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록의 인연은 그리 새롭지는 않다. 재수생 시절 홍대를 거닐며 자주 들었던 것도 원래 듣던 클래식 외에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인디 록-그 중에서도 펑크(punk)-이었다. 실제로 그 당시 드럭이나 스팽글 등을 비롯한 클럽들을 드나들며 격렬하게 날뛰기도 했었고,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의 크리스마스 이브 철야 공연 등 이색적인 공연도 봤다.
하지만 어느 시점엔가-아마도 대학 들어가고 군대 갔다온 뒤-점점 저 쪽에 갖는 관심이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포스팅에 언급한 공연이 거의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대학 끝물 탈 쯤에는 뜬금포로 재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지금은 재즈가 20대 초중반 시절의 록을 거의 대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록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이나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신체적인 문제로 따지면 항상 갔다오고 나면 느껴지는 먹먹한 귀나 격렬하게 뛰놀며 소모되는 체력 같은 게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저 신에서 멀어진 원인이 아닐 까 싶다. 아무래도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귀의 상태에 대해서는 다소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다시금 그걸 보러 간 게 올해 4월 27일이었다. 토요일도 아니고 일요일이었고, 바로 다음 날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핸디캡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이런 기회를 다시 누려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또 내가 한창 설치던(??) 2000년대 초반에서 10년도 넘게 흐른 현재의 인디 록은 어떤 모습일 지 궁금해서 공연장을 찾아갔다.
공연장은 대략 2호선 홍대입구역과 합정역 사이 쯤에 위치한 프리즘홀이었다. 완전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물론 그 사이 클럽 문화나 환경도 많이 바뀌어서 엔지니어 부스와 바가 한 쪽에 마련되어 있었고 사운드 시스템도 그 때와 비교하면 부쩍 좋아져 있었다. 물론 이런 모습은 내가 2007년에 공연을 보러 갔던 DGBD에서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새롭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앞에 이렇게 현수막이 내려져 있었다. 출연 밴드는 모두 네 팀이었고, 아래에서 위의 순서로 공연했다. 물론 내가 공연을 보러 간 가장 큰 동기인 명령27호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살짝 찍어 본 공연 시작 직전 무대 위의 모습. 미리 리허설을 했는 지, 악기들이 가지런히 세팅되어 있었다. 다만 이렇게 세련된 클럽 내부에 비해 보러 온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마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한국 사회에 지나치게 강요되었고 지금도 그런 상황인 '문화예술 공연=현 시국에 맞지 않는다' 는 괴상한 풍토 탓이 아닐 까 싶기도 했는데, 딱히 그런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비가 줄줄 내리는 날씨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일단 바에서 하이네켄 한 병을 주문해 마시면서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현수막이 오르면서 시작된 첫 밴드 '더 베거스' 의 공연. 이 날 공연에서 내가 20대 때 즐겨들었던 소위 '펑크'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한 유일한 밴드였다.
곡들은 대개 상당히 짧은 편이고, 리프 몇 번 하고 끝나는 '짐바브웨' 같은 좀 황당스러운 곡들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날 뛰놀게 하던 펑크의 격렬함과 흥겨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래서 전부 들어보지 못한 곡임에도 몸을 들썩이며 서서히 녹아들 수 있었다. 연주 중 베이스의 앰프 잭이 부러지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별 무리 없이 끝났다.
이어진 무대는 '데드버튼즈' 라는 2인조 밴드였는데, 특이하게 기타 겸 보컬과 드럼 딱 두 명 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베이스가 없어서 저음이 좀 약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밴드 관련 노가리 중에 '베이스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라는 말이 떠오른 건 왜일까
다소 직설적인 펑크 스타일이었던 더 베거스에 비해, 이 밴드의 음악은 좀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분위기였다. 어떤 곡은 일부러 짜낸 듯한 촌스러움이 느껴졌고, 어떤 곡은 너바나 등 소위 그런지 풍, 또 어떤 곡은 하드코어 풍 등 저마다 다른 느낌이었다.
어느 풍을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밴드가 있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스타일의 음악을 같이 시도하는 밴드도 있기 마련이다.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 지에 대해서 누가 묻는 다면 '그냥 일단 들어보쇼' 라고 답하고 싶다.
그리고 이 밴드는 공연 중간의 멘트에서 자신들이 '다음 달(5월) 초 영국 공연을 간다' 고 밝혔다. 자비를 들여서 간 것인지 초청을 받아서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영국 록 신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잘 어필하고 왔는 지가 궁금하고 또 요리 계의 생지옥이라는 영국에서 얼마나 식생활을 잘 영위하고 왔는 지도 궁금하다. 그래도 맥주는 괜찮은 게 많았을 테니 그걸로 버티지 않았을 까 싶기도 하다
세 번째 밴드 '더 모노톤즈' 역시 내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기타리스트가 어디서 많이 본 양반 같아 보였는데, 공연 후 밴드 관련 정보를 찾다 보니 노브레인과 문샤이너스에서 활동했던 차승우였다. 나머지 멤버들도 각기 다른 밴드에서 꽤 오래 뛰었다는데, 이 밴드는 그렇다면 인디 신에서 '짬 좀 되는' 뮤지션들이 모인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밴드의 음악도 데드버튼즈와 마찬가지로 딱히 한 스타일로 정의하기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뭔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게 아닌 상당히 탄탄한 팀워크나 카리스마가 자연스럽게 풍겨나온 게 신기했다. 그러니 이 밴드 멤버들이 꽤 오랜 경력의 소유자였다는 정보를 보고 납득할 수 있었던 게 아닐 까 싶다.
어쩌다 찍힌, 차승우의 솔로 연주 장면. 이 공연 내내 어느 외국인이 DSLR을 들고 무대 앞에서 사진을 수백 장은 박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도 아마 이 장면을 찍지 않았을 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명령27호. 이 밴드도 참 굴곡진 프로필을 갖고 있는데, 2007년에 이 밴드의 공연을 처음 보러 갔을 때도 재결성 공연이었고 이번에도 (공식) 컴백 공연이었으니 어쩌면 나는 밴드의 부활을 두 번이나 목격하는(???) 흔치 않은 이벤트를 경험한 셈이다.
2007년에 본 공연에서는 박현(본명 버크 조슬린. 기타/보컬), 안악희(베이스), 김간지(드럼) 3인조였는데, 이번에는 기타리스트가 한 명 더 추가된 형태였다. 물론 음악 자체는 예전에 그랬듯이 로큰롤의 촌스러움과 펑크의 격렬함이 혼재하는 독특한 맛이 풍겼다.
알고 있던 밴드다 보니 사진도 참 많이 찍어댔다. 뭔가 빌리 헤링턴 형님이 연상되는 모습으로 등장한 박현.
무시한 듯 시큼하게(???) 베이스를 퉁기고 있는 안악희.
이 밴드를 알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이 양반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트위터로 인생의 낭비를 하도록 권유한 인물이기도 하고, 트친을 맺고 리트윗 중인 여러 글을 통해 내 트위터의 빈약한 타임라인을 채워주고 있다.
서로 맞춰보듯 연주 중인 박현과 새 기타리스트.
예전 공연 때 드러머 김간지를 찍지 못했던 걸 후회하며(??) 이번에는 한 번이라도 찍어보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격렬한 공연 와중에 그나마 잘 나온 게 이거다(...). 뭔가 식겁한 듯한 표정이 일품.
그리고 이 공연에서는 또 내 기억에 길이 남을 퍼포먼스도 있었다. 박현이 갑자기 1980년대 프로레슬링 좋아하던 사람 있냐면서 한 번 해보자고 마스크 두 개를 줬는데, 거기에 내가 뽑혀 버렸다. 물론 WWE가 WWF 시절이었을 적 AFKN에서 본 헐크 호건과 워리어, 마초킹, 달러맨, 앙드레 자이언트, 스네이크 등의 레슬러들은 지금도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남아 있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존내 빡셌다.
마구 달리는 연주를 배경으로 어설픈 기술을 걸고 접수를 해대며 보인 30대 중반 아저씨의 추태를 누군가 찍지 않기를 바랬지만...찍힌 것 같다. 물론 마스크 쓰고 있었으니 정체(?)는 드러나지 않았겠지만. 아무튼 공연장에서 신나게 뛰어논 경험은 있어도 이렇게 얼치기 프로레슬링까지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 체력과 땀을 뺀 뒤에도 공연은 계속 되었다. 조명 덕에 무슨 성자 마냥 찍힌 기타리스트.
전체샷 찍어보려다 망한 사진 한 컷.
2007년에 본 Girls Love Elvis 연주의 '백댄서' 광경은 이 무대에서도 다시 재현되었다. 엘비스 팬 없냐고 박현이 묻자 거의 반강제적으로 두 명의 여성이 끌려나와(??) 무대로 올라왔다.
이들은 함께 엘비스를 연호하며 무대를 누비면서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렇게 근 7년 만에 다시 찾아간 록 공연은 시끌벅적하게 끝났다.
생각같아선 내 돈 내고서라도 밴드들의 뒷풀이에 참석해 썰을 풀고 싶었지만, 일단 나는 이방인이었고 또 다음 날 일찍 출근해야 했기에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근처의 마포만두에서 늦은 끼니를 때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아, 빈 손으로 돌아온 건 아니었고, 공연장에서 팔던 첫 번째 밴드 더 베거스의 CD를 구입해서 돌아왔다.
20대 시절 신나게 뛰놀던 시절의 체력과 기백은 이미 사그라들었고, 또 공연을 보면서 나름대로 능동적이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상태였기에 '나도 늙었고, 음악 환경도 변해가는 구나' 는 진리를 새삼 깨우치게 해준 기회였다. 그래서 다시는 안 갈 거냐고? 물론 아니다. 그게 나를 계속 잡아당기고 입맛을 다시게 한다면 관람의 형태가 어떻게 되든 간에 다시 갈 용의는 물론 있다. 내가 한국에 남아있을 동안에라도 추가 공연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이 글 말미에서 내가 구형 피처폰 폰카로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쓸 예정이라고 했지만, 그거 외에도 이런저런 사진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이런 것들을 올려보려고 한다. 이게 진짜 옛 피처폰 폰카 사진들의 마지막 포스팅이다.
을지로 산골면옥에서 거의 2년 만에 다시 먹어본 막국수.
물론 처음 가서 먹었을 때처럼 닭고기와 사리가 모두 많이 나오는 특곱배기를 주문했다. 차가운 닭육수와 동치미 육수를 부어준 뒤,
마구 비벼서 먹어주면 OK. 물론 맛은 그 때와 다르지 않았고 배와 입이 모두 만족스러웠지만, 역시 고춧가루 든 차가운 면 요리는 위와 장에서 껄끄러워 하는 지 다음 날 포풍설사를 맞이하고 말았다. 식욕이야 문제는 없지만, 이렇게 나오는 과정의 문제가 늘 두려움을 갖게 한다.
황학동-동묘앞 인근의 식품 땡처리 가게들에서 발견한 수상쩍은(?) 컵라면. 일본 업계인 닛신이라고 되어 있어서, 후쿠시마 현의 방사능 오염 농산물을 '먹어서 응원하자!' 라는 정신나간 캠페인을 벌이는 일본 업계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쌩까려고 했다. 하지만 닛신 일본 본사가 아닌 홍콩 지사 제품이어서 일단 호기심에 구입했다.
특이하게 단종되었다가 '카레라면' 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오뚜기 백세카레면을 연상시키는 카레맛 국물에 건조 해산물이 많이 들어 있었는데, 가족들은 맛이 이상해서 못먹겠다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꽤 특이하긴 해도 못먹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번 먹으려면 물리는 맛인 것도 사실이어서, 가끔 씩의 별미 정도로 취급했다.
소문난집 추어탕의 해장국. 싼 거 찾아다니는 근성은 요즘 노량진 쪽으로 옮겨간 상태지만, 그래도 낙원상가 인근 지역도 잊을 만하면 나타나곤 한다. 여느 때처럼 공기밥을 추가 추문했다.
물론 한 공기만 말아도 어느 정도 든든하긴 하지만, 꼭 한 공기 더 시켜서 푸짐하게 먹는 게 어째 버릇처럼 되었다. 다만 유일한 밑반찬인 깍두기는 여전히 손도 대지 않아서 미지의 세계 취급이다.
일반 정식 메뉴에서 함박스텍 대신 새우튀김 두 개가 나오는 구성인데, 새우튀김 때문인지 가격은 1000원 비싼 6000원이다.
여느 경양식 메뉴를 먹을 때 그러듯이, 미리 다 썰어놓고 먹기 시작했다. 새우튀김 외에도 달라진 게 있다면, 생선까스에 기존의 데미글라스 소스 대신 타르타르 소스가 올라와 있었다는 거였다. 예전에도 비슷한 푸념을 했었는데, 설마 주인장이 알아챈 건가?
맛은 괜찮았지만, 새우튀김 특유의 느끼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전보다 밑반찬인 김치와 단무지를 더 자주 찾게 되었다. 어쨌든 여기는 한양대 쪽으로 갈 때면 5월 초에 처음 가본 바로 맞은 편의 식당과 함께 내 미각의 구세주 역할을 계속 할 것 같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도 돈까스를 갈구하는 내 입맛은 노량진 이데아빌딩 지하의 식당가를 찾게 만들었다. 까스마루라는 이름의 돈까스집에서 주문한 치즈까스 세트.
이 집은 그냥 돈까스는 안팔고 다른 걸 끼워서 세트로만 내놓고 있었는데, 이건 4500원이었다. 윗쪽에 공 같이 생긴 게 치즈까스다.
저화질이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냥 돈까스도 고기 먹는 느낌은 충분히 날 정도의 두께고,
치즈까스는 갈라 보면 이렇게 생겼다. 얇은 고기 사이에 피자치즈를 넣고 뭉쳐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치즈까스의 쌈마이해 보이지만 독특한 모양새 때문에 이 식당가를 갈 때마다 사먹었지만, 5월 초를 기점으로 식당가가 몇 군데만 남겨두고 뷔페로 영업 전환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환상의 메뉴가 되어 버렸다...lllorz
2월 하순에 오랜만에 울산에 공연보러 가던 중 휴게소에서 먹은 소시지+감자. 아침을 안먹고 바로 버스를 탔기 때문에 상당히 배가 고팠는데, 이걸로 약간 늦은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가격이야 여느 휴게소 음식들과 마찬가지로 좀 센 편인 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지만, 소시지고 감자고 좀 미지근했던 게 에러.
그리고 공연 전에 일찍 먹어야 했던 저녁은 본여우&본정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정식 메뉴판이 큼지막하게 있었지만 이건 제껴두고,
이걸 뚫어지게 보다가 본정돈까스를 시켰다. 그냥 돈까스는 없고 치즈돈까스인 저 메뉴와 고구마돈까스라는 여우돈까스 두 가지만 찾을 수 있는 데, 피자에 고구마 올려먹는 아이디어를 대역죄 취급할 정도로 '고구마는 절대 디저트여야 한다' 는 내 강경한(?) 취향 때문에 후자는 애초부터 아오안이었다.
돈까스 상차림. 예전에 냉소바 먹었을 때도 나온 독특한 모양과 맛의 단무지는 이 메뉴로도 맛볼 수 있었다.
돈까스는 평범해 보이는 세팅이었지만, 특이하게 곁들임으로 튀김만두 한 쪽이 나온 게 이채로웠고 조리한 뒤 미리 썰어서 내온 것도 특이했다.
그리고 치즈까스라는 이름 답게, 돈까스 조각을 옆으로 눕혀 보니 치즈가 흘러나왔다.
물론 맛이나 양은 별 태클을 걸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괜찮기는 했지만, 가격이 8000원이나 한다는 걸 좀 이해할 수 없기는 했다. 울산이 워낙 경제적으로 풍족한 도시라 이 가격으로 장사를 해도 올 손님은 온다는 배짱처럼 느껴졌는데, 그나마 자금 사정이 좋을 때 가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아마 발 들일 생각도 못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소위 '우리밀 빵' 두 가지. 예술에 약간 남아있는 걸 제외하면 이미 내 머릿 속에서 민족주의는 거의 내다버린 지 오래고,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라는 투의 애국주의 마케팅도 이제는 전혀 약빨이 없는 '국뽕' 의 한 갈래일 뿐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어서 저걸 산 게 얄팍한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는 건 절대 보증할 수 있다.
정확히는 워낙 싼 수입 밀가루가 지배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도 아직 수익이 불확실한 밀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에게 얼마라도 수익이 돌아가길 기대하는 마음에서였는데, 물론 맛은 여느 과자빵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크기는 좀 작은 편이고 가격도 개당 1500원이라는 고가라서, 재정 상황이 그럭저럭 나아지고 있는 지금도 그냥 다른 빵처럼 자주 먹을 엄두는 못내고 있다.
그리고 2월 후반 처음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뒤로도 식충잡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은 여타 처묵짤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것도 추려서 다음에 다 정리한 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다음에 '게속'.
이 포스팅에서는 주중에 일에 치여 사느라 이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윤이상 작품이 든 음반을 모으는 데 완전히 손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물론 우연의 산물이기도 했는데, '새로운' CD가 그런 축이었고 '오래된' 건 예전부터 주기적으로 눈여겨보고 있던 한 중고음반 사이트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 2000 Synnara Music Co., Ltd.
KBS 영상사업단(이후 KBS 미디어로 개칭)은 대략 1990년대 중반부터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녹음들을 음반으로 발매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는데, 초기에는 해동물산이라는 곳을 거쳤고 2000년대 부터는 신나라레코드를 통해 음반을 내놓았다.
KBS의 음반들은 일관되게 세 가지 컨셉으로 제작되어 왔는데, 한국 연주자들의 녹음은 '한국의 연주가',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 녹음은 '한국의 작곡가', 그리고 한국 전통예술인들의 녹음은 '한국의 전통음악' 이라는 소제목으로 묶어서 분류했다. 이번에 내가 산 저 음반은 '한국의 연주가' 61집에 해당하는 물건으로, 콰르텟 21이라는 현악 4중주단의 녹음을 담고 있다.
저 단체는 속지 해설에 의하면 1991년에 창단되었고, 1992년에 예음상 실내악 부문을 수상했고 1993년에는 오사카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 입상했다고 나와 있다. 다만 좀 이상한 대목도 있는데, 1994년에 베를린에서 윤이상 1주기 추모음악제에 참가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윤이상이 세상을 뜬 해는 1995년이다. 집필자 실수로 졸지에 고인드립
*여담으로, 실제로 콰르텟 21이 참가한 윤이상 1주기 추모 음악회는 1996년 11월 8일에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개최되었고, 이 공연에서 연주한 현악 4중주 4번의 실황녹음은 국제 윤이상 협회 1집 CD에 수록되어 있다.
지금도 멤버가 고정되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녹음 당시의 라인업은 김현미(제1바이올린), 김정화(제2바이올린), 위찬주(비올라), 박경옥(첼로)으로 되어 있었다. 수록곡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52번 '종달새' 와 윤이상의 현악 4중주 6번, 보로딘의 현악 4중주 2번인데, 하이든과 보로딘이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윤이상 곡이 든 게 구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실 이 음반의 존재를 새삼 확인한 건, 작년 11월에 베를린 필 내한 공연 때 객원 피아니스트로 왔던 국제 윤이상 협회 회장 대리 홀거 그로쇼프의 문의였다. 한국에서 제작한 윤이상 음반을 구하고 있는데 현재 구입할 수 있냐면서 두 장의 소재를 물어봤는데, 그 중 하나인 진현주 한국 현대 바이올린 작품집 CD(아울로스)는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위치한 음반 가게에서 직접 찾아주고 구입하도록 했다.
나머지 하나가 이 CD였는데, 이 시리즈는 물론 국립예술자료원 등에 소장되어 있지만 대개 몇 장씩 이가 빠진 상태고 음반 시장에서도 절판된 지 오래라는 답변 밖에 할 수 없었다. 나 자신도 중고음반 사이트나 판매점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지만, 올해 초까지는 별 소득이 없던 상태였다. 하지만 올해 3월 쯤 뮤직앤시네마라는 중고음반 사이트에 이 KBS 시리즈 음반들이 속속 올라오더니 이 CD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곧바로 구입했는데, 음반 수집의 재미는 이런 레어템을 발견하고 주문하고 받았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에서 온다.
실제 공연에서 이들의 연주를 직접 듣지 못했기 때문에 기본 실력이 어느 정도인 지는 모르겠지만, 이 녹음은 1999년 9월 6일과 20일에 KBS 라디오 16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것이라 아마 여러 차례의 세션과 편집을 거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소리가 약간 어둡고 탁한 감은 있지만, 음질 면에서 딱히 꿀리는 것은 없다. 다만 윤이상 4중주 3악장에서 기계적인 문제로 보이는 잡음이 살짝 들어간 것은 옥의 티로 지적하고 싶다.
연주나 음질을 떠나서 한국의 실내악단이 연주한 윤이상 작품 녹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꽤 유니크한 물건인데, 내가 아는 한 이런 시도를 한 단체는 이 콰르텟 21과 지금은 해체된 금호아시아나 현악 4중주단 정도 밖에 없다. (후자의 경우 2000년 9월 25일에 서울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개최한 공연 실황을 담은 금호문화재단의 비매품 CD가 그 증거물인데, 윤이상의 현악 4중주 3번과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 22번,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3번을 담고 있다. 아래 사진 참조)
ⓟ 2000(?) Kumho Arts Foundation
다만 자신들의 연주를 담은 음반의 프로모션에 서툰 것인지 아니면 무지한 것인지는 몰라도, 국제 윤이상 협회 측에서도 확보하지 못해 이렇게 한국에 사는 뜨내기에게까지 음반의 존재를 물어보고 있다는 건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이는 비매품 같은 한정된 시공간에서만 돌아다니는 것 뿐 아니라 이렇게 팔려고 내놓는 상업반에도 공통으로 해당되는 문제다.
일단 자신들의 연주를 내보이려고 제작한 음반이라면 국내외에 좀 더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음반 시장이 거의 말라죽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 노력을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뮤직앤시네마에서 낱장으로 구입한 뒤, 뮤직랜드에서도 이 음반이 담긴 15장 짜리 세트를 누군가 중고(used) 카테고리에 통째로 올려놓은 것을 또 찾아냈고 이것도 꽤 거액을 들여(105000\) 구입했다.
이 중 뮤직앤시네마에서 구입한 것을 개인 소장품으로 하기로 했고, 뮤직랜드에서 구입한 세트에 포함된 음반은 국제 윤이상 협회에 소포로 부쳐주기로 정했다. 이외에도 같은 세트가 알라딘 중고 쪽에서 팔리고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일단 내가 모으고 또 보내줄 것은 구입이 끝났으니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취향과 목적으로 구입할 지가 좀 궁금하다.
그리고 뮤직랜드에서는 클래식 쪽 신보 중 뭐가 나왔나 하고 그냥 별 생각 없이 눈팅을 하다가 뭔가가 갑자기 눈에 띄었다. 한지원이라는 피아니스트의 데뷰 앨범이라고 했는데, 이 앨범에도 윤이상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보고 클릭해서 정보를 확인했다.
ⓟ 2014 Made Contents YAGI
한지원은 2013년에 윤이상 국제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한 신예 피아니스트라고 하는데, 같은 해 8월 2일에 이 음반의 제작사인 메이드 컨텐츠 야기의 스튜디오 겸 홀에서 '해설이 있는 음악회' 라는 리사이틀을 개최했다. 이 때 프로그램은 쇼팽의 뱃노래와 슈만의 사육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이었는데, 슈만 곡을 빼면 음반에도 모두 수록된 곡이라서 음반 제작은 아마 이 공연을 전후해 해당 스튜디오에서 병행한 것 같다.
나머지 수록곡은 쇼팽의 발라드 4번과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의 세 악장', 그리고 마지막에 윤이상의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이 실려 있다. 요즘 클래식 CD 답지 않게(??) 78분 여를 꽉꽉 채워담은 패기가 두드러지는데, 다만 음반 속지는 그냥 녹음과 연주 사진 몇 장이 전부고 곡 해설이나 연주자 프로필 같은 것을 몽땅 생략한 것이 좀 마뜩찮았다. '텍스트 따위는 집어치우고 음악부터 들으라' 는 쿨함이 컨셉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물론 다른 곡들의 러닝 타임 같은 걸 따져 보면, 전곡 연주에 불과 7분 반 정도 소요되는 윤이상 곡은 자신이 윤이상 국제 콩쿠르 입상자임을 인증하는 일종의 서비스이자 디저트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다. 다만 보수 정권이 연이어 집권하면서 윤이상 음악을 시덥지 않다는 듯 다루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리고 그 시점에서 이런 시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연주자 입장에서 데뷰 앨범에 대뜸 포함시켰다는 것 자체가 좀 놀라웠다.
녹음을 기획/제작한 메이드 컨텐츠 야기도 처음 들어보는 회사인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음악과 관련된 여러 제반 업무들과 애니메이션/영상물 제작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컨텐츠 제작을 맡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자체 기획/제작 앨범으로는 튜바 주자 이동화의 'Soul & Passion' 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하는데, 아직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앞으로 어떤 앨범을 내놓을 지 기대가 된다.
올 4월에 출반된 이 앨범도 아직 국제 윤이상 협회에서는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데, 내가 이메일로 제보하고 보내겠다고 하자 곧바로 감사를 표하는 답장이 도착했다. 알라딘에서 내 몫과 협회 몫으로 각각 한 장씩 주문했고, 위에 쓴 콰르텟 21 CD와 함께 독일로 소포를 부칠 예정이다. 다만 해외에 주문해서 받은 소포는 있어도 내가 해외로 부친 적은 없어서, 비용이 얼마나 들고 또 어떻게 포장해야 파손 없이 보낼 수 있는 지는 좀 찾아보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윤이상 곡들을 담은 이런 앨범 외에도, 뮤직앤시네마를 비롯한 여타 중고음반 사이트들과 황학동 중고음반점들에서 지른 것들도 꽤 있으니 다음 음악잡설도 이런 쪽 위주로 나갈 것 같다. 하지만 오랜만에 록 공연장에 가서 젊었을 적의 혈기를 조금이나마 발산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것도 좀 써볼 까 한다.