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피곤함은 감수해야 했는데, 결국 이 모든 것을 토요일 하루에 해치우기로 결심한 게 그 주의 목요일이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빠른 시간 안에 가려면 KTX 만한 교통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난생 처음 저 고속열차를 '제대로' 타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코믹월드를 거의 개장 직후에 가서 15시 안으로 다 돌아본 뒤, 바로 서울역으로 직행해 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다소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개장 후 약 20분 뒤에 SETEC에 도착했고, 바로 들어가서 관람을 시작했다. 물론 이런 일정에 예매권은 필수였는데, 다만 빨리 들어가도 무작정 좋은 게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서울 외 지역에서 오는 많은 부스 참가자들이 동아리 입장 시간이 너무 이르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부스가 아예 비어 있거나 막 도착해 부스를 만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일단 판매하고 있는 곳 위주로 쭉 돌기 시작했다. 미리 선입금 예약한 것도 있었고, 예약을 받지 않아 현장에서 바로 사야 하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날 구입 품목 중 두 가지를 빼면 모두 한 가지 작품의 2차 창작이라는 것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러브라이브!'.
사실 막말로 현실 세계 아이돌도 성별 관계 없이 안빠는 내가 그것도 가상 아이돌 프로젝트에 이렇게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이 작품 이전에 이 영역의 본좌급이었던 아이돌 마스터도 대충은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것 만큼의 흡인력은 느낄 수 없었다. 물론 러브라이브! 자체도 애니메이션 2기에서 발생한 미국 드라마 '글리' 의 표절 논란 때문에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어서 무턱대고 찬양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지금도 내 입장은 다소 어정쩡한 중간자 정도다.
일단 순서대로 구입한 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CHOCO CAKE (1관 G29): 러브라이브! 2인 합동 일러스트북 (5000\)
kibi와 sui 두 작가의 합동 서클 CHOCO CAKE에서 내놓은 일러스트북. 첫 구입 품목 부터가 사실상 예비 럽라빠 인증이었는데, 사실 이 서클은 작년(2013)에도 두 권의 합동 일러스트북을 낸 바 있었지만 그 때까지도 별 관심이 없었다가 이번에야 지갑을 열게 되었다.
mystique gem (1관 G47): 러브라이브! 3인 합동 일러스트북 'Summer Festa' (5000\)
피료, 코코립, 에스피 세 작가의 합동 일러스트북. 두 번째 품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의 경우 에스피라는 작가의 그림체가 막연하게 낯익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2011년에 귀국 후 처음 찾아간 12월 서코에서 창작 일러스트북을 낸 작가였다.
이렇게 1관을 모두 돌아보고 구입까지 마친 뒤 3관을 돌았는데, 보통 SETEC 행사에서는 1관에서 산 게 많았다면 3관은 그냥 둘러보는 정도이거나 혹은 그 반대이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비등비등했다.
망르의 연금술 연구실 (3관 N51): 창작 일러스트북 'Sweet Flower Girls*' (10000\)
5월 서코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망가진 르망의 개인 일러스트북. 그 때 책 가격이 7000원이라 좀 망설였다고 썼지만 이번에는 거기에 3000원 더 붙은 10000원이 되어 있었다. 물론 판형이 좀 크고 올컬러라 그렇다고는 했지만 역시 개인적인 느낌은 가격이 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지난 책과 달리 판권물 일러스트가 많았고, 해당 저작권 소유자 혹은 회사/단체의 요구였는 지 몇몇 그림은 해상도가 좀 낮게 인쇄되어 있어서 의문스러웠다. 인쇄의 실수인가 하고 샘플이나 다른 책을 봤지만 모두 똑같아서, 작가가 공개적으로 이유가 뭔 지 밝혀줬으면 했다. 물론 행사장에서 직접 물을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에 쫓기며 관람했기 때문에 그냥 관뒀다.
으후루꾸꾸후으으후루꾸꾸후으 (3관 N03): 창작 회지 'Lemon Shower' (5000\)
이번 행사의 유일한 중복 구입 품목. 중복 구입을 했다는 건 기억력이 나빠져서...는 아니고, 소장용으로 하나 더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3회 케이크 스퀘어 때 구입한 것이었는데, 언제 재참가할 지도 몰라서 거의 반쯤 잊고 있었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이 날 운이 얼마나 좋았는 지를 반증하는 사례였는데, 그림이 워낙 내 취향이고 오리지널 스토리임에도 그 개달달함(...) 때문에 재구입했다. 지금까지 소장을 목적으로 복수 구입한 회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만큼,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 지는 더 안써도 될 것 같다.
Crossroad (3관 J07): 러브라이브! 일러스트 앤솔로지 'Summer Live!' (8000\)
총 20명의 작가가 참가한 앤솔로지 일러스트북. 참가자 중에는 위에 언급한 망가진 르망도 있었고, 그 외에도 소위 '존잘러' 들이 대부분이라 미리 선입금 예약한 뒤 받아왔다. 이로서 러브라이브! 관련 물품은 세 개째였는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Cat or fish? (3관 I05&06): 러브라이브! 패러디 회지 'Love Revolution21' (3000\)
마침내 페이트 회지를 팔아치운 로리꾼 화백은 약속대로 이번 행사에 러브라이브! 신간을 들고 나왔다. 물론 작가의 그림체 특성상 위의 일러스트북들에서 느껴지는 색기나 귀여움 같은 것보다 개그 위주로 풀어나갔는데, 주된 개그는 역시 우미의 카오게이나 노조미의 돼조미(...) 네타 등이었다. 에리의 허세 혹은 졸렬함(...)이나 패왕 호노카 같은 네타도 더 다뤘으면 했지만, 김성모 개그를 비롯해 가볍고 유쾌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 장소에서도 부담없이 볼 수 있는(?) 회지였다.
결국 이번 서코는 러브라이브! 로 시작해 러브라이브! 로 끝난 셈이 되었다. 이렇게 모든 부스 탐방과 물품 구입을 마친 뒤 의외로 여유가 있었는데, 다만 이후 일정이 저녁을 걸러야 할 정도로 빡빡했기 때문에 점심까지 걸렀다가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점심을 좀 제대로 먹기 위해 14시 쯤 SETEC을 빠져나왔다.
물론 식사 때문에 멀리 이동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대치역 근처 은마아파트 상가의 지하에 있는 할아버지 돈까스로 갔다. 이 날은 오랜만에 그 '할아버지' 주방장께서 오셔서 일을 하고 계셨다. 거의 90대이실 텐데 상당히 정정해 보이셨다.
먼저 따뜻한 수프로 속을 달랜 뒤,
돈까스를 받았다. 7000원이라는 좀 센 가격이었지만, 다른 곳을 갈 수도 없었던 만큼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물론 받고 나면 지체할 틈이 없다.
바로 썰고 양배추와 옥수수를 뒤섞은 뒤,
깔끔하게 비워내면 만사형통. 사실 꽤 돌아다녔기 때문에 허기진 상태여서 그런 지는 몰라도 좀 적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너무 과식해도 나머지 일정 동안 힘들 것 같아서 그냥 좀 부족한 듯하게 먹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서울역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타보는 KTX. 고속열차 체험도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제대로 해봤기 때문에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꽤 기대되었다. 실제로 금천구청 밑으로 접어들며 상당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16시에 서울역을 출발한 뒤 동대구역에 닿기 까지 2시간도 채 안걸리는 것을 보고는 그 빠름을 체험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빠름을 위해 지불한 돈은 상당했는데, 역방향 좌석으로 구입했지만 그 마저도 4만원 좀 넘는 정도라 현재 재정 상태로는 고속버스 마냥 신나게 타고 다니기 힘들다.
창가에 앉았다면 바깥 풍경을 보며 여행할 수 있었겠지만, 통로 좌석이었고 일몰 때 비치는 햇살을 싫어한 승객들이 차양막을 내린 탓에 결국 서코에서 사온 것들을 죽 훑어보며 갔다. 처음 타보는 KTX라 그랬는 지 이동 판매원이 지나갈 때 주스도 사마시며 그 순간을 즐겼는데, 물론 동대구역에 도착한 뒤로는 그 느긋함도 끝이었다.
바로 지하철을 타고 동촌역으로 간 뒤, 거기서 공연장인 아양아트센터 홈페이지에 나온 대로 15분 정도 걸린다는 길을 찾아가야 했다. 사실 아양로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는 게 편하다고 되어 있기는 했지만, 서울에서 오면서 맛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동촌역에서 걸어가는 것도 그리 멀고 오래 걸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대로 된 약도도 없이 막연하게 설명된 경로만 메모장에 복붙한 뒤 행한 상당히 무모한 짓이었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헤매지 않고 도착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꽤 신기했다. 물론 미리 지도를 보고 갔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는데, 이 날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매표소가 굳게 닫혀 있어서 공연장 로비에서 표를 구입하는 줄 알았는데, 표 값이 얼마냐고 묻자 전석 무료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리 됐는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3만원은 지불할 각오를 하고 왔기 때문에 애써 표정관리를 하면서 티켓을 받았다. 자리도 거의 바로 앞 정중앙이었고, 이렇게 클럽이 아닌 공연장에서 보는 재즈를 공짜로 즐기게 되었다.
공연은 19시부터 시작됐고, 출연 밴드는 남경윤 쿼텟과 필윤 그룹, 찰리정 퀸텟 세 팀이었다. 초대권을 돌릴 정도면 얼마나 사람이 적어서 그럴 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내가 본 바로는 2층은 모르겠지만 1층은 거의 80%는 채울 정도의 관객 동원력을 볼 수 있었다. 각 구마다 공연장을 갖추고 있는 도시라 그런 지 무료던 유료던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이 꽤 많다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남경윤 쿼텟의 연주부터 시선을 뗄 수 없었는데, 특히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대 재즈 베이스 교수라는 비톨트 레크가 멤버로 협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한국 재즈 베이시스트들은 손으로 줄을 뜯는 피치카토 주법을 주로 쓰고 활로 켜는 아르코 주법은 부수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대부분의 곡은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했지만 자신의 창작곡 한 곡의 인트로에서는 아르코 주법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주법만 바뀐 것도 아니었고, 브리지 근처에서 활을 켜는 술 폰티첼로나 두 현을 같이 켜는 더블 스토핑, 폭넓은 글리산도 등 마치 현대음악에서 볼 법한 꽤 전위적인 연주라서 학구적인 관심을 자극했다. 필윤 그룹이야 거의 그루피 수준으로 쫓아다니고 있으니 더 이상의 말이 必要韓紙? 였는데, 다만 사운드 체킹이 제대로 되지 않아 베이스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공연이 잠시 지연되기도 했다.
원래 이런 공연에서는 미리 사운드 세팅을 끝마치고 공연에 임하는 첫 번째 밴드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데, 물론 다음 밴드들도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착실하게 세팅이 되어야 했다는 점에서 좀 아쉬웠다. 공연 중에도 피아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고 색소폰이 상대적으로 음량이 적게 세팅된 것 역시 아쉬움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밴드인 찰리 정 밴드의 경우 처음으로 듣는 블루스 밴드의 연주라는 점에서 흥미롭긴 했지만, 공연 시간이 다른 밴드에 비하면 상당히 긴 편이었고 연주곡들의 분위기도 정적이고 느린 편이라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세 밴드 모두에게 공평한 연주 시간이 주어지도록 코디했어야 하지만, 이것 역시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여러 아쉬움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공연장에서 보는 재즈의 흡인력이라던가 관객들의 상당히 적극적인 반응 등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인상이 오래 남을 것 같다. 게다가 공짜로 봤으니 금전적 아쉬움 같은 것도 별로 느낄 수 없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공연이 끝난 뒤, 이제 대구에서 하루 더 보내고 돌아갈 지 아니면 서울로 바로 갈 지를 결정해야 했다. 전자에 마음이 많이 움직이기도 했지만, 일요일에 다른 걸 하자고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결국 바로 올라가기로 했다.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탈 까 생각하고 있을 때 필윤 그룹의 색소포니스트께서 '나도 바로 서울로 올라가니 내 차를 타고 가라' 고 제안해 주셔서 그대로 따랐다. 이렇게 해서 올 때 차비 역시 굳힐 수 있었다.
물론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적으로 이미 일요일이기는 했지만, 1시 반 정도였고 집에서도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지방 간다던 놈이 벌써 올라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 이렇게 해서 참 다양한 걸 즐긴 하루가 끝났다.
요 근래 가장 운수 좋은 날이었는데, 물론 나머지 나날도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날의 다양한 기억이 오래 남았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잡다하게 글을 남겼다. 이제 다시 음반과 처묵 등에 대해 쓰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둘 중 어느 걸 쓸 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굽는 고기라면 식사 보다는 안주 혹은 술을 곁들인 회식 정도가 연상되는데, 여기는 그게 아니라 식사 위주의 밥집같은 분위기라는 점이 달랐다. 어차피 여럿이서 몰려가 뭘 먹는 일도 별로 없고, 또 술도 그냥 집에서 조용히 마시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고기를 단촐한 식사 개념으로 먹을 수 있는 곳 역시 반가웠다.
메뉴를 보니 데리야키 계열 숯불구이를 중심으로 거기에 오징어볶음이나 카레를 더하거나 육쌈냉면 비슷하게 냉면에 숯불구이 고기를 곁들여 먹는 식으로 짜여져 있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노린 건 오로지 숯불구이 두 종류와 스파이시치킨이었는데, 이것저것 차려먹는 걸 번거롭게 여기는 탓에 단순한 고기+밥의 조합이 내 취향에 맞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간단한 테이블 세팅. 수저통에 숟가락만 덜렁 꽂혀 있지만, 저녁 때도 지나고 해서 설거지 중이라 그랬고 다른 테이블에는 포크도 같이 꽂혀 있었다. 앙념통에 든 건 데리야키 소스였는데, 어차피 고기 위에 뿌려져 나오기 때문에 또 쓸 일은 없었다.
식탁에 비치된 코팅 메뉴판도 음료수 가격이 표기된 것을 빼면 들어가기 전 본 입간판과 동일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중 어떤 걸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전자를 택한다. 그래서 여기서 한 첫 주문도 포크데리야키였는데, 마치 학식 같은 모양새였다. 오이피클과 배추김치, 된장국 세 종류는 기본적으로 냉면을 제외하면 다 따라나오는 것 같았는데, 피클은 결국 입에도 못댔다.
밥과 양배추채, 고기가 가지런히 담겨져 나왔는데, 대학가 식당 답게 양이 꽤 되는 편이었다. 고기는 물론 가격대를 생각하면 저렴한 전지 부위였는데, 그리 질기거나 퍽퍽하지는 않았고 데리야키 소스 자체가 달달해서 싼 값에 고기 먹는 느낌을 내기에는 괜찮았다. 그리고 그 달달함 때문에 굳이 소스를 더 뿌려먹지 않았는데, 고기요리를 그리 달게 먹지 않는 탓에 김치의 도움을 좀 받아야 했다.
물론 밑반찬을 제외하면 싹 비웠는데, 이 고기 먹는 재미에 이끌려 나머지 두 메뉴도 먹어보고 싶어서 이틀 뒤에 또 찾아갔다.
첫 방문 때 돼지고기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닭고기 차례였다. 닭고기는 내 취향에서 영원한 콩라인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체질에 안맞는다는 주변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아하는 고기의 상위권을 다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 번 피클이 나오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예 피클을 빼달라고 했다.
나온 모양새는 포크데리야키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물론 치킨데리야키였으니 당연히 닭고기가 주역이었다. 이것 역시 단가 때문에 수입 닭다리살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그 달달함이 익숙해지면 먹을 만한 메뉴였다. 사진은 못찍었지만, 이것 역시 무난하게 비워냈다.
그리고 또 이틀 뒤인 어린이날에는 정해둔 마지막 메뉴인 스파이시치킨을 시켜 먹었다.
다른 고기 메뉴와 달리 꽤 매워 보이는 소스 색깔과 동그랗게 썬 양파가 눈에 띄었는데, 매운 걸 먹기는 하지만 늘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맵긴 했지만, 매운 강도는 양념치킨을 좀 더 맵게 한 정도로 그리 심하지는 않았고 달달하게만 먹다가 매콤하게 양념한 고기를 먹으니 기분 전환도 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것도 싹 비웠다. 세 메뉴 모두 고기성애자+밥돌이인 내게는 매력적이었는데, 물론 고기의 질 같은 걸 많이 따지는 사람이라면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대학가 식당 특유의 박리다매를 노리고 갔기 때문에 가격 대 성능비가 꽤 괜찮은 집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후에는 비록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왕십리역 이마트에서 장보고 올 때 행운돈까스와 함께 번갈아 가며 들러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꽤 자주 먹은 순대국도 있는데, 원래 순대국은 체인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 편이었지만 요 근래에 꽤 공격적으로 지점 확장에 열을 올리는 한 프랜차이즈가 있다. 이름은 웬만하면 다 알 것 같지만 여긴 다음에.
수원시향은 2010년대 들어 (비록 한국 한정에 가깝기는 하지만) 소니BMG 코리아를 통해 여러 상업반을 찍어내면서, 도이체 그라모폰이라는 레이블과 계약해 세계구급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는 서울시향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음반 활동을 꽤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악단이 되었다.
하지만 현 상임 지휘자 김대진의 전임자였던 박은성도 비록 이런저런 이유로 비매품으로 묶인 채 대부분 품절된 상황이지만 게누인(Genuin) 한국 지사를 통해 도합 여섯 장의 CD를 낸 적도 있고, 박은성의 전임이었던 금난새도 녹음 활동을 한 바 있다. 그리고 그걸 입증할 CD의 진짜 시판본과 후속 CD를 나란히 구입할 수 있었다.
아직 시중 중고음반점에서 '체이스컬트 콘서트' 라는 이름을 단 제일모직의 캐주얼 브랜드 홍보용 비매품 음반으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품목이지만, 그것이 원래 서울음반에서 나온 상업반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위의 CD다. KBS 교향악단과 만든 두 장의 CD와 러시아 악단들과 만든 CD들과 달리, 이 음반에서는 소위 말하는 명곡선 혹은 롤리팝으로 불리는 관현악 소품들을 가지고 작업했다.
수록곡은 주페의 오페레타 '경기병' 서곡,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5번 (편곡자 불명), 로시니의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서곡, 차이콥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 중 정경과 어린 백조의 춤, 스페인 춤곡 세 곡, 영화음악 메들리 (편곡자 불명), 이성환 편곡의 한국 가곡 메들리,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순으로 되어 있다.
선곡은 대충 보기에 무난한 편인데, 다만 차이콥스키의 경우 흔히 모음곡 전곡 혹은 발췌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거기에 모음곡에서는 빠져 있는 스페인 춤곡을 넣은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영화음악 메들리나 한국 가곡 메들리의 경우 팝스 혹은 가곡 애호가들을 위한 서비스로 보이는데, 후자의 편곡을 맡은 이성환은 이후에도 금난새가 모스크바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한국 가곡과 러시아 소품들을 컴필레이션한 앨범 'From Seoul to Moscow' 를 제작했을 때도 편곡자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녹음은 1994년 2월 1~2일 이틀 동안 경기도문화예술회관(현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진행했다고 되어 있는데, 수원시립예술단 홈페이지의 수원시향 연혁에서 열람할 수 있는 공연 기록을 보면 1월 한 달 동안 아무 공연 기록이 없어서 아마 이 음반을 만들기 위한 리허설을 집중적으로 하고 2월 초순 동안 녹음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 녹음인 만큼 이렇다 할 소음이나 잡음은 없지만, 뭔가 녹음이 많이 탁하게 들리는 게 흠이다.
수원시향/금난새 콤비의 CD가 이후에 몇 장 더 나왔는 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는데, 아무래도 둘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안좋게 끝났기 때문인 지 예술단 홈페이지에서도 공연 기록 외에 음반과 관련된 정보는 박은성 재임기 부터만 확인할 수 있어서 자세한 것은 악단 측에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저것 외에 한 장 더 있다는 것은 확언할 수 있다.
서울음반에서 낸 처녀작과 같은 제목을 달고 있고, 컨셉도 비슷하다. 다만 녹음 제작은 서울음반이 아닌 이즘레코드에서 맡았고, 제작은 삼성전자에서 했다고 되어 있다. 처녀작이 제일모직의 홍보용 CD로 뿌려졌고, 이 음반도 삼성전자에서 제작했다고 하는 것을 볼 때 금난새 재임기에 이 악단의 활동이 삼성그룹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였음을 짐작케 한다.
다만 이 음반은 여러 모로 상당히 허술하고 오류 많은 곡목 표기와 속지 해설이 문제인데, 커버에는 'live' 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수원시립예술단 홈페이지의 공연 기록을 살펴 보면 녹음이 행해졌다고 되어 있는 1995년 6월 24일에는 아무 공연 기록이 없다. 그리고 커버에는 수원 시립 교향악단이라고 인쇄했으면서 케이스 뒤에는 수원 필 하모닉 교향악단이라는 식으로 해놓고 있어서, 악단명 표기에도 일관성이 없다.
영어 악단명 표기도 서울음반 커버에서도 보이듯이 Suwon Symphony Orchestra로 했다가 이 음반에서는 Suwon Philharmonic Orchestra라고 바꾼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사실 한국의 관현악단 명칭 영문 표기 문제는 너무 한심할 지경이라 더 이상 코멘트하고 싶지는 않지만 교향악단을 관현악단과 동일한 명사로 보는 작태는 반드시 고쳐져야 마땅하다고 본다.
물론 악단 명칭 표기를 갖고 깠다고 나를 문법 나치 수준으로 깎아내리고자 할 양반들도 있겠지만, 내 지적질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케이스 뒤의 수록곡을 보자면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 중 러시아 춤곡(트레파크)과 꽃의 왈츠,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빠른 폴카 '천둥과 번개' 와 왈츠 '봄의 소리',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베버의 클라리넷 소협주곡(여인호 협연),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 중 여름(김형순 협연),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순서로 인쇄되어 있다.
워낙 영어 물 먹은 양반들이 많아서인지 슈트라우스를 스트라우스로, 베버를 웨버로 표기한 건 애교로 넘기더라도, 후반 수록곡인 비발디와 모차르트의 경우 '이거 제대로 들어보고 표기한 건가?' 싶을 정도로 어설프고 허술하다. 분명히 케이스와 CD에는 여름이 연주되었다고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틀어 보면 여름이 아니라 봄이다.
아무리 비매품 목적으로 만들었다지만, 평소 클래식 전도사를 자처하던 금난새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황당한 오기가 아닐 수 없다. 그가 나중에 사계를 해설할 때 여름과 봄을 착각해서 설명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검수라도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어이없는 실수였다.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는 꽤 여러 곡이고 번호 정돈도 잘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많은데, 이 때문에 최소한 어떤 곡인 지를 구분하려면 쾨헬 번호는 같이 표기해 주어야 한다. 서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KBS에서 제작한 CD의 경우에도 K.138 (125c)이라고 표기했기 때문에 무슨 곡인 지를 알 수 있는데 이 음반에는 그냥 디베르티멘토, 딱 그것 뿐이다. 도대체 무슨 디베르티멘토인데? 다행히 필립스에서 나온 덩치 큰 모차르트 전집 CD가 있어서 일일이 들어본 끝에 수록곡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 (125a).
그리고 악단원 목록과 연혁 뿐인 속지에서도 연혁 부문의 설명이 다소 조잡한데, 특히 서울음반에서 나온 전작이 1993년 말에 출반되었다는 설명은 이해할 수가 없다. 위에 썼듯이 녹음은 1993년 말이 아니라 1994년 초에 제작되었고, CD에 표기된 제작 연도는 1995년이다. 제대로 조사했다면 이렇게 연대가 뒤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안일한 제작 방식 때문에 다소 이미지가 깎일 수밖에 없는 물건인데, 다만 한국 악단의 녹음으로는 처음 입수한 베버의 클라리넷 소협주곡은 꽤 유니크한 녹음이다. 음질은 서울음반의 것보다는 좀 더 명확한 편인데, 다만 마이크가 무대에 다소 가깝게 세팅되었는 지 자연스러운 울림을 느끼기는 힘들다. 특히 현악 편성만으로 녹음한 비발디와 모차르트의 경우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려서 오히려 약간 답답하다는 느낌도 준다.
그리고 금난새는 수원시향과 불명예스럽게 결별한 후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도 비슷한 소품 앨범을 하나 더 만들었는데, 이전 포스팅에 썼듯이 수록곡 중 꽤 여러 곡이 이 수원시향 앨범들과 겹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금난새가 만약 현재 재임 중인 인천시향과 소품집을 제작한다면 이런 이력을 비슷하게 따라가지 않을 까 싶다.
수원시향이 두 번째 CD를 녹음할 무렵이던 1995년에는 그보다 약 7년 늦게 창단된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자매 단체인 부천 시립 합창단과 첫 음반을 제작한 바 있다. 부천시립예술단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음반들은 관현악단 따로 합창단 따로 발매된 것 같은데, 이번에 입수한 것은 그 둘을 합친 더블 앨범이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합창 음악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관현악단 연주만을 수록한 첫 번째 CD만 듣고 있는데, 역시 컨셉은 수원시향/금난새의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소품집이다. 다만 자세한 녹음 일자와 장소를 기재한 수원시향 것과 달리, 이 음반에는 아무런 녹음 정보가 없다. 그나마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임헌정의 지휘로 녹음된 것은 확실하다.
수록곡은 아일랜드 전통 선율인 '런던데리 에어' 의 퍼시 그레인저 편곡판,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 2막 간주곡,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D단조 2악장(이명진 협연), 들리브의 발레 '코펠리아' 중 왈츠와 질투(Valse et jalousie),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론도 D장조(앨범 속지에는 C단조라고 잘못 기재됨) K.373(이소영 협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트리치 트라치 폴카,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김성태의 동심초(이성환 편곡), 차이콥스키의 관현악 모음곡 4번 '모차르티아나' 중 세 번째 곡 '기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1막 전주곡,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춤곡 작품 72 중 두 번째 곡, 그리고 임헌정이 직접 편곡한 동요 접속곡(포푸리)이다.
같은 롤리팝 컨셉이기는 하지만, 부천 필의 이 첫 음반은 그 중에서도 꽤 다양한 곡들이 섞여 있다. 마스네의 곡은 바이올린 솔로가 두드러지는 곡이지만 협연자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데, 추측으로는 당시 악단 악장이었던 김강훈이 연주한 것 같다. 악단 오보에와 플루트 수석 주자들을 솔리스트로 기용한 것도 눈에 띄는데, 특히 모차르트의 곡은 원래 바이올린용 작품이지만 여기서는 플루트로 편곡해 녹음했다. 또 수원시향/금난새의 첫 앨범에서 편곡자로 모습을 보인 이성환이 이번에도 동심초의 관현악 편곡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임헌정 자신도 원 전공인 작곡 실력을 살려 마지막 곡을 직접 편곡했는데, 이후 부천 필 공연에서도 리스트의 '사랑의 꿈',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헌정(Zueignung)' 등 유명 소품을 직접 편곡해 앙코르로 연주한 이력을 이 음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먼저인 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부천필은 같은 해 '돌아온 영웅 홍길동' 의 OST를 통해 음반 시장에 자신들의 연주를 선보인 바 있다. 다만 시판품으로 제작된 저 OST와 달리, 이 음반은 예술단 자체 제작반으로 소량 풀린 것이 전부라서 지금 구하려면 상당한 발품 혹은 검색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고 본다.
수원과 부천 등 서울의 위성 도시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시립예술단의 자체 제작반은 분명히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부산시립예술단의 부산시향, 부산시립합창단,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세 단체가 합동 제작한 음반도 그 범주에 속한다.
세 단체가 1998년 한 해동안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녹음한 실황을 추려서 서울음반이 두 장의 CD로 제작한 것인데, 첫 장에는 부산시향이, 둘째 장에는 합창단과 국악관현악단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 음반에서도 내 관심은 첫 번째 장에 집중되었다.
당시 부산시향의 상임 지휘자는 곽승이었는데, 미국 유학파 답게 여러 쇼피스 등을 선곡할 때는 다른 지휘자들과 달리 미국 작품을 자주 올린 바 있다. 앙코르와 서곡 격의 작품 연주를 모아놓은 이 음반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역시 소품집 비슷한 컨셉인 만큼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 많다.
순서대로 쇼스타코비치의 축전 서곡, 르로이 앤더슨의 싱커페이티드 클락,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춤곡 작품 46 중 첫 번째 곡, 밀양 아리랑(김희조 편곡),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메들리(존 윌리엄스 편곡), 수자의 워싱턴 포스트 행진곡, 차이콥스키의 슬라브 행진곡, 수자의 행진곡 '항상 충실히(Semper fidelis)',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러시아 부활제 서곡이 실려 있는데, 앤더슨과 번스타인, 수자는 한국 악단 연주로는 처음 듣는 곡들이라 이채롭다.
다만 이런 소품들과 달리 쇼스타코비치와 차이콥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같이 본격적인 관현악 작품 범주에 들어가는 곡들의 연주는 다소 밋밋한데, 매우 탁하고 평면적인 녹음 상태도 이런 이미지에 상당 부분 일조하고 있다. 지금도 리모델링 후의 음향에 대해 불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 만큼, 당시 부산문화회관의 음향 상태는 꽤 좋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소품집 형태의 음반들도 물론 여러 장 샀지만, 본격적인 교향곡 등을 담은 음반이나 종교음악, 칸타타 녹음이 든 것도 만만찮게 구매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그 중 연말에 한국의 개신교 계통 교회들에서 유달리 자주 공연하는 헨델의 '메시아' 를 담은 음반 세 종류를 비교해 썰을 풀 예정이다.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