의 연주라는 것을 실제로 들어본, 현재까지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리고 정명훈의 지휘를 직접 본 것도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본 공연도 못봤지만 이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 편인데, 그게 음반으로까지 나왔을 줄은 몰랐다.
ⓟ 2001 Asia Star Networks
이 날 공연된 곡은 베르디의 레퀴엠이었는데, 독창자는 나카무라 토모코(소프라노), 니시 아케미(알토), 이원준(테너), 이하라 히데토(베이스)였고 합창단은 인천과 수원, 안산의 시립합창단이 연합해 맡았다. 이 공연은 무대 리허설 때도 봤지만 MBC 스탭들이 촬영해 갔고, 이후 녹화방송 형식으로 방송된 바 있었다. 하지만 녹음이 이뤄졌는 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저 CD는 아시아 스타 네트웍스(ASN)라는 공연 기획사가 제작 주체로 기재되어 있는데, 속지 뒷쪽의 소개글을 보면 이 공연의 무대 리허설을 애호가들과 학생들에게 개방하는 아이디어도 이 기획사가 낸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다만 이 회사가 지금도 존속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는데, 속지 맨 뒷장에 기재된 홈페이지도 지금은 전혀 접속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어느 정도 기대를 갖고 들어봤는데, 이것 역시 생각했던 것 만큼의 흥이 나지 않았다. 특히 녹음이 상당히 듣기 피곤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나마 DG 스탭들이 서울까지 와서 직접 해간 1997년 녹음은 비교적 괜찮은 음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거의 퇴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포르테와 피아노의 구별이 별로 없는, 무대에 바짝 댄 마이크로 잡은 소리라는 것 만으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정명훈이 지휘한 베르디 레퀴엠 음반은 이외에도 일본의 킹레코드에서 NHK 교향악단 시리즈 앨범으로 낸 것이 또 있지만, 이건 일본 음반 전반이 그렇듯이 가격이 더럽게 비쌌던 데다가 절판 속도도 빨랐던 편이라 지금 한국에서 구하기는 상당히 힘들 걸로 보인다. 서울시향이 요즘 DG에서 내고 있는 음반 시리즈에 추가해 좀 더 공을 들여 새로 내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이미 녹음 레퍼토리와 음반 발매 계획은 얼추 잡혔으니 만약 시향이 DG와 재계약에 성공하면 어떨까.
위의 아시아 필 음반과 함께 뮤직앤시네마에서 구입한 또 다른 물건은 대전시향이 2000년 9월 2일에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에서 개최한 100회 정기연주회 실황 음반이다. 당시 대전시향 상임 지휘자는 요 전에 KBS 교향악단과 불화 끝에 물러나며 자신의 이력에 흑역사를 추가한 함신익이었는데, 100회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프로그램을 상당히 거창하게 짰다고 들었다. 그리고 또 그 상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인지, 이즘레코드에 위탁해 CD도 만든 것 같다.
ⓟ 2000? ISMM Records Co., Ltd.
이 공연은 서곡 등 짤막한 관현악곡이 아니라 브루흐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스코틀랜드 환상곡(조인상 협연)으로 시작해 레스피기의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 로 1부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소프라노 타냐 밀러, 테너 박광하, 바리톤 로버트 가드너, 합창 대전시립합창단+부산시립합창단, 어린이 합창 대전시립소년소녀합창단)로 2부를 구성했다. 카르미나 부라나 만으로 1시간은 채울 수 있을 정도여서, 각 부마다 CD 한 장씩을 할애한 더블 앨범으로 만들었다.
대전시향의 음반으로는 처음 접하는 것이었고, 또 관현악을 동반한 합창곡 연주에 일가견이 있다는 함신익이 지휘한 것이라 이것도 기대를 하고 들었다. 다만 그 인상이 어땠냐고 하면...아시아 필 음반과 비슷했다. 물론 아시아 필 음반처럼 마이크를 무대에 꼴아박듯이 대놓고 녹음한 것 만큼 조야한 소리는 아니지만, 정심화국제문화회관 자체가 그다지 음향 조건이 좋은 곳은 아니라서 소리가 다소 산만하게 흩어진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나마 1부는 좀 무난했지만, 합창단까지 가세한 2부에서는 사운드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중간중간 녹음 기기의 문제로 보이는 기계적 잡음도 들어가 있어서 좀 신경이 쓰였다. 연주력 자체도 그다지 다듬어지지 않은 기색이 역력해서, 지금과 비교하면 꽤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다만 아예 못들어 줄 만한 것도 아니고, 또 이것 외의 대전시향 음반이 없는 이상 지금으로서는 내 한국 관현악단 음반/음원 컬렉션에서 꽤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하고 싶기도 하다.
이외에도 구글링을 통해 중고음반 사이트를 몇 군데 더 알아봤는데, 그 중 뮤직메이트에서 또 희귀한 음반 두 종류를 발견하고 주문했다.
이전까지 내가 갖고 있던 수원시향/박은성 콤비의 게누인 CD는 바그너와 베를리오즈 두 종류였는데, 그나마 시향 측에서도 이제 재고가 없어서 유료회원 가입 특전으로 줄 수 있는 건 베를리오즈 한 종류 뿐이라고 했기 때문에 결국 누가 중고 매물로 내놓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중에 브루크너 교향곡 4번 음반이 눈에 띄었다.
수원시향이 게누인 음반으로 내놓은 브루크너 교향곡은 4번과 6번, 8번 세 곡인데, 6번과 8번은 교향악축제 때의 실황이고 4번은 베를리오즈/바그너 음반과 마찬가지로 성남의 분당요한성당에서 2004년 7월 19-22일 나흘 동안 스튜디오 녹음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저런 실수가 눈에 띄기 쉬운 당일치기 실황 보다는 스튜디오 녹음한 것이 더 안정성이 있어 보였는데, 그걸 마침내 구입할 수 있었다.
ⓟ 2004(?) Genuin Music Productions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브루크너 교향곡은 그렇게 자주 연주되는 편은 아니었다. 주로 브루크너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고 온 지휘자들이 종종 다루는 정도였는데, 그 지휘자들 중에는 물론 박은성도 있다. 게누인에서는 세 종류만 음반으로 제작했지만, 그 외에도 몇 곡을 더 공연했고 그 중 3번의 경우 교향악축제에서도 무대에 올렸기 때문에 KBS에서 녹화한 영상물도 방송사 측에 주문하면 DVD로 구입할 수도 있다.
이 음반도 다른 게누인 한국 지사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정남일이 제작했는데, 다른 수원시향 녹음들과 마찬가지로 음질이 약간 탁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게다가 박은성의 브루크너 스타일도 다소 무게감이 강하고 꼬장꼬장한 면이 강해서 좀 완고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브루크너 교향곡의 고정 관념인 '파이프오르간처럼 다채로운 음색의 강한 대비' 를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제작 상의 실수였는 지는 몰라도, 3악장의 경우 바이올린의 여린 트레몰로로 시작하고 그 다음에 호른의 사냥나팔풍 악구가 나와야 되는데 트레몰로를 짤라먹고 바로 호른 연주로 시작하고 있어서 꽤 이상했다. 이런 탓에 베를리오즈나 바그너 음반보다 더 인상이 좋지 않게 들렸는데, 물론 이런 걸 관대하게 봐준다면 현재까지 유일하게 한국에서 제작된 브루크너 교향곡의 스튜디오 녹음이라는 가치는 충분히 높이 살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게누인 음반 세 종류를 갖추게 되었는데, 나머지 세 종류는 또 언제 구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수원시향은 김대진 부임 후 녹음 프로젝트에 꽤 열의를 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 물론 현임 지휘자의 프로젝트도 중요하겠지만 전임 지휘자가 만들고 간 기록물의 재평가나 재발매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수원시향 음반과 함께 뮤직메이트에서 구입한 또 다른 것으로 민간 악단인 서울 클래시컬 플레이어즈의 더블 CD가 있다. 2003년에 창단된 저 악단은 박영민이 상임을 맡고 있다고 하는데, 다만 박영민이 원주시향 상임 지휘자가 된 뒤로는 별다른 공연 소식이나 동정을 알 수 없는 상태다.
이 악단은 주로 고전~초기 낭만 레퍼토리의 연주에 주력하는 소편성 악단이었는데, 가끔 객원 단원들을 충원해 그 이후 시기의 곡들도 종종 연주했던 모양이다. 2006년 3월 11일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했다는 공연도 그런 '일탈' 에 속하겠는데,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모음곡 '로미오와 줄리엣' 1~3번 중에서 18곡을 발췌해 셰익스피어 원작의 전개 순서에 맞춰 재배열한 상태로 공연했다.
이 공연은 드라마 콘서트라는 꽤 특이한 컨셉으로 진행된 것 같은데, 곡 사이사이에 연극 배우인 배상돈을 기용해 셰익스피어 원작의 스토리를 각색한 모노드라마를 낭독하도록 했다. 그리고 공연 이후 악단 측에서 자체 제작해 이듬해 아울로스 미디어를 통해 내놓은 이 실황 CD에도 모노드라마 부분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 2007 Seoul Classical Players / Aulos media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아이디어가 음반에까지 들어온 것이 별로 탐탁치 않다. 물론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 재임기에 베토벤의 '에그몬트' 나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극음악을 올릴 때 그랬던 것처럼, 연극 상연의 반주 음악을 상정하고 작곡된 극음악의 공연에서 대사를 낭독하는 것은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이 곡의 원곡은 대사가 아니라 안무와 긴밀히 연관된 발레고, 그런 점에서 이미 대사가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완성된 성격이 강하다. 거기에 대사가 중간중간 삽입되니 오히려 동어반복/선행학습 혹은 사족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도 생겼다.
그 때문에 나는 이 음반을 도무지 그대로 들을 수 없었고, 결국 대공사를 단행해야 했다. WAV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모든 나레이션을 다 잘라버리고 음악만 남겨놓은 것으로 듣고 있는데, 이렇게 하니 CD 한 장 분량으로 줄어들었다. 실제 공연장에서 들었던 사람이라면 신선했겠지만, 음악만 기대하고 그것을 또 반복 청취하려고 음반을 산 내 입장에서는 영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연주 자체는 하룻 동안의 실황을 담은 것이기는 하지만 크게 빠지거나 하지는 않은 무난한 것이었다. 다만 녹음된 음량이 비교적 작다 보니, 조용한 대목에서는 좀 답답하기도 하다. 아울로스 미디어에서 배급을 맡은 것을 보니 뭔가 공식 시판할 계획도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그 동안 이 물건을 음반 매장이나 사이트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결국 비매품으로만 풀린 것 같다.
이렇게 첫 네 장을 들어보고 뻘글을 싸제껴 봤는데, 이어서 나와 그다지 친숙하지는 않은 종교음악들을 담은 나머지 네 장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다음에 '게속'.
작년에 가장 자주 방문한 도시는 광주였는데, 사실 대구도 예전에 몇 차례 가보기는 했지만 요 근래 몇 년 동안은 가볼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참 오랜만에 재방문 계기가 만들어졌는데, 대구시민회관이 개축을 거쳐 전문 콘서트홀로 재개관하면서 개최한 아시아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이 그것이었다.
저 음악제의 마지막 공연은 울산시향이 맡았는데, 공연에 대해서는 사실 이전에 비공개 카페에 자세히 쓴 것도 있고 해서 여기서 동어반복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음악 쪽에 글을 너무 몰아쓰다 보니 식충 쪽이 좀 천대받는(??) 것 같아 일단 블로그에는 이 쪽 중심으로 끄적이려고 한다.
한국인들이 갖는 편견 중 하나가 '경상도 음식은 특색이 없다' 인 것 같다. 물론 부산과 통영에서 경험한 식도락은 편견은 편견일 뿐이라는 좋은 예시가 되겠지만, 사실 지금까지 대구에서 뭘 아주 인상적으로 먹었냐고 물어본다면 확답하기가 뭣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거기서 이런 걸 먹었다고 하면 '딴 데서도 다 먹을 수 있는 건데?' 라고 즉시 태클이 걸릴 것 같다.
물론 한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걸 왜 타지에서 먹는 지 이해가 안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갈 기회가 생긴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또 괜히 특색만 찾다가 자기 입에 도저히 맞지 않아 억지로 상을 물리거나 하는 비극(?)을 겪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니까.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 닿자마자 동대구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찾아간 곳은 중앙로역 인근의 한 중국집이었다. 야끼우동(또는 야끼짬뽕) 먹으러 간거겠지 하고 생각했다면 거기서부터 빗나간 예상인데, 일단 찾아간 곳은 여기였다.
만두, 정확히 중국식 만두에 대한 내 호기심과 선호도는 이미 포스팅했던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엿볼 수 있는데, 바로 거기서 했던 것과 똑같은 형태의 모험을 여기서 감행했다.
만두를 전문으로 한다는 화상 중국집답게 가게 앞의 음식 모형도 만두가 중심이었다. 물론 그것만 먹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처음 먹은 건 만두 맞다.
안으로 들어가 탁자에 앉은 뒤 탁자의 유리 밑에 깔아놓은 메뉴들을 우선 봤다. 물론 서울에서 이미 결정하고 왔기 때문에 답정너이기는 했지만, 뭔가 특이한 표기들이 눈에 띄었다. 교스는 흔히 교자라고 불리는 만두를 뜻하는 단어고, 군만두는 꾼만두라고 해놓은 것이 이채로웠다. 아마 경북권에서는 이게 보편적인 표현 같았는데, 중국집 외에 일반 분식집 등에서도 군만두를 꾼만두라고 표기한 것을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물론 중국집 답게 다른 면류나 밥류, 요리류 등도 있었지만, 이건 다음을 기약하고 고기만두와 찐교스를 주문했다. 좀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걸 먹으려고 서울에서 일부러 아침을 적게 먹고 고속도로 휴게소 먹거리에도 전혀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장 용량과 식욕은 충분했다.
그냥 평범한 중국집 세팅. 다만 중앙에 길쭉하게 놓인 어항은 좀 이색적이었는데, 그 쪽에 사람들이 많이 앉은 탓에 감히 폰카를 들이대지는 못했다.
먼저 전형적인 중국집 스타일 밑반찬+차와 함께 고기만두부터 나왔다.
큼직한 포자(바오쯔) 스타일의 만두가 다섯 개 나왔는데, 겉모양부터 상당히 압도적이었다. 물론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다 못먹을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미리 만들어 둔 초간장에 찍어 우적우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사람에 따라 생강향이 좀 강하다고 느끼기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딱히 무슨 맛이 튄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두부나 당면을 쓰지 않고 다진 고기와 파, 마늘, 부추 같은 채소로만 승부하는 전형적인 중국식 만두였는데, 포자만두 답게 피도 두꺼워서 확실히 이것만 먹어도 충분히 배가 부를 만했다.
그리고 고기만두를 열심히 먹고 있을 때 나온 찐교스. 상대적으로 양이 적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이건 이것 대로 물론 시킨 이유가 있었다.
피가 훨씬 얇으니 속의 맛을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것 때문인데, 고기만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육즙도 약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인천 원보나 부산 신발원 만큼 육즙이 흐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대구에서도 중국식 만두를 먹어볼 만한 곳이 있다는 증거처럼 여겨졌다.
물론 고기만두와 찐교스 둘 다 완전히 먹어치웠다. 배가 꽤 부르다는 느낌이 들어서 소화를 시키기 위해 잠시 중앙로 일대를 걸어다녔는데, 명동 같은 서울의 번화가보다 여기가 더 크고 넓은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길을 잘못 들면 초행길인 사람은 다소 헤맬 수 있는데, 나도 잠깐 그랬다.
그렇게 다시 중앙로역을 찾기 위해 걷다가 본 풍경. 대구 하면 일단 정치적으로 꽤 보수적인 동네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곳에서도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에 대한 항의 시위가 열리는 걸 보고 좀 놀랐다. 물론 시위 인원이나 규모는 좀 적고 작은 편이었는데, 어떻게 끝났는 지는 끝까지 보지 못해서 알 수는 없었다.
배가 좀 꺼진 느낌이 들자 다시 중앙로역 쪽으로 가서 경북대 북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거기도 역시 지방색이 강한 곳은 아니었지만, 중년 남자가 혼자 시도할 만한 곳도 아니었고 실제로도 처음 경험한 곳이라 기억에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다음에 '게속'.
지금까지 대략 11년 동안 이 행사를 방문하면서 느낀 건, 겨울에 열리는 행사에서 뭔가 건질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여름방학에 돌입하는 시기에도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가장 많은 돈을 '뿌리는' 것도 거의 겨울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1월 한 달을 건너뛰고 열리는 행사이자, 봄방학(초등~고등)과 겨울방학(대학)의 막바지에 열리는 행사라 그런지 이상하게 주목할 만한 신간이 많이 나왔다. 미리 봐둔 정보만으로 선입금 예약한 일러스트북만 세 권, 그냥 예약한 앤솔로지 한 권, 그리고 '이거 못사면 양재천에 몸을 던지겠다(???)' 는 심정으로 가장 먼저 들어가자마자 사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세 종류가 확보되었다.
일단 쓸 돈은 바로 전날까지 계속 일을 해 넉넉히 모아뒀으니 걱정은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일찍 가겠다는 다짐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한두 종류는 매진되겠지 하면서 약간 체념하는 기분으로 갔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지만.
이제 존잘의 최고봉에 속하는 나르닥 화백의 동인 행사 참가는 1년에 1~2회 정도로 확정되는 것 같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개인 일러스트북 세트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다른 일러북과 마찬가지로 이 행사 아니면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앞으로 구할 수 없다고 못박아둔 것이라 가장 먼저 이것부터 사러 1관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늘어선 사람들의 줄부터 상당히 비범했는데, 물론 작년에도 구입하는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이거 다음 지르러 간 개인지의 작가가 참가했을 때 이래로 두 번째로 줄을 서야 했는데, 내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20분 가량을 기다렸다. 그나마 이것도 그냥 부스열에 있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독립 부스로 옮기면서 많이 줄어든 거라고 했으니, 더 일찍 갔다면 어땠으려나.
다행히 구입에 성공했지만, 포스터의 경우 그냥 펴져있는 채로 준 탓에 '어떻게 해야 구김 없이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람막이 주머니를 뒤지다가 뭔가를 발견했는데, 일할 때 쓰다가 남은 고무줄이었다. 덕분에 포스터도 깔끔하게 둘둘 말아서 쇼핑백에 넣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후기는 안썼지만, 여동생편과 누나편 두 신간을 낸 작년 12월 행사 때도 이미 엄청난 인파를 목격했기 때문에 애초에 독립부스로 등록한 여기서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길게 늘어선 대기줄을 생각했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고, 한 8분 정도 기다리다가 구입할 수 있었다.
동네 페스타에서 이미 구입한 구간의 판형을 여동생편/누나편 수준으로 줄인 재록본이라 엄밀히 따지면 다시 구입하지 않아도 될 책이었지만, 그 당시 한정판으로만 주어진 여러 특전 그림이 포함되고 몇몇 축전 그림이 컬러로 바뀌어 실렸기 때문에 이것도 충분히 살 만한 별도의 가치가 있었다.
부스 자체는 Mca 화백의 단독 부스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트윈 부스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갑자기 판매 물품이 늘어난 건지, 아니면 다른 작가와 공동 참가하는 지 궁금했다. 그리고 개최 며칠 전 트위터를 통해 꽤 오랜만에 cocoon 화백이 자신이 원화를 맡은 소드걸스 캐릭터 일러스트북으로 같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곧바로 세 번째로 닥돌해 구입할 물건이 되었다.
사실 이 일러북의 프로토타입은 일본 코믹마켓에 출품된 적이 있다는데, 서코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참가가 미뤄졌다가 일종의 개정판 형태로 처음 한국 행사에서 선보인 것이 이 책이었다. 일본에서 출품된 것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이건 개정판이라는 이유로 문자남매 구간 합본편과 마찬가지로 바로 구입 예정 목록에 올려버렸다.
이렇게 가장 먼저 사야 할 것들을 모두 확보한 뒤에야 좀 홀가분하게 행사장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제 예약 품목만 바로바로 구입하거나 이름 대고 가져오면 됐으니까.
커뮤니티 자체에 각별한 관심은 없었지만, 참가 작가 중 계절 시리즈 창작 동인지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리리 화백이 참가한다고 해서 예약한 합동 앤솔로지. 커뮤니티의 구조와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지식은 물론 없었지만, 딱히 그게 없더라도 충분히 즐길 만한 책이었다. 다만 정작 해당 작가가 낼 예정이었던 계절 시리즈 마지막 권인 겨울편은 다음 달 케이크 스퀘어로 밀렸다는 게 함정.
선입금 예약 품목 1. 참가 작가 중 아는 사람은 노멀커플 온리전 '설레임'에서 처음 대면한 소고 화백 뿐이었지만, 표지 그림에서 느껴지는 뭔가 요염한 분위기도 있고 해서 동아리 인포에서 체크하고 예약했다. 1호라고 나온 데서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앤솔로지는 앞으로도 프로젝트 형식으로 1년에 최소 2회 가량 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선입금 예약 품목 2. "슈에무라? 그거 먹는 건가요?" 이게 동아리 홍보에서 처음 본 내 반응이었다. 뭔가 헐벗은(?) 여캐 두 명이 나오길래 프리큐어 류의 미소녀 변신물인지 게임인지 그렇게 보였지만, 구글링을 해보니 일본 화장품 브랜드라고 한다.
화장품 브랜드 관련 일러북이라는 굉장히 특이한 컨셉이었는데, 정확한 건 나도 모르지만 아마 저 브랜드의 어떤 광고에서 등장한 두 캐릭터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 나온 책이라고 한다. 값이 좀 비싼 축에 속하기는 했지만, 참가 작가가 30명이나 되고 그 중에도 소위 존잘러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고민 끝에 예약했다.
선입금 예약 품목 3. 이것도 이상소녀와 마찬가지로 참가 작가들이 다소 생소하기는 했지만, 일단 미쿠 앤솔이고 마찬가지로 섬네일만 보고 잠깐 고민하다가 예약했다. 물론 여타 앤솔들과 마찬가지로 내 취향에 맞는 그림도 있고 아닌 그림도 있고 미묘한 그림도 있었지만, 일단 취향에 맞는 그림을 노린 것이니 구입 후 후회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예정에 있던 모든 품목을 구입했는데, 다만 아직 자금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예비 후보' 들 중에서도 몇 가지 품목을 골라 구입했다.
이미 12월 서코에서 본 책이었지만, 그 때 구입을 망설였다가 이번에 와서 샀다. 사실 저 작가도 내가 독일에 체류할 때 냈던 에어 동인지 정보를 보고 직접 통판 요청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후 이런저런 국내 라이트노벨이나 게임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만화 형태의 동인지와 달리 이건 그림만을 그린 것이고, 그림체가 다소 단순해 보인다는 점이 갈등(?)의 원인이었지만 그게 딱히 결격 사유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결국 구입했다. 나중에 해당 작가가 자기 발전을 거듭해 존잘 대열에 들어갈 지도 모르니까. (여담으로, 나르닥 화백의 첫 일러스트북도 이렇게 우유부단하게 고민하다가 살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지금은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연리는 2007년에 발족한 아마추어 창작 모임인데, 지금까지 열두 종류의 일러앤솔과 한 종류의 한복 일러앤솔을 발간했다. 하지만 거의 매번 서코에 가면서도 여기서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낸 책의 권수가 많은 탓에 시리즈의 연속성을 무척 따지는 내게는 뭔가 '등골 브레이커' 가 될 것 같다는 속좁은 노파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5000원 이상의 것들을 마구 구입해대고 나니 가격 면에서 확실한 장점이 있었고, 또 주제가 어쨌든 '글로벌한' 것이다 보니 결국 호기심에 구입했다. 꽤 오래 활동하는 모임이다 보니, 참가 작가들의 실력이나 지명도가 동인계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포풍지름을 완료하나 싶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는데, 부스 참가 목록에도 없었던 곳 하나가 우연히 눈에 띄었다. 상당히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로리꾼 화백이 1관 E03 자리를 위탁구매해 부스를 차린 것이었는데, 바로 난입해 안부를 물었다. 블로그도 2012년 1월 이래 장기 휴면 상태고 다른 활동도 없었기 때문에 '이 양반 죽었나 살았나' 싶기도 했는데, 상당히 의외의 갑툭튀여서 꽤 놀랐다.
일단 새롭게 내놓은 물품들이 여럿 있었는데, 리그 오브 레전드 쿠션은 제값(5500\)을 주고 구입했다. 물론 나머지 물품은 음료수와 여타 주전부리를 공물로 바치고 대체(??)했는데, 그 동안 별다른 동인 활동 없이 지내다가 취직하라는 집안의 압력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한 1주일 정도 서울에 머물며 구직 활동을 하다가 부코 참가하러 다시 내려간다고 하는데, 3월에도 참가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에는 내가 3월 행사를 방문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꽤 오랜만에 상당한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할 수 있었다. 다만 나르닥 화백 부스에서 받은 쇼핑백 자체가 상당한 '덕스러움' 을 지니고 있던 탓에 일코를 위해서는 은엄폐가 필수였다. 다행히 가방이 등산용으로 써도 될 만큼 많이 들어가는 탓에 꾸역꾸역 밀어넣어 가져올 수 있었다. 다만 무게가 꽤 나가는 탓에 어깨가 좀 아프기는 했지만. 오마이숄더
이번 달 동인 행사는 아마 이걸로 끝날 것 같은데, 이제 남은 과제는 두 번째로 행한 독일 아마존 물품 구입과 배송대행 등으로 쌓인 카드 사용료 청산 등이다. 요즘에는 그래도 정기적으로 일이 들어오고 있고, 나름대로 자제력(???)을 발휘해 어떻게든 액수를 맞춰놓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미리 결제해 한시름 덜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동인행사 덕질과는 별도로 음반 덕질을 해야 할 물품들이 몇 개 더 생긴 게 문제다(...). 이것들도 어쨌든 사정이 되는 대로 구입할 생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