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쥬씨페스티벌이 있던 날이었지만, 자기 전에 인터넷으로 몇 가지를 검색하면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우선 이 날 아침 혹은 아점을 해결하려고 한 곳이 빨라도 10시 반에야 문을 열기 때문이었고, 집에 가져갈 선물과 공물을 먼저 구입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우선 궁전제과에 가서 이런저런 빵과 과자를 사온 뒤, 전날 자리를 봐둔 모밀집 '우래옥' 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전날 위치가 어디 있는지 찾다가 한참을 헤맨 바 있다. 그러다가 사용량이 간당간당한 데이터를 켜서 지도 앱을 검색한 뒤에야 내가 헤맨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바로 있던 자리가 이렇게 싹 밀리고 주차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수막의 설명을 따라 남동성당 건너편을 돌아 보니, GS25 편의점이 있는 골목 안쪽에서 이전한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날 저녁은 이미 대인시장 국밥으로 정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다음 날 방문하기로 미뤘다.
예전에도 경험한 바 있었지만, 전라도의 모밀 육수는 타지인 입맛으로 따지면 상당히 단맛이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음식을 매우 달게 먹는 것을 생경하게 여기기 때문에 늘 좋은 인상을 받기는 힘들지만, 일단 지역의 특색이라고 생각하고 가능한한 그 본바탕을 존중하려고 하고 있다.
거의 정오가 가까웠을 때 들어갔는데, 아직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모밀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을 때부터 나이 지긋한 손님들 위주로 계속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내가 먹던 중 주문한 사리가 좀 늦게 나오기도 했다.
식사 공간은 온돌방 위주로 되어 있지만, 테이블도 3인용과 4인용 각 하나 씩 있어서, 신발 벗기 귀찮았던 나는 그냥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차림표는 뭔가 다른 모밀집과 차이가 많이 났는데, 물론 왼쪽에 몰려 있는 모밀/우동 메뉴야 모밀집의 것으로는 적절했지만 오른쪽에는 오히려 중국집에서 볼 법한 것들이 몰려 있어서 그런 느낌이 강했다. 광주 현지의 모 블로거에 따르면, 가게 주인이 예전에 중국집 요리사를 하다가 전직했기 때문에 이렇게 모밀집+중국집의 형태로 운영 중이라고 한다.
모밀 세 종류는 이렇게 유부초밥 세 개를 곁들인 세트로도 주문이 가능했는데, 원래는 마른모밀만 먹으려고 했지만 세트 메뉴판을 보고 그걸로 먹기로 했다.
주문 후 음식을 기다리면서 찍어 본 맞은 편 주방. 처음에는 아주머니 혼자 운영하는 식당으로 생각했지만, 아마 남편으로 추정되는 분이 나중에 들어와서 같이 주방일을 했기 때문에 부부가 공동 운영하는 식당으로 생각된다.
그냥 찍어본 테이블 세팅. 특이하게 냅킨이 아니라 수저받침위생지가 꽂혀 있는 통이 눈에 띄었다.
면을 삶는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이었는지, 이렇게 유부초밥과 밑반찬, 장국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모밀면이 나오면서 세팅 완료. 다소 특이한 모양새의 그릇에 담아주던 화신모밀과 달리, 여기서는 모밀국수 하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직사각형 플라스틱 발이 달린 그릇에 담겨 나왔다.
모밀면이 풀어질 세라 바로 사진을 박고 장국에 담가 계속 입에 끌어넣었다. 역시 장국 맛은 상당히 달달한 편이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부초밥의 맛은 다소 싱겁게 느껴져서 단무지와 깍두기, 김치 등 밑반찬의 도움을 받아가며 먹었다. 면은 뚝뚝 끊기는 메밀 특유의 식감과 꼬들거림이 같이 느껴졌다.
모밀에 유부초밥까지 같이 먹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게 광주에서 먹는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끼니라고 생각하니 추가 사리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모밀이 특성상 빨리 꺼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니, 그냥 주문할 때 미리 사리도 얘기를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리고 사리 그릇에 남은 장국을 다 부어버린 뒤 깔끔하게 비워냈다. 다만 찍어먹던 장국에 메밀면의 수분이 들어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장국 맛이 좀 싱겁게 느껴졌다. 이게 신경쓰인다면 장국을 추가 주문해서 보충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이렇게 모밀로 속을 든든하게 채워놓은 뒤, 멀지 않은 문화전당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김대중컨벤션센터역으로 향했다. 다음에 '게속'.
우치공원행을 포기한 뒤 배터리가 떨어져가며 '배고파' 라는 경고음을 연발하던 스마트폰 충전도 시켜줘야 했고, 또 버스에서도 와이파이가 잡히는 신기한 경험을 했지만 개인정보 유출의 달인 KT망을 쓰는 내게는 별 상관이 없던 터라 결국 어느 PC방을 찾아가 시간을 때우니 어느 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광주에 오면 꼭 먹는 게 시장 국밥인데, 예전까지는 남광주시장 쪽으로 갔지만 이번에는 대인시장을 택했다. 금남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전통 시장인데, 다만 남광주시장과 달리 이 시장의 국밥 골목은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고 위치도 좀 시장 변두리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번 여행에서 여러 정보를 얻은 광주 현지인의 블로그 서술에 따르면 대인시장 국밥 골목은 이제 너댓 개만 남은 채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는 탄식조 위주였는데, 물론 직접 가서 확인해본 결과 갯수는 정말 그런 수준이었다. 하지만 갯수가 적어진 데 반해, 각 국밥집은 대개 식사 공간과 조리 공간을 두어 군데나 두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그 블로거가 쓴 것처럼 큰 쇠락의 이미지까지 주지는 않고 있었다.
아무튼 그 국밥집들 중에서 어딜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선일식당이라는 곳을 잡기로 했다. 전통 시장 상권 활성화 등의 명목으로 요즘 시설 현대화와 더불어 예술인들을 시장에 상주시키는 정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직접 찍지는 못했지만 여기서도 피카소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문에 그려져 있었다.
여느 국밥집과 마찬가지로 실내는 약간 어수선한 편이었는데, 단체 술손님들이 막 떠나간 뒤라서 손님은 나 외에 2인 1조 두 팀 정도로 단촐했다. 아주머니 혼자 일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일단 내가 앉을 식탁을 같이 정리한 뒤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에서 내가 고른 건 특국밥이었지만, 정작 다 먹고 계산을 하려고 했을 때는 내가 먹은 게 그냥 국밥이라고 했다. 어수선한 상을 치우면서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쨌든 그냥 국밥이라고 해도 내용물이 많이 부실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선 밑반찬이 담긴 쟁반을 받았는데, 들깨가루를 미리 넣어주는 게 아니라 취향껏 넣을 수 있도록 따로 내온 것이 눈에 띄었다. 또 특이하게 소금을 같이 줬는데, 다만 국밥 간은 새우젓으로 하는 게 취향이라 쓸 일은 없었다. (새우젓은 밥과 같이 나왔다.)
그리고 주연인 국밥 그릇이 나왔고,
공기밥과 사진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새우젓 종지까지 나와서 세팅이 완료되었다. 기본적으로 밥이 토렴되어 국밥 그릇에 같이 담기고 밥 따로 국 따로 먹으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남광주시장식과 달리, 여기서는 아예 기본이 따로국밥 스타일이었다.
대인시장 국밥이 다 그런 건지는 아직 모르지만, 여기는 남광주시장과 달리 국밥에 콩나물을 넣지 않았다. 대신 마치 부산의 돼지국밥처럼 부추를 많이 넣어주는 스타일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는 육물은 머릿고기와 곱창, 염통, 오소리감투 등 내장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남광주시장의 그것과 비슷했다.
다대기를 풀어주면서 저어 보니 꽤 양이 많아서, 특국밥이라고 착각할 만도 했다. 다만 새끼보 같은 특수 부위는 보이지 않았는데, 특국밥도 비슷한 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문제는 따로국밥 스타일이라는 차이점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밥을 말면서 생겼다. 국물 양이 많은 데도 바로 공기밥을 다 말아버리면서 국물이 흘러넘치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우선 국물을 어느 정도 들이켜 사태를 진정시키면서(...), 또 들깨가루를 적당히 넣어가며 국물의 점도도 조절하면서 천천히 국밥 그릇을 비워 나갔다.
특국밥이라고 착각하고 먹기는 했지만, 그냥 보통 국밥의 맛도 괜찮은 편이었다. 터프하고 진한 스타일의 남광주시장과 달리, 여기서 먹은 국밥 맛은 첫 인상에서 느낀 대로 좀 더 깔끔하고 담백한 편이었다. 이 지역의 시장마다 각기 국밥의 특색이 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렇게 국과 밥을 모두 비우고, 계산을 하면서 서로의 착오를 확인한 뒤 나왔다. 이제 숙박 장소를 결정해야 했는데, 원래대로라면 이 시장 근처의 모텔 하나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아예 처음 가는 곳을 택해야 하는 지, 이미 한두 번 묵어서 검증된 장소를 잡아야 하는 지를 놓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남광주시장 쪽으로 가서 예전에 묵었던 시장 근처의 모텔을 잡기로 했다.
주말이라 숙박비에 가산 요금이 붙기는 했지만, 타지보다는 저렴한 편이었고 또 예전에 묵었던 방과 똑같은 곳을 줬기 때문에 일단 만족스러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동인 행사를 보기 위한 다음 날 일정을 시작했는데, 다만 이것도 예정 보다는 좀 꼬인 상태로 시작했다. 다음에 '게속'.
올해는 연초부터 지방행이 잦아지고 있다. 1월 말에 대구, 포스팅은 안했지만 2월 말에 울산, 3월 말에는 지금 쓸 광주와 다음에 쓸 통영까지 어째 영호남 유람기 식이 되고 있는데, 원래 방랑벽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저 여행을 설명하는 공통의 키워드에는 처묵처묵이 있다.
특히 광주의 경우 그 처묵처묵의 비중이 다른 곳보다 꽤 높은 편인데, 이번에도 그 비중은 당연하게도(?) 그대로였다. 그래서 음악잡설의 비중이 의도적으로 축소되는 모양새가 되는 것도 감수하고 광주와 통영 여행기를 연달아 올리기로 했다.
이번 광주 방문은 음악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정확히 하자면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명분 상으로는 전라권 지역에서 열리는 유일한 대규모 동인 행사인 쥬씨페스티벌을 처음으로 가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행사가 열린 23일이 아닌 그 전날인 22일에 광주에 도착한 것은 물론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휴게소 먹거리도 마다하고 유스퀘어에 도착한 뒤, 내가 첨단09 버스를 타고 가장 처음 향한 곳은 광주 도시철도 금남로4가역 1번 출구 바로 지척에 있는 한 추어탕 집이었다. 물론 추어탕을 아예 안먹어본 샌님도 아니었고, 오히려 추어탕이라는 음식을 처음 접한게 남도식이라서 오히려 이쪽 스타일에 익숙하다면 익숙하다. 하지만 그걸 남도 현지에서 먹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게 이름은 무등산 혹은 뽐뿌집으로 되어 있는데, 후자의 경우 상하수도 시설이 열악했을 때 펌프로 지하수를 길어먹던 시절을 따온 거라고 했다. 물론 지금까지 그 '뽐뿌' 로 물을 길어먹지는 않지만, 일본식 조어의 쌈마이함 덕분인지 뽐뿌집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은 모양이다.
광주 현지인이 운영하는 모 식도락 블로그에서는 이 집이 연륜을 자랑하는 노포이기는 하지만, 전남도청이 무안군으로 이전한 뒤로는 손님이 상당히 줄어버렸다고 적고 있었다. 그걸 의식해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오후 2시 가까운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나 외의 손님이 없었다. 가게 내부도 어두운 편이라, 처음에는 '여기 오늘 안하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게 주인도 분명히 있었고 내 주문에도 분명히 응했기 때문에,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추어탕 하나 뿐이니, 주문을 특별히 안해도 사람 수에 맞춰서 나오는 것 같다.
의자는 다소 딱딱한 나무 의자로 통일되어 있었고, 연식도 꽤 되어 보여서 이런 면에서 꽤 꼬장꼬장한 노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어탕 한 상이 차려졌다. 흑미를 넣어 지은 밥에 밑반찬도 간소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 곳 특색이 느껴지는 것들이 여럿 있었다. 곰삭은 묵은지와 매우 부드러운 식감이라서 먹어 보고 꽤 놀랐던 동치미, 그리고 여기서 처음 먹어본 갈치속젓이었다.
이 곳 추어탕은 예전에 먹었던 그 남도 양식이라서 생경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미꾸라지를 꽤 거칠거칠하게 갈아넣은 것으로 보여서 식감은 꽤 터프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망설임 같은 거 없이 바로 밥을 떠넣고 먹기 시작했다. 상당히 오래 끓여내는지, 시래기의 식감은 매우 부드러웠다. 대신 갈아넣은 미꾸라지는 꽤 거친 맛이었는데, 뼈가 꽤 단단하게 씹힐 정도라 치아가 그다지 좋지 않은 내게는 다소 성가실 수도 있었다. 물론 일단 갈아넣은 것이라 잇새에 끼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추어의 거친 식감 뿐 아니라 국물 맛 자체도 된장의 강한 내음이 지배적이라 진짜 옛스러운 맛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여기에 처음 먹어보는 갈치속젓의 독특한 맛이 더해져서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풍겨나온 것 같다. 사실 광주 여행 직전에 굴전을 잘못 먹었다가 체했기 때문에 강한 내음이 느껴지는 해산물은 자제하자고 생각했는데, 저 젓갈도 내음 자체는 강했지만 그렇게 역하다는 느낌까지 들지는 않았다.
이렇게 꽤 낯설고 옛스럽기는 했지만, 거부감 보다는 흥미로움이 든 한 상을 비워냈다. 이 집을 먼저 포스팅했던 그 광주 블로거의 말처럼, 좀 더 오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돈을 내고 나와 근처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광주점으로 갔다.
사실 알라딘의 경우 딱히 사려고 한 게 있어서 간 건 아니었고, 그냥 뭐 있나 하고 기웃거리는 수준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웃거림 덕에 CD를 세 장이나 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게 동인 행사와 식도락 위주가 될 뻔한 여행에서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추가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 관현악단 음원 사냥에 몰두하면서도, 정작 서울시향이 도이체 그라모폰(DG)에 내고 있는 음반에 돈을 쓴 적은 없었다. 2014년 3월 현재까지 나와 있는 여섯 장의 음반 모두 지인의 것을 빌려서 들었을 뿐인데, 그러다가 '이제 내 걸로 사야 겠다' 하는 생각을 한 게 이번 달 중순 쯤이었다. 하지만 여행 경비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진짜 구입 실천은 한없이 미뤄두고 있었는데, 그게 여기서 갑툭튀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서울시향의 첫 DG 음반 외에도 몇 가지가 더 내 시선을 잡아끌었는데, 프랑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나탈리 드사이의 '보칼리제' 라는 음반의 경우 예전부터 객석의 음반평으로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구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무엇보다 구입의 동기가 된 것은 수록곡 중 말미에 있는 라인홀트 글리에르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협주곡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봄의 소리' 의 소프라노와 관현악판이었다.
글리에르의 곡은 예전에 포스팅하기도 했지만, 에르나 베르거+베를린 필+세르주 첼리비다케의 오래되고 불안정한 방송 녹음 외에 음질이 깨끗하고 원곡 악보에 충실한 새 녹음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콜로라투라 곡이다 보니 기교나 음역 처리가 완벽하다고 해도 목소리가 어두운 경우에는 별로 끌리지 않다는 개인적인 취향 문제가 있었는데, 드사이의 가창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켜 줄 정도로 깨끗하고 명료했다.
마지막으로 고른 것은 클래식이 아닌 재즈 음반이었는데, 작년에 필윤의 재즈 스토리라는 연속 공연을 빠짐없이 연속 관람했을 때도 언급했지만 첫 회에 나온 임미정 퀸텟 공연을 보러 갔을 때 3집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3집 이전의 음반들 같은 경우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거나, 나온 지 좀 돼서 이미 시중에서는 중고 밖에 찾아볼 수 없다거나 했다.
임미정의 데뷰 음반이었던 1집 'Flying' 은 후자에 속했는데, 온라인 중고 매장에서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데다가 가격대도 5000원 대로 꽤 저렴했기 때문에 이것도 결국 같이 골라서 계산대로 가져갔다. 예기치 않은 데서 돈이 나가기는 했지만, 원치 않았거나 허튼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별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이렇게 추어탕으로 여행지의 첫 끼니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예상치 못한 지름신 영접까지 했는데, 다만 그 이후에는 다소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전남권 최대의 동물원이 있다는 우치공원에 가는 것이었는데, 예전에도 느낀 거지만 광주의 시내버스 체계가 수도권 사람들 눈에는 워낙 충공깽이었고, 시내에서도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알라딘에서 시간을 꽤 많이 지체한 상황에서는 공원에 닿아도 관람 시간이 얼마 없거나 끝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I 문제로 수도권 동물원이 몽땅 휴원한 상태에서 여기서나마 동물들을 보며 힐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쉽게도 접어야 했다. 동물원 관람을 포기하고도 내 번민은 계속 이어졌는데, 어느 시장에서 저녁을 먹을 까, 또 어디 모텔을 잡아서 하룻 밤을 묵을까가 중요한 문제였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